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포기사 '지리산' 20회 연재

- 책으로 엮은 지리영봉 출간

- 등반 이론 필요 유달리 강조

- 부산등산학교 설립도 참여

- 해외원정 장학기금 조성

'1982년 10월 5일 하오 2시26분. 드디어 부산 사람도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 올라섰다. 가네쉬 히말의 해발 7천1백2m 파빌봉 정상에는 태극기와 부산학생산악연맹기가 펄럭인다. 등정자 이승렬 대원의 피켈에 매달아 놓은 태극기가 유난히 선명하다. 5명의 부산 산사나이들이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파빌봉 정상에 올라서는 그 순간 온 시민의 합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글은 파빌봉 등정소식을 실은 당시 신문 기사의 일부분이다.

파빌봉 등정은 '히말라야 거봉 시대'를 열게 한 부산 산악계 최고의 경사였다. 부산은 물론 지방 최초의 히말라야 원정에서 등정을 이룬 쾌거의 현장에는 등반대원뿐 아니라 취재기자도 있었다. 부산의 등산역사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길목에서 현장을 취재한 기록자는 부산일보사가 파견한 이종길 기자였다. 그는 대한산악연맹(대산련) 부산연맹 상임이사이자 가맹단체에서 활동하는 산악인이기도 했다.

부산 토박이인 이종길 선생은 1937년 수영에서 태어났다. 부산공업중·고교를 졸업하고, 부산대 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66년 부산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해 차장 부장 논설위원을 지냈다. 부산공고 1년 선배인 조용기 목사가 1988년 국민일보를 창간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자 자리를 옮겼다.

선생이 산과 가까워진 것은 신문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1971년 사내 동료와 외부 지인 8명으로 석봉산악회를 창립하면서다. 등산에 입문하면서 곧바로 지리산에 매료된 선생은 1972년 여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허리를 넘는 물을 여러 번 건너는 곤욕을 치렀다. 지리산이 자신을 거부하는 줄 알았는데, 이튿날 아침 법계사에서 맞은 지리산의 해돋이와 운무는 아름다움의 정수였다. 그 후 선생의 지리산 사랑은 1979년 새해 첫날부터 6개월 동안 신문 지상에 20회에 걸쳐 '지리산'을 연재해 첫 결실을 봤다. 이 르포 기사를 기초로 1985년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 지리산 최초의 인문지리지 '智異靈峰(지리영봉)'이다. '발길따라, 느낀 대로, 들은 대로'라는 부제가 달린 '지리영봉'은 1992년 수문출판사에서 '지리산'으로 재출간했다.

평소 후배들에게 등산에 관한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한 선생은 1980년대 대산련 부산연맹 상임이사를 맡아 6년간 봉사했다. 특히 1981년 학술교육이사 때 부산연맹 부설 부산등산학교 설립에 참여, 심혈을 기울였다. '산악인은 인성과 예절이 중요하고, 등반은 탄탄한 이론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으로 등산교육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선생. '부산의 등산교육 이대로 좋은가'란 글을 기고, 부산 등산 인구 100만 시대에 걸맞은 등산교육의 질적 향상과 아울러 산악단체와 행정당국의 역할 등을 촉구했다.

석봉산악회 후배이자 대산련 부산연맹 자문위원인 황계복 씨는 "선생은 이미 1970년대 중반 소속 산악회에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유능한 후배들을 프랑스 국립등산학교나 해외원정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등산학교 유학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1988년 석봉산악회 후배들이 히말라야 눔부르(6957m) 한국 초등을 일궈내는 촉매제가 됐다"고 회고했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우친 선생은 기술등반에도 관심이 많아 일본의 산악잡지 '雪과 岩'을 오랫동안 정기 구독할 정도였다. 비록 암벽이나 빙벽등반은 하지 않았지만, 이론만큼은 여느 클라이머에 뒤지지 않았다.

선생은 신문기자로서 '지리산' 르포기사뿐 아니라 30회에 이르는 '등산교실' 시리즈를 비롯해 부산학생산악연맹의 '파빌봉 등반 원정기'를 썼다. 또 대산련 부산연맹 회보 '금정산'에 '고소등산론'을 연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보람을 느낀 일은 '대산련 부산연맹 30년사' 발간이다. 30년사 발간 추진위원회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정리하는 일은 선생의 몫이었다. 이런 활동으로 1994년 '제23회 지리산 철쭉제'를 맞아 '지리대상'을, 1998년에는 '금정대상'을 받았다.

선생은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부산 산악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부산산악포럼에서 매년 발행하는 '마운틴포럼'에 '부산등산사 재조명'을 비롯해 '금정산 암벽코스와 부산바위꾼' '부산의 진산 금정산' '금정산성' '부산 동부의 산' '영남알프스의 전설과 계곡, 명소' 등 많은 글을 실어 부산 산악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평소 "등산은 여럿이 함께 오를 때가 많지만 결국은 혼자서 육체적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하며, 정신 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철학하는 스포츠라고 하겠다. 더불어 내가 오르지 못했던 보다 높고 험한 산들은 후배들이 오를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참된 산악인의 자세라고 믿는다"라고 말해 선생의 뚜렷한 등산관을 엿보게 한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지만 아직도 야영 장비를 꾸려 틈틈이 산을 찾는 선생은 후배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며 산 얘기에 몰두한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