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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47> 거리마임 광대 박병철

관객들 찾아 거리로 뛰쳐나간 몸짓예술가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22 20:23:30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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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부평동 야시장에서 청동마임 '그림 그리는 남자'를 펼치면서 그림같이 서 있는 거리마임 광대 박병철 씨.
- 극단 활동 중 마임 공부 시작
- 부산 연극판서 마임배우 별명

- 직접 전용소극장 열었지만
- 운영난에 2년여 후 문닫기도

- 이후 광복동 등서 거리공연
- 곁에서 듣는 박수소리에 희열
- 거리마임 고집하게 된 이유

지난달 부평동 야시장 입구.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주인공은 온몸에 황금 칠을 해 동상처럼 서 있는 사내. 한 손에는 유화 팔레트를, 또 다른 한 손에는 붓을 쥐고 있었다. 눈동자도 꿈쩍이지 않는다. 간혹 발 앞에 둔 악기 상자에 지폐를 던져주는 사람에게 붓으로 물감을 찍어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흉내를 내고 허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이다. 

거리광대 박병철(44) 씨의 청동 마임 '그림 그리는 남자'다. 마임(Mime)이란 말을 하지 않고 동작과 표정으로만 연기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일체의 쓸데없는 짓을 생략한 채 눈으로 확인되는 육체 묘사의 연속이 마임이다. 강원도 주문진 출신인 병철 씨는 6세 때 부산에 온다. 남부민초등, 송도중을 졸업하고 성지공고 재학 중 우연히 보았던 모노드라마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용극단)에 반해 연극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일상에서 예사로이 보이던 것들이 연극이란 옷을 입고 대중에게 쥐락펴락 감동을 주는 것이 매력 있어 보였다. 무작정 가마골소극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씨와 부두극단 이성규 씨가 함께 막 창단한 것으로 부산연극에 참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청소년극단을 준비 중이니 그때까지 극장에 와서 일을 거들어도 좋다'는 선배 배우의 말을 듣고 수업을 마치면 극단으로 출근했다. 그해(1986년) 가을 가마골워크숍에 1기생으로 연극 인생을 출발한다. 단역을 맡으면서 연기 공부에 매달렸다.

고교졸업 후 대학(미술과)입시에 두 차례나 실패한다. 무대미술을 전공하려던 꿈이 무너졌다. 전문대학은 가기 싫어 1989년 제일극장 간판실에 취업했다. 극장 간판 일의 마지막 조수가 된 것이다. 붓 씻는 일부터 페인트를 색깔별로 정리하는 일까지 배웠다. 선배가 배합해 준 색깔을 지정해 준 부분에 칠하면서 간판 일을 익혔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그림 그리는 일이기에 곧 익숙해졌다. 얼마 안 가 부영극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부영극장 간판실은 대영극장과 혜성극장 등 같은 회사 세 극장 간판도 그려야 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간판 외 부수입도 짭짤하게 생겼다.

극단 일은 소홀했으나 연극에 대한 관심은 잠시도 놓지 않았다. 간판 일보다 연극이 우선이었다. 1992년 서울롯데월드에서 연기자를 모집하자 붓을 집어 던지고 서울로 간다. 오디션에 합격, 가든스테이지 공연을 하게 된다. 하지만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친의 간곡함에 이끌려 2년 만에 부산으로 와 부친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극단 도깨비에서 연극활동도 한다. '숙명'(김익현 연출)에서 주연도 맡았다. 연극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도 함께했다. 그러나 무대막을 내리고 뒤풀이를 할 때면 기가 죽었다. 노래 등 잘하는 것이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더 깊은 연극 공부가 필요했다. 그렇다 '마임'을 배우자. 1998년 서울서 마임 워크숍에 참여했다. 오전에는 임도완(극단 사다리 대표) 선생에게 마임 스토리를 배우고, 오후에는 남궁호 선생에게 몸짓을 배웠다. 남궁 선생은 경성대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마임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름을 걸고 펼치는 워크숍이기에 비록 6개월 동안이지만 동작 하나 놓치지 않고 배웠다. 덕분에 부산의 연극판에선 마임배우로 별명을 얻었다.

내친김에 마임전용소극장을 만들었다. 2000년 서구 완월동(지금의 충무동) 입구에 '광대의 집'을 열었다. 반지하에 40석 규모의 소극장(40평)과 갤러리(30평)로 꾸몄다. 좋아하는 연극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그림전시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정말 기뻤다. 첫 작품으로 마임 '광대의 탄생'을 올리고 '임대열 서양화전'도 열었다.

당찬 용기로 소극장을 운영하는 배우의 꿈을 이뤘지만 창작에 대한 기획이 늘 부족해 소극장 운영에 애를 먹었다. 그러나 퍼포먼스 등 실험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연극 외에 가슴 깊이 묻어온 그림에 대한 동경으로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광대의 집'에 오면 연극도 보고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마루를 깔아 실내 분위기를 따뜻하게도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영에 지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힘이 들었다. 조직이 필요한 소극장 제도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2년 6개월 만에 소극장 문을 닫는다. 다행이랄까 곳곳에 소극장이 많이 생기고 대학에서도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연극활동에도 봄이 왔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영호남 배우모집에 응모해 부산대표로 발탁돼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했다. 2006년 40계단 일원에 청동조형물이 조영될 때 40계단문화관에 가서 이들 조형물과 놀도록 허락받고 이를 모방하고 연구해 다양한 동상 마임을 펼쳤다. 광복동에서도 마임을 했다. 어느 날 박 씨 형상을 한 젊은 동상조형물이 들어서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가 활동하는 자리에 내 마임 형상을 닮은 동상이 들어서다니' 마임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연기획에도 적극성을 띄기 시작한다. 관객은 오히려 거리에 많았다. TV에 뺏긴 관객이 거리에 넘쳐났다. 이들 관객을 위해 뭔가 필요했다. 거리마임이 제격이었다. 극장에서 관객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찾아 넓디넓은 거리 무대에서 마임을 펼쳤다. 관객의 속삭임도, 좋아서 치는 박수소리도 곁에서 듣는 희열이 컸다.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갔다. 행사장이든 축제장이든 그곳에서 할 일을 찾았다. 보람도 있었고, 보고 즐기는 이들이 있는 곳이면 여하튼 좋았다. 확실한 광대가 되고 싶었다. 거리 광대를 자칭한 것이다. 부평동 야시장 마임도 그렇게 대중 앞에 섰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거리마임으로 꾸며본 것이다. '원숭이 피터의 고백'(추송웅 작)을 그만의 작품으로 각색해 장기공연도 했다.

박 씨의 자유분방한 예술활동은 부인(김마리)의 숨은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극단 도깨비 시절 팬으로 만나 지금껏 일정한 수입이 없는 광대 뒷바라지를 자처했다. 서구 부민동 대폿집에는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지인들이 찾아온다.

비록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길바닥에 던져져 외롭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관객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기뻤고, 바로 곁에서 듣는 박수소리가 미치도록 좋았다. 배우는 박수를 먹고 산다고 했던가. 광대 박병철 씨가 거리마임을 고집하는 이유이다. 문의 010-3591-5811 / 부산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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