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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업이 만난 부산을 지키는 꾼·쟁이들 <44> 고분도리걸립 수벅구 정은희

농악에 빠진 소녀, 부산 풍물패 '신명난' 여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2-01 20:28:45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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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구놀이 하면서도 연방 웃음을 잃지 않는 벅구잽이 정은희 씨.
- 여고시절 '상쇠'로 끼 발휘
- 직장 그만두고 풍물패 입단
- 2002년 '부산농악' 회원돼
- 큰 소고 '벅구' 맡아 솔선수범
- 두 딸도 엄마 재능 물려받아

2013년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상설공연 마지막 날 대신동 구덕민속보존회 놀이마당. 미색채복에 삼색띠를 갖춘 고분도리걸립패들의 걸립이 한창이다. 인사굿 당산굿 대문굿 성주굿이 끝나고 대동놀이인 판굿놀이가 신나게 벌어지고 있다.

가슴 앞에 세워 들고 있던 벅구를 빗겨들고 춤추며 놀이판 한가운데로 들어온 수벅구 정은희(47) 씨와 들벅구 5명이 벅구놀이를 벌인다. 벅구를 오른손에 들고 흔들고 춤추며 연풍대를 돈다. 두 사람이 벅구채를 맞대고 맴돌이를 하다가 벅구를 수평으로 잡아 두드리며 좌우 발을 들었다 올리면서 춤을 춘다. 팔다리를 잠시도 쉬지 않고 춤꼴을 만들며 놀이마당에 벅구수를 놓는다.

풍물(농악)악기 중 무거운 북을 축소해 가볍고 작게 만든 것이 소고다. 소고에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어 큰 것을 벅구(버꾸·法鼓)라 한다. 이것은 치면서 춤을 추는 악기이고, 작은 소고는 악기 구실보다는 들고 춤추는 데 소품으로 주로 사용된다.

소고춤은 지역에 따라 상모를 돌리면서 추는 채상모소고춤과 고깔을 쓰고 소고놀이를 하는 고깔소고춤 그리고 이를 한데 섞어 집단적으로 하는 놀이춤 등이 있다. 이 중 채상모소고춤은 군악으로서의 기능을 가졌던 시기에 전립(戰笠)을 쓰고 상모를 돌리면서 추는 형식에서 유래한 것이고, 고깔을 쓰고 추는 춤은 두레들의 노작(勞作)농악과 절일을 하던 걸립패들에 의해 창조된 춤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소박한 마을 풍물패들은 대체적으로 고깔소고춤을 추고, 직업적인 걸립패풍물패들은 채상모춤을 위주로 하거나 이 둘을 함께 연희하기도 한다. 따라서 고갯짓을 많이 하는 채상모춤소고는 크기가 작기 마련이고, 고깔소고춤인 경우 고갯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큰 소고인 벅구를 두드려 소리를 낸다. 고분도리걸립은 이를 들벅구라 한다.

정 씨는 부산 동구 범일6동에서 태어났다. 황해도 은율에서 피란 온 부친이 군산에서 잠깐 살다 부산에 정착해 슬하에 2남 3녀를 둔다. 정 씨는 장녀이다. 부친은 시내버스, 택시, 고속버스를 운전했고, 미인형이었던 어머니는 간호조무사였다. 범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여중 시절 제법 뺀질거리며 말썽도 피우지만 동호여상에 진학하면서 착한 학생이 된다. 1학년이던 1982년 부산농악전수학교로 지정받으면서부터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한순, 이용식, 정윤하 선생 등이 교내에 농악단을 창단한다기에 서둘러 입단하고부터 농악에 흠뻑 빠져버렸다. 뺀질거림도 없어졌다. 상쇠로 발탁돼 꽹과리를 치면서 소녀의 의식 깊이 잠재되어 있던 '끼'를 한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엔 부산학생민속경연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그렇게 고교 3년이 훌쩍 지나갔다. 졸업 후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근무하지만 마음은 늘 풍물판을 향하고 있었다. 1986년 이용식 선생이 '부산풍물패사물놀이'를 따로 조직하자 바로 단원으로 합류했다. 돈이 안 생겨도 좋았다. 좋아하는 풍물놀이를 맘껏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했다. 정 씨의 몸과 마음이 풍물로만 꽉 채워졌다.

부산풍물패는 다양한 악기를 골고루 연주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다. 북을 주로 치면서 공연에 따라서는 목탁을 치기도 하고 꽹과리, 장구도 쳤다. 눌원소극장에서의 창단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같은 해 그는 부산시립무용단 손세란 안무자의 요청으로 시립무용단 부설 사물놀이 단원이 돼 무용단원들과 협연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시지정 제6호로 지정받은 부산농악에는 입단할 수 없었다. 회원자격을 남자들만으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부산농악의 이런 규칙은 창단 이래 철저히 지켜졌다. 그러다 김한순, 이용식 스승들이 타계한 후 2002년 후반 드디어 여자회원 영입문이 열려 정 씨는 부산농악 회원이 된다. 풍물악기들은 모두 남자회원들이 맡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여자가 할 수 있는 들벅구를 맡았다.

성에 차지 않는 역할이라고 결코 허투루 하지 않았다. 벅구 앞뒷면치기, 물푸기, 벌려겹치기, 앉아서 치기, 팔걸이, 사모잽이, 제기벅구, 좌우로 올리기, 영풍대, 굿거리춤 등 고깔소고춤을 제대로 해 보였다. 수벅구잽이로 벅구패의 맨 앞에 서서 벅구들을 리드해 나갔다. 후배 벅구들이 보고 배우도록 최선을 다한다.

정 씨의 벅구춤에는 환한 웃음이 항상 함께한다. 넓은 연풍대를 돌다 보면 다른 악기군들보다 활동량이 많아 숨도 가쁘고 힘들 텐데 그녀만큼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 노력 뒤에는 부군의 보살핌이 컸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쭈욱 지켜보아 온 부군의 숨은 희생이 오늘의 정은희를 있게 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잡혀진 공연 일정들로 인한 자녀들 양육 등도 남편 몫이었으나 묵묵히 지켜봐 주고 심지어 공연 때 악기 운반도 책임져 준다.

자녀들도 풍물에 넋을 빼앗겨 있는 엄마 편이다. 큰딸(27)은 어릴 때부터 이용식 선생 무릎팍에 앉아서 풍물소리를 듣고 커 장구와 가야금을 배웠으며, 작은딸(20)은 초등학교 때부터 장구와 상모를 배웠다.

정 씨는 요즈음 더 바빠졌다. 방과 후 수업에다 토요스쿨을 맡았고, 노인복지회관 두 곳에도 풍물을 지도하러 다닌다. 일 년 열두 달 풍물속에 빠져산다. 그래도 즐겁다. 특히 마당놀이 한 판 벌어질 때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즐겁다. 정 씨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풍물판에 서서 한바탕 '끼'를 발휘할 때이기 때문이다.

문의 010-9926-5100 부산민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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