1986년 12월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의 조정술 대장.

- 수산물 유통업으로 돈 벌어
- 경남공고 산악부 OB 등 지원
- 세계 7위 봉 다울라기리 Ⅰ
- 1988년 국내 첫 등정 쾌거

부산 산악인과 히말라야의 첫 대면은 청봉산악회 송준행 회원이 1972년 마나슬루에서 눈사태에 묻히는 조난으로 끝났다. 이어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곽수웅 전명찬 대원이, 1980년 닐기리 북봉 원정에 이영태 부산공업대OB가 참가하면서 부산 산악인들에게 히말라야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부산 산악단체의 최초 히말라야 원정기록은 1982년 부산학생산악연맹의 파빌 등정이다. 부산의 히말라야 등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해외여행 규제가 1980년대 초 완화하면서 히말라야 원정은 의욕적으로 추진된다. 하지만 원정경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대부분 원정대를 파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서나 먼저 깨닫고 행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사재를 털어 히말라야 원정의 문을 활짝 연 통이 큰 산악인이 조정술(1946~) 씨다. 그는 1980년대 히말라야 산군을 십 수차례 정찰한 뒤 현지의 생생한 등반정보를 제공했다. 나아가 원정대를 꾸려 대장을 맡아 부산 산악인들에게 고산등반의 꿈을 실현하게 해 주는 등 부산 산악계의 초창기 히말라야 진출에 많은 이바지를 했다.

조 대장과 산의 인연은 중학생 때부터였다. 경남중에 다닐 때 토성동 집 부근에 살던 박진 부산대 공대 산악부장이 티롤모를 쓰고 산에 가는 모습에 반해 구덕산 계곡을 누비고 다녔다. 1962년 경남공고에 들어가자마자 학교 산악부를 이끌 지도자 양성에 힘을 쏟던 쟈일크럽에 들어가 왕성한 활동을 폈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고 산악부의 박정추와 단둘이서 설악산에 갔다가 대간첩작전을 펴던 군인들에게 붙잡혀 나흘간 감금되기도 했었다.

고교 3학년 때는 학교의 승인 없이 1학년 학생들을 이끌고 '60㎞ 극복등행대회'에 참가했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해 겨울에는 부산 산악인 21명으로 구성된 '지리산 칠선계곡 등산로 개척 및 학술조사대'에 고등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참가, 등로 개척에 앞장섰다. 이어 지리산 등산로 안내표지판 설치에도 참여하는 등 공부는 뒷전이었고 등산에 몰두했으나, 다행히 건국대 축산학과에 들어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산에 다닌 강단으로 월남전에 두 번이나 참전했던 그는 어망 제조회사인 신흥제강을 운영하던 부친의 도움을 받아 수산물 유통업으로 적잖은 돈을 벌자 히말라야로 눈을 돌렸다.

1980년 봄과 가을에 안나푸르나와 다울라기리 산군을 정찰한 뒤 틸리초 피크(7134m) 등반을 추진했다. 하지만 쟈일크럽 일부 회원의 반대로 첫 원정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경남공고 산악부 후배들과 원정대를 꾸렸다. 당시 고교 산악부 OB회가 단일팀을 구성, 히말라야에 도전한 것은 한국 최초였다. 1984년 봄 푸타히운출리(7246m) 정상에 정상균 강영기 대원을 올려 한국 초등을 일궈냈다. 이 등정은 부산학생산악연맹의 파빌 등정에 이은 부산 산악계의 두 번째 개가였다.

조 대장의 열정과 정열은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1986년 겨울 시즌 산악부 후배 4명(정상균 윤대효 양학술 김진관)으로 등반대를 구성, 한국 팀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7위 봉인 다울라기리Ⅰ(8167m)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지방 최초로 시도한 8000m급 거봉 등반이었기에 국내 산악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등반 시작 한 달여 만에 정상균 대원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악천후로 8000m 부근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

이듬해 재도전을 추진했으나, 원정을 가겠다는 후배가 단 2명뿐이었다. 당시 20대 젊은 산악인이 직장을 팽개치고 해마다 원정을 가기에는 사회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네팔로 보낸 등반 장비와 식량은 선적서류 분실로 화물통관이 지연돼 곤란을 겪던 진주 마차푸차레산악회의 가우리상카르 동계 초등 팀에게 넘겨줬다. 이후 다울라기리는 '부산의 산'으로 각인됐고, 국내 산악계는 부산팀이 먼저 오르기를 기다려줬다. 1988년 부산 산악인 12명으로 합동대를 꾸려 재도전, 캐러밴 도중 화재로 2t가량의 물자를 소실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최태식 대원이 정상에 섰다. 당시 국내 산악계는 세 번의 도전 끝에 다울라기리 한국 초등을 이룬 그의 집념과 도전정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영광이 있기까지 10여 년간의 긴 여정은 절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내의 반대가 극심하자 카트만두까지만 원정대를 인솔하고 중동지역에 수출 상담을 간다는 거짓말로 원정길에 오른 적도 있었다. 원정에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1988년 20여억 원어치의 참치를 냉동 창고에 보관하고 원정을 떠났는데, 갑자기 일왕 히로히토가 사망하는 바람에 일본 소비가 줄어 가격이 반 토막이 나면서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했다. 특히 첫 원정을 떠날 때 초등학생이던 자식들이 대학생으로 성장한 모습에 결국 고산등반의 꿈을 접고 말았다.

히말라야를 가슴에 담은 지 어언 26년, 고산등반에 대한 그의 열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카리스마와 추진력으로 1980년대 부산 산악계의 히말라야 개척 시대를 풍미했던 산악인 중 한사람이었던 그는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히말라야의 꿈'을 키우고 있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