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경남 양산 평산동 산사태 현장과 인접한 아파트 거주 주민들이 이재민 구호소가 마련된 인근 웅상중학교에 모여있다. 홍영현 기자
"복구가 된다 해도 불안해서 못 살것 같아요." "280 ㎜ 비에 이 난리를 피우다니, 정말 한심합니다."
21일 경남 양산시 평산동 웅상중학교 체육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텐트와 이부자리, 급하게 챙겨나온 듯한 생활용품을 담은 상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지난 19일 폭우로 아파트 뒤편의 높이 60m 옹벽이 무너지면서 긴급대피령과 함께 졸지에 난민 신세가 된 한일유엔아이 아파트(18개 동 1663가구) 3개 동(209가구) 주민 250여 명이 임시로 기거하는 곳이다.
이들은 이날로 3일째 대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주민이 친인척 집으로 피신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체육관에서 황당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시가 임시로 급식소 등 제반 시설을 설치했으나 생활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더 난감한 것은 이런 생활이 최소한 오는 25일까지는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비는 그쳤지만 이날 새벽까지 내린 비로 옹벽이 물을 머금고 있어 언제 토사가 다시 흘러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는 이날부터 높이 4m의 방호벽 설치에 들어갔으며 25일까지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주민들은 폭우로 인한 피해보다는 시와 시공업체의 안전불감증에 더 분노하고 있다.
문제의 옹벽은 아파트 승인 때부터 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산 토질이 암반이 아닌 토석인 데다 시공업체 측이 경사면을 가파르게 조성해 불안감이 높았다. 결국 이 옹벽은 아파트 준공과 함께 입주가 한창이던 2008년 8월 15일 시간당 90㎜ 폭우에 붕괴됐다. 이후 복구가 됐지만 시와 시공업체는 2011년 한 차례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 이래 현재까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이 더 어이없어 하는 사안은 해당 옹벽이 2008년 이후 6년째 준공허가가 나지 않았는 데도 업체 측이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시는 옹벽이 안전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허가를 내주지 않은 채 보완을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를 외면했다. 구조적으로 결함이 있던 옹벽은 지난 18일 하루 동안 기습적으로 양산지역에 내린 280㎜ 폭우에 또다시 속절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김모(여·42) 씨는 "한 차례 옹벽이 무너져 내렸다면 재발 위험은 뻔한데도 지금까지 아무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며 시와 업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부산에서 살다 어렵게 내집 장만의 꿈을 이뤄 입주했다는 성모(여·31) 씨는 "보강 공사가 이뤄진다 해도 이제는 안전을 믿을 수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