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창원의 집에서 가진 전통혼례시연회 모습.

- 봉림산 자락에 9년째 둥지 틀어
- 통영오광대 전수받아 마당극 몰입
- 안민재 설화 배경 '안민연가' 등 탄생
- 전통문화 보존·혼례식 시연회 열어

- 일제시대 창원오광대 사진 입수
- 피나는 노력 끝에 70년 만에 재현
- 내년엔 성산아트홀서 공연 예정
- 재정 독립까진 아직 갈길 멀어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어떤 조직이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상·하 두 개의 둥근 돌로 이뤄진 맷돌은 곡식을 가는데 사용하는 우리 고유의 생활도구다. 맷돌이 작동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바로 손잡이다. 맷돌 손잡이를 순우리말로 '어처구니'라 부른다.

'문화두레 어처구니'. 창원의 명산인 봉림산 자락에 9년간 둥지를 틀고 신명나는 공연을 통해 지역문화를 살찌워온 마을기업이다. 10여 명으로 이뤄진 이 단체는 의창구 사림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공연내용에 따라 단원수는 더 늘어난다. 지역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셈이다.

이들의 공연연습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관광객이나 자라나는 2세들에게 소개하는 창원의 집 부근에 있다. 봉림산의 고목나무와 수많은 흔적들은 이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공연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또 전통문화 보존과 창작공연, 무료 시연공연, 체험공연 등도 펼치고 있다. 때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혼례 시연회를 갖고 있으며 유료 혼례식도 치러준다. 그야말로 어처구니는 109만 창원시민의 품격을 높여주는 문화적 부싯돌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탈춤과 마당놀이에 미친 젊은이

어처구니의 뿔바우마을굿 공연장면.

어처구니는 손동현(46) 대표와 단원들의 땀과 혼이 서려있는 문화공연 기업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손 대표는 대학시절 연극도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뒤 창원의 한 극단에 가입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왜 뛰어난 연극 인재들이 극단을 뛰쳐나가야 하는지 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시절이었다"며 "결국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술도 상업성을 외면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관객을 불러모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손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연극을 하는 틈틈히 서민의 애환이 담긴 마당극 공연에 몰입했다. 후배들과 함께 직접 통영으로 찾아가 무형문화재 탈춤인 통영오광대를 전수받은 뒤 마당극이라는 장르에 눈을 뜨게 됐다. 서민들의 애환과 웃음, 눈물, 해학이라는 코드를 모두 담고 있는 마당극이야말로 적은 부담으로 관객들이 힐링의 시간에 동참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배경 속에 2005년 어처구니는 탄생했다.

대표가 된 그는 경영학도 출신다운 재능도 십 분 발휘한다. 대학시절부터 연극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연기력과 통영오광대 전수자로서의 춤꾼 기질까지 합쳐져 창원 공연문화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특히 지역 설화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텔링으로 수많은 창작 공연을 만든 능력은 독보적이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며느리와 친정식구가 1년에 한번 해후하는 전설이 있는 창원 안민재고개 설화를 배경으로 만든 마당극 '안민연가'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첫 해 공연부터 관객의 반응도 좋았다.

손 대표의 주체할 수 없는 공연기획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봉림동 느티나무 전설을 소재로한 '불목하니'가 그렇고, 퓨전 오광대놀이인 '며느리 밥풀꽃' 등도 설화를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 만든 사례들이다.

지역 예술계의 한 원로는 "문화 불모지에서 자체 공연단을 꾸려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으로 웬만한 노력만 갖고는 안된다"며 "어처구니는 지역 전통은 물론 현대적 트렌드까지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창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사라진 창원오광대를 재현하다

어처구니 단원들이 만들어낸 최대 성과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창원오광대의 재발견이다. 단원들이 수 년간 통영오광대에서 배운 춤사위와 대본 등을 토대로 70여 년 전 사라진 창원오광대를 재현해 낸 것이다. 그동안 창원오광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30년대 시연된 기록이 있다. 대본도 있었지만 복원작업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공연 복식 등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원지역 예술계에서도 수 차례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난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8년 우연한 기회에 고민이 실타래가 풀리듯 해결됐다. 어처구니를 찾아온 한 지인이 참고 하라고 준 일제 강점기 시대 사진집에 당시 창원오광대 복식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이후 단원들의 피나는 노력속에 수 년 전 첫 공연을 가졌다.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일반 관객들조차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어처구니 공연의 특성인 과거에 머물지않고 현대에 맞는 소재를 가미한 것이 관객들의 호응과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이다.

지역의 한 문화계 인사는 "경남지역의 오광대 역사는 합천, 창원을 거쳐 통영, 고성으로 흘러간 것으로 추정된다"며 "창원오광대는 창원 특유의 전통과 서민들의 기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역문화의 결정판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처구니는 모두 7과장으로 이뤄진 1시간짜리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행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해학과 익살스런 부분을 따로 떼어내 15분짜리 소작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강상길(47) 기획실장은 "비록 소수지만 단원들이 의기투합해 지역문화를 살찌워 나간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의 설화를 스토리텔링화해 마당극을 만드는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어처구니는 내년도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10주년을 맞아 창원시의 대표적 무대인 성산아트홀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그동안 만들어왔던 수많은 공연들을 시민들에게 새로 평가받는다는 자세로 임하겠다는 게 손 대표와 어처구니 단원들의 각오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재정적으로 독립하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창원시 마을기업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기업 등으로 다양한 후원의 손길을 받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 대학시절부터 연극인 꿈꿔, 경영학 전공 기획자 자질도…스토리텔링 능력 높은 평가

■ 손동현 대표는

문화두레 어처구니의 손동현 대표는 귀공자풍의 용모를 한 인물이었다. 큰 고생없이 자란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말을 통해 문화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열정과 끼, 그리고 인생의 내공까지 읽을 수 있었다. 다음은 이를 엿볼 수 있는 한 일화.

대학 시절 그는 연극공연에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몇 달 전부터 대학 화장실에 수 차례 광고지를 붙이는 방법. '마술가게'라는 제목의 연극 홍보를 위해 그는 첫 광고지 카피를 '마술가게가 문을 연다'로 정했다. 이후에는 '마술가게가 며칠 문을 연다'는 식으로 내용 업그레이드 했다. 갈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하는 트릭 기법이었지만 결과는 대박이 났다. 궁금증을 참지못한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온 것이다.

이 같은 수완은 그가 연극인뿐 아니라 기획자의 자질도 겸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자 긴 방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촉망받는 연극인은 이상이었고 어려운 생활고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꿈과는 달리 한 때는 선원이 됐다. 망망대해에서 작은 배에 의지한채 복어를 잡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 그를 삼각파도가 넘실거리는 거친 바다로 이끌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그의 꿈은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배에서 내렸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통영오광대를 전수받은 뒤 마당극으로 방향을 돌려 매진한 결과, 지금에 이르게 됐다.

현재 그는 오는 23일 막을 올릴 예정인 공연을 기획 중이다. 이 공연은 연극계 최초로 창원권 3.1만세운동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지역 예술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단원들은 지역 문화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공연 수입이 넉넉치 못해 늘 미안할 따름"이라며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릴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