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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옷 디자이너 이영애 씨가 붓으로 치맛단 아래에 매화를 치고 있다. |
- 수화(手畵)에 천착했던 화가
- 석주선 관장 만나 옷에 빠져
- 수묵화 어우러진 그만의 작품
- 각종 패션쇼 러브콜 받아
광안리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 이영애(55) 씨의 우리옷 작업실은 온통 전통내음으로 가득하다. 반닫이와 작품전시대에서 만나는 오행색들이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옛 정취와 멋을 한껏 풍기고 있다. 마치 전통공예 소품 상자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다.
이 씨의 암청색 복식이 들뜬 분위기를 차분히 잡아준다. 작업대 위에 펼쳐진 밝은 청회색 치마에 매화를 그릴 준비를 하고 있다. 텍스타일 섬유물감에 붓을 푹 찍어 치마 위에 점을 찍고 매화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신들린 듯 손놀림이 빨라진다. 순식간에 매화 한 폭이 그려졌다. 회색과 검정이 묘하게 어울려 매화가 활짝 웃고 있다.
우리옷 디자이너이면서 서양화가이기도 한 이 씨의 그림그리기는 중학교 미술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남 하동군 진교 관곡마을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감수성이 유달리 예민해 글 쓰고 무용하고 풍금 치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모니카와 스케치북 들고 뒷산에 자주 올랐다. 소 먹이고 쑥 캐는 또래의 개구쟁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즐겼다. 아버지도 그런 소녀를 대견하게 여겨 간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 여수까지 가서 4남 3녀의 둘째 딸의 무용신발을 사오기까지 하였다.
시골이라 한복에 두루마기 입은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데다 바느질 솜씨가 곱던 어머니가 지은 입성을 입으면 옷이 날개였다. 호랑이 형국을 닮은 고향이기에 개를 키우지 않던 마을 이바구들은 우리옷 디자인의 모티브가 됐다. 밭에서 캐온 삼과 모시풀의 껍질을 벗겨 내 삼베 짜고 모시항라 짜는 것을 보고 자란 그의 우리옷 사랑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진교중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소녀의 끼가 돋보였다. 군내 글짓기, 노래, 그림그리기대회를 휩쓸었다. 예능담당 교사들이 서로 다투며 그 끼를 피워주었다. 중3 진학을 포기한 친구들이 도시로 취업준비할 때 소녀는 부산브니엘중학교로 전학, 이듬해 공예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수업료가 면제되고 교과서와 책가방이 지급됐다. 학생이 만든 작품이 매매되면 통장에 저축도 됐다. 전통공예인을 양성하는 학교에서 칠보와 판금 등 금속공예를 전공한다. 1981년 졸업 후 이불감과 옷감에 그림 그리는 수(手)화실로 친구 찾아 왔다가 붓 한 필에 목단꽃이 피고 잎이 그려지는 수화(手畵)작업을 보고 반해 아예 붙박아 배우기 시작했다.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배워 밤낮없이 수천 점을 그렸다. 염색 개인지도를 받으면서 손놀림도 빨라지게 되었다.
27세 때 구서동에 고전그림실을 열어 독립한다.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동양화, 서양화, 구성까지 편화하여 거침없이 그려댔다. 중학시절 미술교사가 강조하던 '나 혼자만의 개성있는 표현', '수정이 필요없는 확신에 찬 표현'이 작업 계명이었다.
길거리에서 아름다운 소재로 맵시있게 차려입은 옷을 보면 문득 그 옷에 그림 그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놓고 야한 색깔로 만든 옷보다 수묵화를 단정하게 입힌 옷이 더 우아하게 보이는 것도 작가만이 가지는 감각일 게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디자인이지만, 결국 옷은 입어서 실용적이고 아름다워야 한다. 여성이 한복을 갖춰 입었을 때 더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진주에서 단국대 의상박물관장 석주선 박사를 만나면서 한복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31세 되던 해 온천장에 이영애 우리옷 연구소 '한얼방'을 냈다.
염색도 직접하고 그림 그리고 자수도 놓으며 디자인도 직접했다. 전통을 고수하면서 지금 시대에 어울리게 할 수 없을까 고민했다. 비록 옛날같이 속치마 위에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무지기나 대슘치마를 입어, 항아리를 방불하게 하는 치마의 볼륨을 완벽하게 강조할 수는 없더라도, 현대감각으로 디자인해서라도 입었을 때 전통미가 풍기도록 고심했다. 전통한복을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변형하고, 개량도 해보았으나 역시 최고의 멋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씨의 우리옷은 바느질과 마름 그리고 옷 위에 그려진 그림에 이르기까지 품위 있는 명품이 되도록 디자인한다. 입어서 아름답고 누구라도 한 번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것이 이 씨 디자인의 키포인트다.
"한복의 가장 매력적인 것은 한복이 펼친 평면디자인이라는 것입니더. 하지만 만들어 입기만 하면 그 실루엣이 세계의 어느 의상보다 입체적이고 독특한 미를 풍긴다 아닙니꺼. 그리고 동적인 옷이 된다 말입니더." 한복치마를 펼치면 이불이 되고 싸서 훔치면 보자기가 되지만 접어서 동치면 옷매무시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옷이 된다는 얘기다. 남자들 한복 위에도 두루마기만 갖춰 입으면 멋 있고 기품 있는 옷이 우리옷이라는 말이렸다.
이 씨의 우리옷 사랑은 '우리옷 패션쇼'에서도 나타난다. 1990년 서울 정동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국디자이너 초청쇼에 부산 대표로 참가한 이래 용두산공원, 복천박물관 등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작품을 펼쳐 보였다. 지난해 9월 해운대 '세계 물의 날' 행사가 열린 벡스코에서의 마지막 날 만찬석상에서 펼쳐보인 '이영애 한복패션쇼'는 세계 각국의 2000여 관중을 매료시켰다.
우리옷 디자인을 연구하는 틈틈이 학술공부도 쉬지 않았다. 2011년 2월 동서대에서 한복의상디자인 박사학위를 받는다. 의상이론과 한복(우리옷)디자인을 겸비한 전문 경지에 들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리라.
넓고 큰 공간이 생기면 치잣물감 들이고 쪽물감 들이며, 삼베 길쌈하고, 베 짜고, 옛 손바느질하고 인두로 동전 깃 세워서 숯다리미로 옷 다리는 것을 부산을 찾아온 외국인에게 보여줄 '의상전시관'을 만들어야겠다고도 다짐한다. 두 딸도 모두 어머니를 닮아 의상계열을 전공했다. 큰딸은 경성대 의상학과를 마치고 미국 디자인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얼마 전 결혼한 막내는 이화여대 섬유예술과를 마쳤다. 각기 독립하고 있지만 그 뿌리만큼은 엄마의 디자인연구실로 향하고 있는 감춘 속내를 알고 있기에 이 씨의 마음은 흐뭇하다. 이 씨의 우리옷은 분명히 대를 이으리라.
010-3849-9282 / 부산민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