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기숙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9일로 10일째다. 지난달 30일 사건이 발생하자 기숙사의 구멍 뚫린 치안시스템과 학교 측의 안이한 대처를 지적하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로부터 4일이나 지난 뒤 부산대는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것도 회의시간을 극비에 부치는 등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공개회의를 가진 뒤 내놓았다. 골자는 ▷기숙사 내·외곽 보안시스템 개선 강화 ▷비상연락체계 구축 ▷경비원 충원 등이다. 이틀 뒤 부산대 생활원은 경비원 2명 채용공고를 냈다.
이뿐이었다. 더는 대책이 없었다. 알맹이 빠진 미봉책이란 지적이 난무했지만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다. 사건 피의자가 침입했던 출입문은 아무런 조치 없이 그대로다. 1980년대식 열쇠 형태의 잠금장치를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에 학교 측은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피해 학생에 대한 보상은 '요구하면 해 주겠다'는 입장이다. 사건 발생의 단초를 제공했던 출입문의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조사 중이다. 일각에선 안전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면 학교 측 과실이 커지므로 원인 파악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학생들 사이에서 '못 밝히는지, 안 밝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가 찬 것은 지난 6일 부산대 생활원 공지사항에 게재된 '대학생활원에서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 대략 내용은 이렇다. '조교의 업무는 원생 생활 지도이지 경비가 아니다. 경비원의 수색을 도운 것이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조교 또한 여러분과 똑같은 부산대 학생이며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여학생이다. 조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 수 있다. 문제는 사건이 났는데도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운 나쁘게 성적으로 이상이 있는 피의자가 저지른 범죄여서 피해자는 가슴만 치고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안전시스템 역시 그냥 기계가 오작동한 것이어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단 말인가.
학생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수장인 김기섭 총장의 태도다. 아직 공식적인 사과는 고사하고 그 흔한 사과문 하나 발표하지 않고 있다. 가정으로 치면 아버지뻘인 총장이 딸 아이가 그 험한 일을 당했는데, 어떤 바쁜 일이 있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 참다못한 한 남학생이 심야에 여대생 기숙사 주변을 직접 순찰한 뒤 그 결과를 학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는 등 학생들이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다. 한숨만 나온다.
시간이 가면 상처가 대충 아물 것이란 생각 때문일까. 구체적인 추가 대책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 저희 총장님 스타일이 워낙 신중하다 보니"라는 학교 관계자의 말에선 김 총장의 사태 인식이 얼마나 가벼운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봉합해 두면 안에서 곪아 터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르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이제 김 총장이 나서 뭔가를 보여줄 때다. 치유가 힘들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