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10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제11회 부산학생등산대회' 폐막식. 앞줄 맨 오른쪽이 손경선 선생.

- 통관업 종사하며 등산 시작
- 1971년 아페나인산악회 창립
- 47년 역사의 전국 3대 행사
- 부산학생등반대회 이끌어
- 고교 산악부 지원 후진양성

부산 등산계 초기 발전에 큰 영향을 준 행사 중 하나가 부산학생등산대회다. 학생들에게 등산기술과 올바른 자세를 심어주자는 취지로 부산에서 처음 개최된 등산대회는 한국산악회(한산) 경남지부와 대륙산악회 쟈일크럽 주관으로 1964년 금정산에서 열렸다. 당시 4·19혁명을 잇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젊은 학생들의 순수한 등산 행위는 시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대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산산악연맹(1965년 결성, 1983년 해체)은 1966년 여름 '제1회 부산학생등산대회'를 열었다. 당시 150만 인구가 살던 부산 시가지를 떠들썩하게 했던 행사였다. 부산역 광장에서 개회식 후 선수와 임원 200여 명은 '나무를 심으며 산을 타자'는 펼침막을 앞세우고 충무동 광장까지 시가행진을 하며 계몽운동을 폈다. 금정산에서 이틀간 대회를 치른 뒤 시민에게 산악운동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키고자 성지곡수원지에서 서면로터리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비록 참가팀이 줄어 2013년 중단됐지만, 47년간 매년 열린 이 대회에 부산의 수많은 정통파 산악인이 거쳐 가면서 부산 등산계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부산산악연맹과 한산 부산지부 구성원들의 희생으로 치러졌던 이 대회의 성장과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산악인이 손경선(1932~) 선생이다. 부산산악연맹 회장과 한산 부산지부장을 역임한 선생은 30여 년간 등산대회를 통한 학생산악운동의 활성화와 학생 산악인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했다.

선생과 등산대회의 인연은 1972년 아페나인산악회(현 거암산악회) 회장을 맡아 부산산악연맹에 가맹하면서 시작됐다. 신업재 김재문 회장에 이어 1975년 부산산악연맹 회장에 취임한 선생은 '등산대회는 경주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등산의 올바른 자세와 등산기술을 선도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참가에 더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대회가 '60㎞ 극복등행대회'(대구), '전북등산대회'와 더불어 전국 3대 등산대회의 하나로 꼽힐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불굴의 사명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후진 양성에도 앞장섰다. 등산 장비가 귀했던 1970년대, 통관업에 종사하던 선생은 외항선원들을 통해 등반로프를 비롯해 피켈 아이스바일 크램폰 등의 값비싼 등반장비를 일본 홍콩 등지에서 들여와 고교산악부에 기증하는 한편, 동·하계 장기등반 때면 경비와 장비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970년대 경남공고와 동의공고 산악부 학생들을 산악회에 대거 영입해 등반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 일천했던 두 학교 산악부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후 두 학교가 OB산악회를 만들어 딴살림을 차렸으나, 지속적인 후원으로 오늘날 산악 명문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1970년대 '손 회장의 장비는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부산 등산계에 회자할 정도로 선생의 호방한 성품에 많은 젊은 등반가가 존경하고 따랐다. 특히 1980년대 중반 부산산악연맹을 흡수·통합하는 과정에서 침체에 빠졌던 한산 부산지부장을 맡아 어수선한 분위기를 쇄신, 오늘날의 체제를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부산 산악계에 남긴 선생의 발자취는 넓고도 깊다.

선생은 황해도 순안에서 태어났다. 한의사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경성의전을 나와 공의(公醫)로 일했던 부친이 해방 후 친일파로 몰려 숙청 위기에 처하자, 1946년 가족과 함께 38선을 넘어 서울로 내려왔다. 서울 중앙중학교(6년제)를 다닐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동대문시장에서 미군 물건을 취급하다 서울대를 나와 부산의 외국회사에 근무하던 큰형에 이끌려 부산에 왔다. 중구 영주동에 정착한 선생은 해군 원호처의 하역을 담당하던 동방운수에 다니다 대동운수로 옮긴 뒤 부두하역업계를 주름잡았다. 당시 수산물 중석 가발 등의 수출로 많은 돈을 모았고, 1970년대 중반 대선통운공사를 차려 현재까지 통관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다.

집에서 '금정산 할배'로 불리는 선생의 등산 인생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부산 근교 산을 찾다 통관업에 종사하던 산꾼들을 모아 1971년 아페나인산악회를 창립, 등산운동에 뛰어들었다. '산은 인생의 기본을 배우는 도장'이란 등산관으로 평생 산에 몰두한 선생은 1984년 금정대상을 받은 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다만 자연의 일부를 빌어서 육체적 정신적인 삶을 꾸려 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엄격히 다스려 긍지를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산악인이 돼야 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부산 등산운동사에 초석을 놓은 부산학생등산대회의 발전을 위해 반평생을 헌신한 선생은 몇 년 전부터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등산 활동을 접었다. "인생 80에 직장생활 50여 년, 등산 50여 년에 실패한 것도 없지만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는 선생. 팔순을 넘긴 고령에도 산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가끔 후배들과 어울려 왕성한 산악활동을 하던 시절의 향수에 젖는 낙으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