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하구 신평동의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의 마당에서 직원들이 장류를 담근 장독을 살펴보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어르신들 손맛 사업으로 발전
- 2011년 착수해 시행착오 겪다
- 3년 노력 끝에 궤도 올라서

- 11월엔 조합서 만든 첫 장 완성
- 지금은 손두부·청국장 판매로
- '믿을 수 있는 음식' 신뢰 얻어

- 마을 저소득층 60명인 데 반해
- 현재 11명만이 직원으로 근무
- 주민 참여·소득 제고 방안 고심

소형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을 찾았다. 부산 사하구 신평동의 작은 동산 동매산 자락에 있는 작은 공동체이다. 원래 '모래구찌'로 불리다가 '모래톱 마을'로 이름이 바뀐 이곳에서 노인들이 한데 뭉쳐 지난해 11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곳은 멀리 을숙도 인근의 강과 바다가 공장 굴뚝 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장맛은 손맛

젊은 새댁의 음식솜씨가 시어머니의 손맛이 내는 깊은 맛을 따라가기는 힘들다. 손맛은 정성과 세월이 함께 버무려져야 깊어지기 때문이다.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은 바로 이런 손맛에 착안해 전통음식을 만들기로 하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최근에 들어선 빌라 주택까지 합치면 300가구에 육박하는 마을이지만,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의 구성원은 마을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사는 노인 11명이 주축이다.

서옥순(68) 대표는 모래톱 마을의 통장을 오래 맡은 마을의 일꾼이다. 모래톱 마을에 산 지는 34년. 서 대표는 "처음에는 사하구에서 제안한 행복마을 사업이 감천문화마을처럼 도시를 재생하거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인 줄 알고 반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구성원이 직접 힘을 모아 사업의 종목까지 정해야 한다는 조건을 접하고 상당히 당황했다"고 회상했다. 서 대표가 주도해서 생각해낸 '사업 아이템'이 바로 전통 장 만들기였다. 서 대표와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간장과 고추장 등을 직접 담가 먹었다.

서 대표는 전국 각지의 전통음식 장인을 만나 비법을 배우고 마을 사람에게 전파했다. 2011년 이후 3년 동안 마을 노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해 지금의 각종 장류와 청국장, 장아찌, 손두부 등을 만들게 됐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도 하느라 사업은 이제 겨우 궤도에 올라섰다.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의 마당에는 간장 고추장 된장을 발효하는 장독 90개가 있다. 지난해 11월 담근 장류가 숙성하고 있다. 올해 11월께 장은 완성된다. 지금은 손두부와 청국장을 만들고 있다. 국산 재료를 엄선해 노인들이 직접 만든다. 특히 이곳 청국장은 맛은 좋고 특유의 냄새는 덜해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의 오랜 손맛이 음식사업으로 승화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

모래톱 행복마을의 인기 품목인 손두부를 만드는 모습. 이곳 손두부는 인기가 좋아 하루에만 100모 가까이 주문이 들어온다.

모래톱 행복마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마을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이다. 현재 마을에 사는 저소득 주민은 대략 60명. 이 중 11명만이 음식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달 소득은 50만 원 수준이다.

서 대표는 "주민 참여를 늘리는 것과 소득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아직 장이 만들어지지 않아 부수 사업인 장아찌, 손두부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며 "올겨울 장이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사업은 눈에 띄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 사업은 청국장과 손두부. 장류를 아직 시장에 내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청국장과 손두부 판매는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을 홍보하는 효과도 크다.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평을 얻게된 것이 큰 자산이다.

손두부 주문은 하루에 100모 가까이 들어온다. 주문이 들어온 두부는 오전에 모두 소화해야 하므로 모래톱 행복마을 직원인 마을 노인들의 출근 시간은 새벽 5시께로 아주 이르다. 오전에 두부를 만들어내고 배송한 다음 두부가 남으면 오후에는 직접 들고 다니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시식 서비스를 하면서 판매한다.

사하구청과 주민들의 도움에 힘입어 모래톱 행복마을의 일손은 점차 바빠지고 있다. 판로는 조금씩 넓어져 유치원, 학교 등에도 두부가 들어갔다. 제법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손두부는 모래톱 행복마을의 자부심이 됐다. 손맛과 정성을 버무려 만든 두부가 이웃의 밥상을 맛있게 가꿔준다는 보람도 함께 싹트고 있다.


# 김순자 할머니

- "간장독은 절대 못 보여줘, 부정 타니까…대신 손두부는 다 먹고가"

장독을 열어 간장을 구경해도 되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순자(70) 할머니는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부정 탄다"는 것이다. 김 할머니는 끝내 장독 뚜껑을 열어주지 않았다. 장독에 담은 장류가 잘 익는 데는 일 년가량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에 뚜껑도 열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믿음을 김 할머니는 간직하고 있다. 그런 정성으로 할머니는 장이 만들어질 올해 겨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부산 사하구 신평동 모래톱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산 아래에는 포구가 있었으며, 을숙도 인근 삼각지에 쌓인 모래가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결혼하면서 고향 마을을 떠나 잠시 경남 밀양으로 갔지만, 고향 생각에 다시 돌아왔다. 34년 전이다.

김 할머니는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자녀들은 결혼하면서 모두 부산을 떠났다.

"모래톱 마을에서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품목은 아마 올겨울에 숙성되는 장류가 될 것 같아. 모래톱 행복마을의 직원들이 젊었을 때부터 담갔고, 자녀들이 결혼하고 떠난 뒤에도 혼자 장을 담가 자식들에게 보냈거든."

김 할머니는 "나이 들면서 장 만드는 것도 힘에 부쳤는데 때마침 이곳에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모래톱 행복마을 협동조합 서옥순 대표는 "전국의 장인들에게서 배운 기술을 마을 주민들에게 전파할 때 김순자 할머니께서 도움을 많이 줬다. 김 할머니는 장을 담그는 솜씨가 참 좋은 분이다"고 귀띔했다.

"여기서 일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장을 함께 담그니 일이 재미가 있지." 김 할머니는 "새벽 5시30분 전에 출근하고 오전에 두부를 기계 없이 오직 손으로 90~100모 정도 만든다"고 설명했다.

처음 만났을 때 "부정 탄다"고 면박을 줘 무서웠던 김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면서 속에 둔 잔정을 하나 둘 씩 꺼냈다. 할머니는 오전에 만든 손두부를 손수 잘라 기자 앞에 내놓았다. 손두부의 참맛을 느끼며 감탄하며 먹었지만, 배가 불러 남겼다. 인사하고 밖으로 나서려 하자 김 할머니의 음성이 뒤통수를 울렸다.

"다 묵고 가지 어데 가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