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마을기업 행복나눔장의 매장에서 주부들이 시골에서 직거래 형태로 공급된 신선한 농산품을 고르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여성자원봉사회 2010년 설립
- 주택가에 13평 남짓 가게 열어
- 누구든 농촌서 상품 공급 가능
- 도시민들에 직거래로 판매

- 월 500만 원 매출, 수익성 낮아
- 시장·마트보다 가격 싸진 않아
- 농민에 제값 주고 소량구매 탓

- 직장맘 위한 반찬 서비스 시작
- 구청서 여는 번개장 주문 쇄도

2010년 4월 부산 연제구 연산5동 주택가 골목 한 쪽에 마을기업 (주)행복나눔장이 문을 열었다. 13평 남짓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때깔이 좋은 곡물, 채소 등 우리 농산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소규모 공동주택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기업'이라는 이름을 떠안고 있기에는 위치가 다소 엉뚱하다. 규모도 작다. 그러나 '마을'에 초점을 맞추면 행복나눔장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다.

■누구나 참여하는 직거래 장터

행복나눔장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상설 농산물 직거래 장터'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나 정교한 운영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수확 철에 고향에 갔다가 시골집에서 농산물을 잔뜩 가지고 올라와서 이웃집에 나눠 준 경험이 있다면 이해하기 쉽다. 행복나눔장의 운영 방식도 이웃 간 정이 살아있는 그 모습 그대로다.

행복나눔장은 '아줌마 부대'인 연제 여성자원봉사회가 세웠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저 좋은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회원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준다는 작은 꿈이 시작이었다. 이익이 난다면 봉사회의 자원봉사 활동에 쓸 생각이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행복나눔장의 직원이다. 동네 사람 누구든 고향에서 좋은 농산물이 수확됐다면 오현옥 행복나눔장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 우리 고향 방앗간에서 참기름 짜놨다는데" "그래 언제 가지고 올 건데?" 입고 상품 선정과 운송은 동네 주민이, 승인은 동네 '언니'가 하니 상품 입고는 순식간에 결정된다. '우리 농촌에서 생산된 질 좋은 농산물' 말고는 다른 조건은 없다. 오 대표가 자신의 고향에 갈 때면 고향 마을 사람이 농산물을 들고 와 마당에 쌓아 놓기도 한다. 이렇게 도시로 들여온 농산물은 동네 사람에게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보기에 따라서는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도 도시와 농촌의 마을공동체를 연결해 '윈윈'한다는 목표를 이루는 데는 훌륭한 방식이란 점이 증명됐다. 행복나눔장의 손님은 속을 걱정 없이 안심하고 좋은 농산물을 얻고, 농민은 제값 받고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피땀 어린 농산물을 줄 수 있다.

■수익성보다 공익성 추구

새로운 유통 모델이긴 하지만, 생각만큼 수익은 높지 않다. 한 달 50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데, 시간제 근무자 월급과 사무실 임대료, 각종 운영비 등을 제하면 겨우 유지만 할 정도다. 오 대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땐 대박 날 줄 알았다"고 한다. 연제 여성봉사회 회원 120여 명이 각자 한 명씩만 가게를 소개해도 240명의 고정 고객이 생긴다는 계산에서였다.명실제로 대박의 꿈이 이뤄질 듯한 때도 있었다. 연제구청이 내는 구보에 행복나눔장이 소개되면서 문의 전화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들이 구매자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직거래'라는 단어 때문에 가격이 쌀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전화했다가 실망한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진열대를 보니 참깨 1.2㎏ 값이 3만 원이다. 전통시장이나 마트보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그렇다고 행복나눔장이 이익을 많이 챙겨서 가격이 비싼 것은 아니다. 쌀 1.6㎏을 팔아도 남는 돈은 고작 500원 정도란다. 농민에게 제값을 줘야하고, 소량 구매다보니 이익을 남기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래도 자부심은 대단하다. "대형마트에서는 이 정도 품질의 참깨가 가격이 얼마나 되냐"고 오 대표에게 물으니 "마트에서는 이렇게 품질 좋고 정성이 담긴 참깨를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 테니 비교 불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행복나눔장 손님도 마찬가지. 좋은 식재료를 넘어 '보약' 수준으로 떠받드는 고객이 많다. 오 대표는 "젊었을 때와 다르게 나이가 들면서 음식이 중요하다는걸 느끼게 마련"이라며 "그런 손님이 항상 행복나눔장을 찾는다"고 했다.

■엄마표 반찬도 맛보세요

마을 공동체의 참여로 운영되는 행복나눔장은 이제 단순한 가게라기보다 마을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주위에서 "손님보다 직원이 많다"고 할 정도다. 연제 여성자원봉사회 회원이 모여 홀몸어르신이나 저소득 주민에게 반찬 봉사를 할 때 준비 장소로도 활용한다.

새로운 사업도 생겼다. 바쁜 '직장맘'에게 주문을 받아 만드는 반찬 서비스다. 김치나 오이소박이 같은 밑반찬부터 사골국까지 주문이 들어온다. 그 때마다 여러 회원이 솜씨를 발휘해 반찬을 만든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연제구청에서 행복나눔장이 개최하는 번개장도 열린다. 주민은 물론, 연제구청 직원도 이 때를 기다린다. 오 대표가 한번 구청에 다녀가면 주문이 밀려들 정도다. 오 대표는 "자녀에게 좋은 음식 해먹이려는 엄마 마음은 같다. 그런 마음이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쉬워하는 사람을 도와주니 기쁘다"고 말했다.


# 오현옥 행복나눔장 대표

- "지원금 혼자 정산하기엔 어려워… 입소문 타면서 고객들 멀리서도 찾아와"

오현옥(사진) 행복나눔장 대표는 '주부 9단'이지만 사업에는 초보다. 주부의 사업가 변신은 큰 도전이다. 당연히 오 대표도 행복나눔장을 운영하면서 숱한 곡절을 겪었을 것 같았다.

힘든 점이 있었냐고 물으니 "마을기업 지원금은 이제 준다 해도 못 받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업 계획서에 지원금 사용 정산 서류까지 오 대표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는 힘들었던 까닭이다. 1년여 간 경리를 따로 채용했고, 현재도 1주일에 한 번씩 경리 담당이 일을 보러 출근한다.

특히 '마을기업'이라는 이름이 오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마을기업이므로 수익을 올려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경영은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 그런 점에서 지금의 사업장 위치가 아쉽다. 오 대표는 "상가나 시장으로 가면 기존 상인에게 폐가 될까 봐 일부러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운영상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원금을 받았으니 고용도 창출하고 공익사업도 해야 하는데, 그만큼 수익이 나지 않으니 고민이다"고 말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두 차례에 걸쳐 지원금 8000만 원을 받아 여유가 있었다. 빈 사무실을 가게로 단장하고 연제 여성자원봉사회 회원 3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현재는 2명으로 줄였다. 현상 유지는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오 대표가 지인에게 상품을 권하고 연제구청에서 번개장을 여는 등 수완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힘들었다.

다행히 입소문을 타면서 사정은 나아졌다. 동네 주민은 물론이고 인근 수영구나 부산진구에서도 손님이 찾아온다. 큰 욕심 없이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있다. 대단지 아파트를 돌며 무료 요리 강좌를 하는 것이다. 젊은 엄마들 손맛을 키워주고 싶다.

오 대표는 "요즘 다들 바쁘다 보니 친정어머니 손맛을 이어받고 결혼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즉석 음식이나 사 먹는 음식에 길들고 있다. 음식은 재료와 정성인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언젠가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태 엄마들 고민을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