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토미 초·중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서 어린이와 마을 주민들이 어우러져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재한 기자

-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서
- 주민 12만 명 희생 슬픔 간직
- '평화를 생각하는 교육' 한마음
- 주민 단합된 힘이 승리 원동력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찾는 일본의 대표적 관광지 오키나와에서 남서쪽으로 450㎞ 떨어진 곳에 있는 다케토미(竹富). 일본의 최남단 섬마을인 다케토미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강풍에 맞서 유일하게 극우 교과서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정부와의 끈질긴 대결 끝에 독자적 교과서를 채택함으로써 '교과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8·15 광복 69주년을 맞아 국제신문은 그 해답을 찾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다케토미 마을을 현장 취재했다.

다케토미로 가는 여정은 멀었다. 김해공항에서 항공기로 후쿠오카에 도착해 일본 국내선으로 2시간을 걸려 도착한 오키나와 나하공항. 여기서 다시 이시가키행 항공기로 1시간을 더 날아가야 한다. 버스로 1시간 거리인 이시가키 여객터미널에서 페리로 15분 정도 걸려 도착한 섬이 다케토미다. 땅 모습은 제주 가파도를 연상케 한다. 평평한 대지, 돌담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단층집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마을이다. 오키나와 현 소속의 다케토미는 크고 작은 섬 16곳으로 이뤄진 기초자치단체인 '다케토미초(町)'를 형성하고 있다. 총 주민 수는 4217명.

이 조그만 섬 주민들은 일본 열도 중 유일하게 독자 교과서 사용을 관철함으로써 저항과 일본평화운동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 일본 정부의 회유와 압력 물리쳐

기자가 찾은 지난 6월 28일은 다케토미초·중학교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200여 명이 홍군 백군으로 나눠 달리기와 기마전 등을 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회와 비슷했다. 1892년 개교해 122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는 다케토미 마을 공동체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공동체 정신이 아베 정권의 교과서 왜곡에 맞선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발판이 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다케토미와 일본 정부와의 교과서 싸움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정부는 지역별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채택지구를 정해 해당 지구가 정한 교과서를 소속 기초자치단체가 사용토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다케토미는 인근 이시가키, 요나구니와 함께 '야에야마 채택지구'에 포함됐다.

야에야마 채택지구는 그해 여름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동남아 국가에 희망을 안겼다"고 기술하는 등의 극우 사관이 가득 찬 중학교 공민(사회) 교과서를 채택했다. 다케토미는 이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고 중립적인 내용의 교과서를 선택했다. 문부성 등의 시정요구에도 "정치의 교육 개입"이라며 거부했다.

일본 정부는 집요한 회유와 압력이 더는 통하지 않자 지난 4월 다케토미를 겨냥해 채택지구 교육위가 선택한 교과서를 '반드시' 채택하도록 하는 '교과서 무상조치법'을 통과시켰다. 그러자 섬 주민들이 즉각 반격했다. 개정안에서 채택지구의 구성단위를 시·정·촌(市·町·村)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는 조항을 끄집어내 야에야마 채택지구에서 탈퇴하고 독자적인 교과서 채택지구로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부가 교과서 구입 지원금을 주지 않자 주민의 모금으로 교과서를 구입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저항했다. 결국,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가 다케토미의 교과서 독자 결정권을 승인해 마침내 정부와의 기나긴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 "평화를 생각하는 교육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인 교과서 전쟁에서 다케토미가 승리한 것은 오키나와 주민의 전쟁 체험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동행한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은 분석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부터 6개월간 오키나와 주민 3분의 1인 12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케토미 마을은 이런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학교 마에우에 자토(52) 교장은 14일 "아이들에게 엉터리 역사가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가르쳐야 한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면서 "특히 각종 모임과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극우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등 하나로 똘똘 뭉친 지역주민의 단합된 힘이 중립적인 교과서 채택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했다.

다케토미 교육위원회 게다모리 안조 교육장은 "일본 정부가 채택을 요구하는 교과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왜곡된 역사적 내용이 담겼다"면서 "(일본군에 의해 주민들이 희생된)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면 평화를 생각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케토미=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