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한인문화센터에서 장제국(왼쪽에서 두 번째) 총장 등 동서대 관계자들과 사할린 주정부의 교육부 관료(왼쪽에서 세 번째)가 함께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에 지원한 학생을 면접하고 있다.

- 아픈 역사 간직한 채
- 고국말·글과 멀어진 사할린 동포 배려
- 2003년부터 운영

- 한인 3·4세들 선발해 4년간 동서대서 유학
- 학비는 물론이고 생활비까지 지원

- 올해까지 46명 혜택, 졸업 후 귀국해 취업
- 한국 관련된 일 택해 양국 교류에도 한몫

- 러시아 현지 학생도 선발 대상 포함시켜
- 사할린 주정부 협력
- 한인동포들 뜻모아 동서대측에 감사패

한국에서는 폭염이 맹위를 한창 떨치던 지난 17일. 인천공항을 출발한 사할린항공(SAT) 여객기는 두 시간 반 남짓 만에 러시아 사할린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사뿐히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처음 받은 느낌은 "안 덥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북단인 홋카이도 북쪽에 있는, 남북 길이 948㎞ 면적 7만 8000㎢의 섬인 사할린은 겨울이면 바다도 얼어버린다는 러시아의 극동 지역이다. 특히나 이날은 사할린에 사는 주민들조차 "몇 년 만에 본다"는 낯선 '여름비'가 주룩주룩 내려 서늘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동서대, 사할린 교류활동 앞장

	지난 20일 사할린 주정부 산하 교육부에서 동서대, 사할린한국교육원, 사할린주 교육부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다.

지난 17~21일 부산 동서대의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의 실무진이 사할린을 방문했다. 해마다 동서대가 진행하고 있는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에 참가할 지원자를 선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올해 동서대의 사할린 방문단에는 장제국 총장도 동참했다. 2003년 동서대가 시작한 이 인재양성프로그램이 올해로 10주년을 맞게 되자, 사할린 한인 동포사회에서 그간의 고마움을 담아 감사패라도 전달하겠다며 방문을 요청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중심부에 자리한 메가팰리스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일행은 빡빡한 일정을 단기간에 소화하는 강행군에 들어갔다. 동서대 정찬 국제협력처장은 "올해는 우리 인재양성프로그램에 지원한 사할린의 동포 및 러시아 현지 학생 면접뿐 아니라, 1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의미 있는 자리들이 여럿 있어 더 바쁘다"고 말했다.

한민족 동포인 사할린국립대 한국어과 임엘비라 교수는 '한민족 해외동포의 현주소'(2012년·학연문화사)라는 책에 실은 '영주귀국이 사할린 한인 사회에 미친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동서대는 지속적으로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을 해왔다. 해마다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사할린 한인 3세를 5명 선발하는데, 그 졸업생들은 대부분 사할린 귀환 후 한국과 관련 있는 업체에 취직한다"며 동서대의 꾸준하고 적극적인 교류활동을 명기해놨다.

지난 10년, 부산과 사할린 사이에는 어떤 교류가 오고 갔던 것일까?

■"부산 유학은 우리에게 큰 기회"

	지난 19일 열린 만찬에서 임용군 사할린주한인회장(오른쪽)이 장제국 동서대 총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의 핵심은 동서대가 사할린에 사는 한민족 동포의 3·4세 자녀를 해마다 5, 6명씩 선발해 무료로 동서대에서 4년 동안 유학을 하고 학사학위를 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다. 2003년부터 가동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2004년부터 올해까지 46명이 입학했다.

이 프로그램 1기생인 이순희(33·러시아 이름 율리아) 씨는 사할린국립대 한국어·영어과를 졸업한 뒤 2004년 동서대 영어과에 진학해 3·4학년을 다녔다. 현재 유즈노사할린스크의 무역회사에 다니는 이 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를 비롯해 러시아 안에서도 대학 진학이나 공부를 할 길이 있지만 학비도 무척 비싸고 여러 어려움도 있다. 특히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여기서도 높아졌다. 동서대에서 학비·기숙사비·생활비 등을 지원받으면서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사할린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동서대에 진학해 4년 동안 관광경영을 전공하고 현재 사할린 현지의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박나타샤(23) 씨는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 면접을 본 뒤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정말 기뻐서 울어버렸다. 부산에서 대학 공부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떠올렸다.

이순희 씨는 "현재 연락이 되는 이 프로그램 졸업생 20여 명(현재 동서대에 재학 중인 학생은 제외) 가운데 15명은 사할린으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5명은 모스크바, 1명은 캐나다에서 활동 중"이라 밝혔다.

■10년을 이어온 정(情)과 보은

이 프로그램은 단발성 또는 이벤트성에 그친 게 아니라 10년을 한결같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뚜렷한 특징이다. 10년 전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장제국 총장은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 가지 뜻을 담았다. 일제 강점기 약소국의 운명을 등에 지고 이곳 머나먼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도 귀국하지 못한 사할린동포 1세대에 대한 미약한 보은이 그 하나다. 그분들께서 가장 사랑했던 손자 소년들이 조국을 알고 느끼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두 번째다. 그리고 앞으로 가능성이 풍부한 사할린에서 우리 동포의 자손들이 실력을 갖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세 번째 목적이다."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사할린 남부를 차지하고 전쟁기지를 만들기 위해 한인 동포를 강제 징용했다. 그때 끌려온 우리 동포는 7만 명에 달한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일제는 한민족 동포의 조국 귀환에 무관심했다. 무려 4만여 명이 사할린 남쪽의 항구 코르사코프 항에서 조국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렸지만 배는 오지 않았고 수천 명이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폐인이 되어 죽었다. 그렇게 눌러앉은 한민족 동포의 후손들이 현재 사할린에서 한인사회를 이뤄 살고 있다.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은 이런 과거에 대한 작은 보은으로 출발했고 10년을 이어왔다. 동서대 배수한 종합인력개발원장은 "사할린의 한인동포들 2세, 3세는 거의 한국어를 하지 못해 우리말을 배우는 기회도 된다"며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동포 학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부산-사할린, 한국-러시아 관계의 미래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 동포사회, 감사패 마련

10주년을 맞아 사할린동포 인재양성프로그램은 전기를 맞았다. 지난 20일 이 프로그램을 사할린 현지에서 홍보하고 현지 주정부와 조율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한국 교육부 산하 사할린한국교육원(원장 박덕호)과 동서대 그리고 사할린 주정부 산하 교육부의 수장들이 정식으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은 현재까지 한인동포 후손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이 프로그램의 문호를 넓혀 러시아 학생들까지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정 국제협력처장은 "그간에도 한인동포 학생을 해마다 5명씩 뽑으면서 러시아 학생들을 1명 정도씩 선발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 폭을 넓히게 됐다"며 "특히 사할린 주정부와 공식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학생 선발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함께 진행할 수 있게 된 점은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예브게니 A. 사포노프 사할린 주정부 교육장관은 이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마련된 협약식에서 "현재 러시아 정부와 사할린 주정부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와 개선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동서대의 인재양성프로그램은 한국과 러시아의 교육 교류를 더욱 풍성하고 뜻있게 해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같은 날 오후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의 한인문화센터. 사할린주한인회, 사할린주한인노인회, 사할린한인이산가족협회 사무실이 몰려 있는 이 건물에 교육부가 운영하는 사할린한국교육원도 자리 잡고 있다. 2014년 동서대에 유학할 인재양성프로그램 참가자를 선발하기 위한 면접이 이 센터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이날 면접에는 10주년 행사를 위해 7년 만에 사할린 현지를 찾았다는 장 총장과 사할린 주정부 관계자도 함께 정식 면접위원으로 나왔다. 면접에는 동포 후손뿐 아니라 러시아인 학생들도 진지하게 "내 꿈을 위해 부산에서 꼭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한국어 또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당당히 밝혔다.

한편 사할린한인동포회 등 한인 단체들은 지난 19일 동서대 방문단에게 사할린동포 인재양성 프로그램 10주년을 맞아 감사패를 증정했다.

사할린=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