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일대가 연일 눈 폭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부산에서도 폭설로 지역주민 등이 고통을 당한 곳이 생겼다. 동해안의 끝 지점에 위치한 부산 해운대와 기장 일대에는 11일 누적 적설량이 25㎝를 넘어서는 등 이른바 '겨울왕국'이 연출됐다.
이날 오전 중구와 동래구 부산진구 등지에서 해당 지역으로 출근하던 시민들은 지각하기 일쑤였고, 적잖은 학교가 휴교했다.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돼 제설 작업이 진행되는 등 동해안 폭설 피해 현장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지난 10일에 이어 이날도 부산의 공식적인 적설량(중구 대청동 관측소 기준)은 '제로'를 기록했다. 이는 산과 바다, 강을 모두 아우르는 부산의 지형적 특징이 빚어낸 조화다.
11일 이틀째 부산 도심에서는 날리는 눈송이를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반겼지만, 기장 일대는 온종일 난리였다. 그나마 고층 빌딩 숲과 얽히고설킨 도로가 연결된 해운대의 상황은 나은 편이었다.
지난 9일 늦은 밤부터 눈발이 세력을 확장한 기장군에는 11일까지 많은 눈이 쏟아져 농가의 비닐하우스 등이 파손되고 도로에서는 추돌 사고가 잇따랐다. 주민 불편이야 당연지사. 이 때문에 지역주민은 물론 공무원들과 경찰, 군인들도 비상체제에 돌입해 제설작업에 나서느라 부산을 떨었다.
함박눈이 끊임없이 쏟아지던 이 날 기장군에서 만난 주민은 입을 모아 "이렇게 큰 눈을 보는 것도 몇 년 만인 것 같다"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달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취재에 나선 뒤 이날 오전 10시께 기장군에 가까워질수록 굵은 눈발이 소리를 내며 차창에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자 온통 새하얀 눈밭이 펼쳐졌다. 조금 전까지 눈에 들었던 부산 도심 풍경과는 확연히 달랐다.
기장경찰서 앞에서 제설작업 중이던 기장경찰서 오창현(49) 경위는 열댓 명의 직원들과 함께 갓길로 삽으로 눈을 퍼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2~3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며 눈을 치우고 있다.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경찰이 나서서 협조하라는 지시에 따라 부산 경찰들도 기장군의 제설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군청 소속 공무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기장군 재난안전과 강정수(57) 계장은 "며칠째 민원 상담을 받고 일일이 답변을 해주는 바람에 이제 목소리가 잘 터지지 않을 지경이다"고 말했다. 강 계장은 "550명이 넘는 읍면 공무원까지 총동원됐으며, 군인 40여 명도 나와 새벽 3시부터 작업 중"이라며 "덕분에 넓은 지역이지만, 어느 정도 원활한 소통 상태가 되었다"고 전했다.
기장군 측은 아직 민원 접수가 본격적으로 접수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 상황은 집계하기 어렵지만, 적잖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날 쪽파를 재배 중인 일광 지역의 비닐하우스가 반파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피해 상황 접수가 잇따랐다.
교통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학교에도 비상령이 내렸다. 이날 기장군에서는 7개 초등학교와 2곳의 고등학교가 휴교했다. 또 초등학교 1곳은 등교시각을 오전 10시로, 중학교 1곳은 졸업식을 오전 10시에서 11시로 각각 늦췄다. 문자메시지로 졸업식 연기 소식을 받았다는 한 학부모는 "부산에서 눈이 많이 내려 이런 일도 생기다니 낯설다"고 말하면서 웃어 보였다.
쏟아지는 함박눈은 금세 쌓였으며, 눈 속에서 고립된 차량을 주민들이 나서 밀거나 가게 앞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내는 주민의 재빠른 손길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사는 조현지(30) 씨는 "눈 내리는 풍경이 때로는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질척거리는 도로나 차량 정체 등 불편한 점이 많다"며 이제는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래도 어린 학생들은 눈 내리는 날이 마냥 즐거운 분위기였다. 기장중에 다니는 윤소희(16) 양은 친구들과 함께 눈 쌓인 공원에서 영화 '겨울왕국'의 캐릭터 '올라프'를 닮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윤 양은 "춥고 길도 미끄러워 불편하지만, 눈을 보니 신 나고 즐거워 세 시간째 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기상청은 12일에는 눈 소식이 없지만, 13일 흐리고 눈이 올 것으로 예보했다. 기상청은 이번 눈이 강하게 부는 동풍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동해안과 가까운 기장과 해운대에 특히 눈이 많이 왔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