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 자리한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스튜디오에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권혁범 기자

- 자연 채광 '유니티 템플' 등
- 100여 개 위대한 걸작 남겨
- 주정부, 10가지 관광투어
- 오크파크 주민 500명 자봉
- 유산 발굴해 스토리텔링

미국 일리노이 주의 최대 도시 시카고. 미시간호를 낀 도심엔 마천루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윌리스 타워(108층, 443m). 시카고의 화려한 빌딩 숲과 중북부 평원을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이 빌딩 103층 전망대에 들어서면 다소 의외의 전시물이 보인다. 바로 근대건축의 세계 3대 거장 중 한 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년)와 관련한 자료다. 이곳뿐 아니라 시카고와 인근 지역의 주요 명소에서 라이트의 이름을 듣거나 그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일리노이 주정부 역시 오래전부터 라이트를 활용한 국제적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를 시카고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다. 시카고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라이트의 '건축 투어'는 필수 관광코스다.

■인물에 도시의 역사를 담다

	라이트의 대표작 '유니티 템플'의 자연채광 천장.

가장 미국적인 도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 영화 '시카고', 알 카포네의 갱단, 미시간호의 야경, 재즈의 고장…. 시카고를 떠올리면 연상되는 수식어나 이미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로 유명하다. 1833년 인구 200명으로 출발, 180년이라는 짧은 역사 동안 미국 3대 도시로 우뚝 선 데는 '건축의 힘'이 컸다.

시카고의 급성장을 설명할 때 1871년 대화재를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최악의 재해로 꼽히는 이 화재로 시카고는 폐허가 됐다. 대부분 건물이 불탔고,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화재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즉시 재건사업이 시작됐고, 건축가들에게 시카고는 '꿈의 공간'이 됐다. 단기간에 도시가 다시 세워지면서 시카고엔 '건축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 시카고는 현대건축의 메카로 발돋움했고, 각기 개성을 지닌 마천루들은 도시의 상징이 됐다.

시카고의 독특한 역사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영웅을 만들어냈다. 1867년 위스콘신 주 리치랜드센터에서 태어난 라이트는 건축을 배우기 위해 시카고로 건너왔다. 1888년 시카고의 '설리번 사무소'에서 건축에 입문했다. 22세에 결혼한 그는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에 스튜디오와 집을 짓고 활동하며 본격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는 시카고 지역에 100여 개의 창의적 건축물을 남겼고, 70여 년의 세월 동안 이 시대 예술과 건축을 이끌었다. 또 이 작품들은 시카고와 오크파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라이트의 이 같은 활동은 자연스럽게 시카고 지역의 역사와 스토리텔링으로 연결됐고, 그는 도시를 홍보하는 '대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오크파크시청 데이비드 파워스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라이트의 삶과 철학, 그가 남긴 예술적 가치는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오랜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며 "라이트를 홍보하거나 관련 마케팅 자원을 개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적한 마을, 세계적 도시가 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활동 근거지였던 오크파크는 인구 5만의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평일에도 관광객들로 들썩인다. 라이트의 스튜디오와 저택, 그리고 그가 남긴 걸작품들을 돌아보는 관광상품만 10가지가 넘는다. 특히 전 세계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은 이곳을 '성지순례'하듯 찾는다.

오크파크가 유명세를 떨치는 데는 지역 주민의 참여가 큰 힘이 됐다. 1974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보존회'라는 자발적 비영리재단이 설립돼 라이트의 스튜디오와 저택을 유지·보존하고 있다. 무려 500명의 자원봉사자가 관광객들을 맞는다. 라이트가 만든 다양한 디자인 콘셉트와 실험적 양식이 이 스튜디오에서 탄생했다. 현재도 스튜디오 내부는 라이트의 작업 도구와 도면, 그가 의뢰인들과 계약할 때 사용했던 방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스튜디오는 1976년 국가유적지로 등록됐다.

보존회는 이 밖에도 ▷레고 건축가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 디자인 ▷청소년 건축 워크숍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맞은편 유니티 템플(Unity Temple)도 오크파크를 알리는 큰 자랑거리다. 라이트가 1906~1908년에 지은 이 교회는 당시 관습과 달리 높은 첨탑이 없다. 대신 콘크리트를 부어 정방형 실내공간을 만들었다. 지붕엔 커다란 채광창이 있다. 라이트는 이 교회를 '보석상자'라 부르며 큰 애착을 가졌다. 오크파크시와 주민은 이 건물을 "현대건축의 효시"라고 자부한다. 이에 따라 오크파크를 찾은 관광객들을 이곳으로 불러모으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건축물의 의미를 소개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보존회 캐럴 허브스트리트 자원봉사자는 "라이트는 오크파크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그의 유산을 발굴해서 스토리텔링하는 건 우리에게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구겐하임미술관 등 1141점 디자인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자연과 친화' 건축원리 등 정립
- 데이코쿠호텔 日대지진때 멀쩡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사진)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로 손꼽힌다. 인간의 가치에 기초한 새로운 건축과 실내환경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교육자·철학자·저술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어느 건축가보다 많은 1141점을 디자인했고, 현재 409점이 남아 있다. 이 중 3분의 1 이상이 사적으로 등록될 정도로 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비롯해 폭포 위에 집을 지은 낙수장(카우프만 저택), 유니티 템플, 로비 하우스, 쿤레이 저택 등이 있다.

그는 특히 자연과 친화하는 유기적 건축 등 수많은 건축 디자인 원리를 정립했다. 또 자연에서 유추한 원리를 건축 조형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는 일본과도 인연이 깊다. 1906년 일본을 방문, 일본의 예술과 동양철학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그의 작품에도 동양의 사상이 반영됐다. 그가 일본에 남긴 유명한 건축물로는 데이코쿠 호텔과 자유학원이 있다. 그가 1915~1922년 설계한 데이코쿠 호텔은 1923년 대지진 때 주변의 모든 건물이 무너졌지만 끄떡없이 버텼다. 이에 따라 그는 일본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스튜디오와 걸작품들을 보기 위해 미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도 적지 않다.


# "유산 보존·세계적 마케팅 가장 신경"

■ '라이트 보존회' 아담스 대표

오크파크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보존회'는 라이트의 역사·예술적 가치를 알리는 핵심적 단체다. 그의 초기작업 자료에 대한 연구센터와 프레리(라이트의 건축양식) 건축학교 운영까지 다양한 활동을 한다. 셀레스트 아담스(사진) 대표에게 보존회의 설립 배경과 의미 등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이 모였나.

▶건축설계자 목수 디자이너 등 전문적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전통을 지키는 게 설립 취지였다. 라이트가 시카고 지역에 남긴 집들을 복원하기 시작하면서 보존회에 대한 주위의 관심도 커졌다. 우리의 역할은 라이트의 유산을 지키고, 알리고, 보존하는 것이다.

-운영 원칙은.

▶핵심은 세 가지, 이웃·지역·세계다. 보존회가 힘을 가지려면 주민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지역사회의 경제적 기반도 중요하다. 비영리 조직이다 보니 기부와 후원 등을 통한 경제적 독립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신경 쓰는 건 세계적 마케팅이다. 라이트의 스튜디오와 저택은 박물관처럼 큰 규모가 아니다. 따라서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

-라이트가 지역을 홍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

▶오크파크엔 그가 남긴 개인 집들이 많다. 마을 전체에 독특한 흔적이 남아 있다. 당연히 오크파크를 알리는 데 라이트는 없어선 안 될 인물이다. 오크파크 주민 역시 자부심이 굉장하다.

-자원봉사자들의 열기가 대단하다.

▶자신도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라이트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데 만족해한다. 은퇴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봉사자도 많고, 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활약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시카고·오크파크=권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