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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장구를 다잡아 정가 지도에 여념이 없는 여류가객 정인경 씨. |
- 봉사활동서 시조창에 반해
- 명창들에 사사 · 이론 겸비
- 2004년 정가대회 종합대상
- 시조 계보·가곡 가사 계보
- 모두 승계하면서 정가 완성
- 지금은 후학 양성에 매진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인 시조는 예부터 시절가와 시절단가 등으로 불리어 왔다. 때론 시조의 노랫말인 시조시와 구별하기 위해 '시조창'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오늘날 시조라고 하면 노랫말은 생략하고 시조창이라 통용한다. 그러나 시조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정서를 노랫말로 표현하여 부르면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일종의 대중노래여서 문학 장르라기보다는 음악 장르에 가깝다.
가곡, 가사와 더불어 정가(正歌)의 한 영역인 시조는 시조시를 노랫말로 사용한 점에서는 가곡과 같으나, 시조창의 형식은 문학적인 형식과 같이 초장·중장·종장 등 3장 형식이고 관현악 반주가 따르지 않는다. 또 가곡은 노랫말을 세분해 5장으로 구분하고 관현악으로 반주한다. 시조창에서는 조장 끝음절인 '하노라', '하오리다' 등을 생략하지만 가곡에서는 끝까지 다 부르는 점 등이 서로 다르다.
시조창은 요성(搖聲·음을 짧게 또는 길게, 굵게 흔드는 소리), 퇴성(退聲·미끌어 내려오는 소리), 전성(轉聲·곡예 부리듯 굴리고 뒤집는 소리), 추성(推聲·밀어 올려지는 소리) 등의 여러 창법으로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 예부터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줄기찬 생명력을 가진 귀중한 전통음악이다.
일찍이 부산에도 시조창의 어머니격인 김월하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부산으로 피란 와서 시조를 배워 우리나라 시조창의 대가를 이뤘다. 김월하 선생에 이어 부산에서 여류가객으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는 정인경(61) 씨를 찾아 남구 대연동 삼익비치상가 한얼정악연구소에 갔다.
맑고 유장한 소리가 문밖까지 낭랑히 울려 퍼진다. 김희준(온천초등 6년) 군 소리를 지도하는 정 선생의 성음이다. 장구채가 채편을 엷게 치고 왼손이 곱게 들어 올려진다. 귀태 흐르는 단아한 모습에서 은연중 근엄함까지 묻어난다. 정자세로 단정히 앉아 양손을 무릎에 얹고 선생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따라 부르는 희준 군의 얼굴에는 개구쟁이 모습이 안 보인다. "소리를 크게 지를 수 있어서 좋아예.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입니더." 어린아이에게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긴 박자에 가성과 상하청이 쉽게 오고 간다.
충북 음성읍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산골마을 '무수막'이 고향인 정 씨가 부산에 온 것은 1976년 25세 때. 부군과 헤어지고 어린 아들과 함께였다. 무료함과 외로움 그리고 허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육원과 경로원에서 무료 봉사활동을 했다. 아예 크로바봉사활동이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사람 정이 그리운 이들의 빨래와 밥도 해주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남 함안의 경로당 방문길에 어르신들이 부르는 시조창을 듣게 된다. 1980년 부산 범천동 경로잔치를 성서초등학교에서 베풀 때 시조창 하는 어른들이 노래잔치에서 우열을 겨루기에 그중 호흡이 가장 긴 노인에게 1등상을 줬더니 행사 후 시조회원에게서 가장 못 부르는 사람이 상을 받았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가 '유장하고 힘있게 뻗은 소리'를 바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찾은 곳이 성서초등학교 곁의 시조회관이었다. 이곳에서 경남 일대 시조명창인 김용봉 선생을 만난다. 여태껏 봐온 노인들과 다른 풍채인 데다 격조 높은 인품에 반해 그날로 바로 시조를 배우기 시작한다. 남보다 일찍 식전에 찾아가 아침상 들어올 때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배웠다. 그래도 뭔가 부족해 아예 회관에 살다시피 하며 점심 준비와 바둑 동무도 하며 선배회원들이 부르는 시조를 귀동냥했다.
그렇게 10여 년. 시조를 깨칠만할 즈음, 정가에는 가곡과 가사도 포함되는 것을 알게 됐고, 198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예능보유자 정경태 선생을 사사해 이론을 겸비한 정가 공부를 시작했다. 전주의 한양숙(남창가곡) 선생과 경주의 박귀자(여창가곡) 선생에게 배운 소리를 정경태 선생에게서 다듬었다. 1996년에는 정악의 '가사 부문' 이수증을 받는다. 2000년 스승이 별세할 때까지 부모 섬기듯 하며 배움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김용봉 선생에게서 시조를 배우면서다. 드디어 2004년 대한시조협회와 국악방송이 공동 주최한 전국정가경창대회에서 시조·가곡·가사 종합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한시도 정가공부의 끈을 놓치지 않은 집념의 결과였다.
그는 조백진-김용봉-정인경으로 이어지는 시조 승계와 이병성-정경태-정인경으로 연결되는 가곡·가사 계보의 축을 이루고 있다. 시조로 입문해 가곡과 가사를 두루 꿰었다. 정가를 완성한 셈이다. 일찍 혼자가 되어 세상만사가 삭막하게만 느껴지던 것이 시조를 배우면서 평정을 되찾았다. 시조가 위안을 주고 평안을 주었다. 이렇듯 좋은 시조를 '왜 사람들은 배우지 않는 것일까' 조바심이 일기 시작했다.
우선 초등학생부터 정가를 가르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학교를 찾아가 교장부터 설득했다. 어떻게 하든지 정가를 학교에 보급해야 했다. 인성교육에 더없이 좋은 정가를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정가의 저변 확대를 위해 1990년 청소년예술제(지금은 전국청소년시조예술제)를 개최하고 시조백일장과 시조경창대회를 열었다. 지난해까지 21회째 개최하는 동안 이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들이 대학에서 정가를 전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들이 각 지방으로 흩어져 정가를 보급하였다. 이희재·오윤미(국립부산국악원), 박진희·하윤수(중앙국립국악원)가 바로 그들이다. 정가의 이해가 절대 부족한 부산 땅에 전통성악의 참모습과 참소리꼴을 심어주려고 하였다.
소리와 이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문학적인 소양도 필요했다. 문인들이 여는 문학세미나에 부지런히 참여하고 시조 습작을 열심히 공부해 1998년 계간 현대시조에 '종이학'으로 등단한다. 명실공히 시조시인을 겸한 여류가객이 됐다.
정인경 씨는 남창가곡(우조) 언락 '벽사창이'를 즐겨 부른다. '벽사창이 어룬 어룬커늘 임만역여 / 펄떡 뛰어나가 보니 임은 아니오고 / 명월이 만정헌데 /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 긴 목을 후여다가 깃 다듬는 그림자로다 / 마초인 밤일세 / 만정하여 낮 이런들 남우일번 하여라'. 가락은 자연의 섭리를 닮아 부르고 듣는 이의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평정심을 찾아 쾌적해지는 정가의 매력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010-3870-8597
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