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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48> 극단 '시나위' 김근아 씨

무대서 인생 배우며 또 다른 나를 찾는 천상 배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29 20:47:28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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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에 몰입하고 있는 극단 시나위 배우 김근아. 김근아는 본명이며 하린은 예명이다.
- 28세 때 입문, 25년째 열연
- 극단서 만난 박상규씨와 결혼
- '돼지와 오토바이'서 1인 9역
- 2001년 부산연극제에 참가
- 최우수연기상 수상 영예도

1988년 '맥베드'로 연극에 입문한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서 온 극단 '시나위' 여배우 김근아(50·예명 하린) 씨의 광안동 집을 최근 찾았다.

김 씨는 영도 남여상을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니며 부산진역 앞 한일다방 DJ를 맡을 만큼 끼가 넘쳤다. 어느 날 후배의 권유로 연극공연 음향을 맡게 됐을 때, 이를 지켜본 당시 연출가 김준기(현 경성대 교수) 씨가 연기자로 추천을 하게 된다. 문제는 부친을 설득하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용기내어 여쭈었다. 연극을 해 보겠노라고. "그래, 그거 너에게 맞는 것 같다. 해 봐라"라는 상상치도 못한 답이 돌아왔다. 28세였다. 이후 부친은 임종할 때까지 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곧장 극단 레퍼토리시스템에 입단했다. 극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연습 중인 '맥베드'에 데뷔, 마녀역을 맡았다. 대사 한 줄 없는 단역인 데다 선배들의 연기를 보며 스스로 터득해야만 했다. 지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습은 배우의 생명이다. 맡은 역을 소화해 충실히 연기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도 소중했다. 주고받는 대사들에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세계를 보았다.

하지만 화려한 의상과 조명으로 무대에서 받는 박수 못지않게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배우였다.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고 연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려면 배우의 연기력이 우선이다. 내면적인 연기를 위한 내공을 쌓아야 했다. 극 중 인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이런 해석은 같이 무대에 서는 다른 배우들과 교감에서 출발한다.

1992년 극단 레퍼토리에서 만나 '맥베드'의 무대에 함께 선 박상규 씨와 혼인한다. 평생 연극하며 살자고 약속한 두 사람은 그해 가을 무대예술제 때 레퍼토리 공연을 마친 후 무대에서 관객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다. 20대 때부터 연극을 시작한 박 씨와의 만남은 김 씨의 인생 좌표가 되고 전환점이 되었다. 부군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한없이 행복하고 무대에 서면 그 행복은 몇 곱절로 커진다. 무대에서의 자신감도 성취감도 행복으로만 다가온다.

김 씨를 여배우로 성장시켜 준 것은 1994년 부부 2인극 '돼지와 오토바이'였다. 박 씨는 남주인공 1인역이었지만 하린은 1인 9역이었다. 무대를 들락거릴 때마다 선정인물이 바뀌었다. 여의사와 여판사, 20대 아가씨에서 40대 아줌마까지 다양한 인물 9명의 역을 소화해야 했다.

공연은 성공이었다. "새내기 배우인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우려도 씻어냈고, 선배들로부터 '배우'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95년 부산연극제에서 단역으로 당당히 연기상을 받았다.

연극은 하면 할수록, 연기력을 쌓으면 쌓을수록 어려웠다. 그러면서 무대에서 인생을 배운다. 내 자신이 성숙되어 감을 느끼고는 새삼 놀라워 하기도 한다. 많은 시간을 대사와 연기를 익히고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됐을 때의 연기자로서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김 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악관절로 인한 턱비틀림으로 발음이 새는 것을 감지하고부터이다. 연출가 이윤택 씨가 먼저 발견해 발성지도를 해주었다. 변변치 못한 배우의 수입으로 수술교정은 요원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발성훈련만 되풀이했다. 서울의 명배우 박정자 씨의 발성구조를 롤모델로 삼아 평상시의 대화부터 훈련을 쌓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정은 의학적인 해결만이 가능하기에 남모르는 고민에 쌓일 수밖에 없었다.

1997년 레퍼토리 부설 극단으로 시작했던 극연구집단 '시나위'를 독립하여 창단한다. 박상규 씨가 대표를 맡았다. 연극인으로서 책임과 긍지를 갖고 '무대에서 보여주자'란 결심이었다. 김 씨를 비롯 박혜인, 유상흘, 박상하, 오정국 제씨가 '늙은 창녀의 노래'를 무대에 올렸다. 2001년 부산연극제에서는 '문제적 인간 연산'으로 '녹수'역을 맡았다. 41세 배우가 20대의 인물을 묘사해야 했으므로 소리훈련을 위해 판소리도 배웠다. 덕분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남녀배우 중 1명에게만 수여하는 첫 수상자가 된 것이다. 정말 기뻤다. 온 가족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

이후 극단 동녘의 '하녀들'(2006)에서 열연하고, 2011년 공간소극장 기획작품 '클라우드 나인'에서 공씨 할매역을 맡으면서 무대에서 놀 줄 알게 되었다. 안정감을 찾았다는 얘기다. '클라우드 나인'은 시골 잡화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지금도 재공연하고 싶은 작품이다.

연극인생 25년, 매회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영화와 드라마에도 캐스팅돼 출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낸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한 후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 가계를 도맡아 왔다. 보수가 열악한 연극인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다.

지난 4월에는 드라마 '직장의 신'에 캐스팅돼 촬영을 하다 서울행 고속도로에서 차량사고로 척추를 다쳐 4개월간 병원신세를 졌다. 연극인에 대한 보상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최저보상(일용직)만 겨우 받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맨바닥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그러나 큰 동작을 필요로 하는 연극 외에는 자신 있다며 싱긋 웃는다. 이젠 대리운전조차 못하게 되었다고 걱정스레하는 말에는 힘이 없어 보인다.

연극에 반해 대학진학마저 포기하고 몸사리지 않고 연극배우로 살아오면서, 같은 길을 가는 남편을 만나 무대에 행복하게 설 수 있었고, 철 모르는 새내기가 중년의 배우가 되었다. 자녀들도 잘 자라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의젓한 모습으로 제 몫을 톡톡히해 엄마를 기쁘게 한다. 특히 딸은 연극에 관심이 많아 벌써 몇 번이고 무대에 섰다.

"혜정아(옛 이름), 진솔한 연기자가 되거레이." 운명 직전 손을 꼭 쥐고 당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속에 묻고 사는 김 씨는 오늘도 대본을 펼쳐들고 연습에 여념이 없다.

문의 010-2592-6066 / 부산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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