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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레네를 오르는 프랑스 부부의 짐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부인은 씩씩하지만 저멀리 뒤처진 남편은 주렁주렁 매단 봉지들과 한쪽으로 기운 배낭 무게때문에 고개가 자라마냥 앞으로 빠져나왔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순례자들은 비움의 지혜를 배운다. 국제신문 DB |
- 일선 구·군 홍보용으로 조성
- 공식 전담처 따로 없어
- 안내지도 동나도 제작 못 해
부산의 갈맷길은 2009년 6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9개 구간, 700리(263.8㎞)에 달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물론 외국에서도 갈맷길을 찾는 이가 점차 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하지만 갈맷길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갈맷길 코스별 연계 '낙제점'
지난 25일 찾은 부산 금정구 선두구동의 상현마을. 이 지점은 갈맷길 코스 8-1(상현마을~동천교)과 9-1(상현마을~이곡마을)의 시작점이면서 동시에 코스 7-2(금정산 동문~상현마을)의 끝점이다. 하지만 3-1번 버스를 타고 상현마을에서 내리면 눈에 보이는 이정표는 코스 8-1뿐이다. 코스 7-2와 9-1를 안내하는 이정표는 각 코스로 100~200m가량 진입해야 나온다. 갈맷길 전 구간이 연결돼 있다고 하지만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지점이 곳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민락교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코스 8-2(동천교~민락교)의 끝점은 민락교 해운대쪽 끝 지점이지만 도보 인증 장소는 민락교 민락동쪽 끝 아래에 마련돼 있다. 또한 코스 2-2(민락교~오륙도 유람선선착장)의 시작점은 민락교에서 해운대 방면으로 200여 m 떨어진 신호등에 있다. 한 지점에서 코스의 종점과 시작, 인증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하구 낙동강하구둑 구간도 마찬가지.
각 구가 추진하는 걷기 코스와의 연계도 부족하다. 갈맷길을 걷다 보면 구별로 조성된 고유의 길과 만나는 곳에서 제대로 된 안내가 이뤄지지 않아 헤매기 일쑤다. (사)걷고싶은부산 최대현 국장은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구간별로 추진된 반면 부산 갈맷길은 16개 구·군이 동시에 조성, 갈맷길이라는 통일성보다는 각 구를 홍보하는 방향으로 조성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질적 컨트롤타워 마련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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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 도심에 위치한 랑도네 정보센터를 찾은 한 프랑스 시민이 자원봉사자로부터 랑도네 길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 |
최근 (사)걷고싶은부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서 40명이 부산으로 내려와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갈맷길을 걷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걷고싶은부산 측은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말이 컨트롤타워지 실질적인 활동을 하기에 인력과 예산이 크게 부족해 가이드 역할까지 맡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력과 예산 부족의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부산시가 안내 및 지도 배부 등을 위해 영도구 남항대교 밑에 안내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공익요원 한 명이 지도 배부에만 나설 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지도가 동이 났으나 예산이 부족해 추가로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갈맷길 전반을 총괄할 실질적 컨트롤타워인 가칭 '갈맷길 지원센터'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프랑스 랑도네협회는 훌륭한 모델로 손꼽힌다. 랑도네(randonnee)는 오랫동안 산책하듯 걷는 운동을 일컫는다. 랑도네협회는 지역클럽 3200개, 1500만 명의 랑도네 마니아, 18만 ㎞에 달하는 도보 길과 2만 명의 자원봉사자 등을 총괄 관리하고 있다. 지도제작팀, 정부협력팀, 기업협찬유치팀, 법률팀, 안내책자 판매팀 등으로 조직이 세분화돼 있으며, 유급직원만 50명에 이른다. 여기에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본부의 일을 돕는다. 이들이 발행하는 토포 가이드는 1년에 40만 권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지역의 역사 문화자원과 연계 서둘러야
- 대구 '골목길' 개발 눈여겨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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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토포 가이드북. 국제신문DB |
부산 갈맷길이 하드웨어적인 '길'을 뛰어넘어 소프트웨어인 '걷기'로 온전히 변신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관광을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걷기 마니아들의 걷기 욕구도 충족시키면서 지역경제도 살리는 '1석2조'의 효과를 노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취지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곳은 일본의 나가사키. 연중 걷기 축제가 펼쳐지는 가운데 지역 상인들은 쿠폰을 발행해 각종 상품을 30~50%가량 할인해 준다. 몇 년 전 나가사키 걷기 축제에 참가했던 이모(43) 씨는 "일본에서는 동 단위에서도 특정 날짜를 정해 방문객에게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며 아쉬워했다.
대구 중구가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골목길'은 지역 문화와 연계한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 길의 특징은 대구 중구에 산재한 역사·인문학적 요소를 활용해 테마를 구성한 데 있다. 3·1만세 운동길과 역사적인 인물의 고택, 염매시장 등을 코스에 포함시키고 문화해설사를 배치해 내실있는 문화재·역사 설명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 때문에 2008년 400명에 불과했던 투어참가 인원은 2009년에는 3000명, 2010년에는 6200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부산시 자치행정과 김동렬 주무관은 "부산도 중·동·서구 등 원도심 지역과 역사 및 문화 자원이 풍부한 동래 지역에서 갈맷길과 지역 문화를 접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걷고싶은부산 최대현 국장
- "세계적 걷기 코스 발돋움하려면 전담 법인 설립을"
"갈맷길 조성은 공공 중심으로 시행·유지돼 왔으나, 앞으로 지속적인 관리 운영 및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는 전담 법인 설립과 공식 지정이 필요합니다."
(사)걷고싶은부산 최대현(사진) 국장은 부산의 갈맷길이 세계적인 걷기 코스로 각광받기 위해서는 프랑스 랑도네협회, (사)제주올레, (사)숲길 등과 유사한 형태의 전담 법인인 가칭 '부산 갈맷길'이 조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컨트롤타워 역할을 (사)걷고싶은부산이 하고 있지만 공식 전담단체로 지정돼 있지 않은 데다 경상비를 뺀 일체의 지원이 없어 기본적인 정보 제공 및 시설 관리를 제외한 프로그램 운영 등은 꿈도 꾸기 어려운 한계 때문이다.
최 국장은 "법인 '부산 갈맷길'이 설립되면 민간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조직 체계 및 인력, 예산 지원이 이뤄지는 전담 조직으로 키워 관리 운영 프로그램 다양화와 전문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관련 전문가를 영입해 코스별 원활한 연계 방안을 마련하고, 가이드도 양성해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갈맷길에 대한 외지인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한 법인 설립과 관련해서는 "운영 초기에는 시가 주체가 돼 갈맷길 운영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어 갈맷길 관련 민간단체(NPO)를 지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