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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8> 동천의 기억- 팩션-꿈꾸는 동천

"하이고 냄새야, 또 똥 퍼내는갑다"… 큰비가 올 때면 으레 그랬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02 18:57:3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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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은 '똥천' '흑룡강'이란 별칭을 가질 정도로 한때 심하게 오염됐었다. 사진은 1960년대 오염된 동천 하류.
- 문짝· 타이어·장롱·옷가지…
- 때로는 살아있는 동물들까지도
- 별의별 것들이 수없이 떠내려가
- 사람들은 삼삼오오 다리에 모여
- 작은 탄식을 여기저기서 토해냈다

- 황톳물 속으로 개 한마리 잠긴 날
- 오빠는 벅찬 꿈을 가슴에 품었다
- 물고기 노닐고 유람선 떠 다니고
- 하천을 따라 예쁜 집이 줄지어선
- 맑은 동천 만드는 사람 될거라고

   
1980년대 말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동천을 지나가는 시민들 모습. 부산진구 제공
"하이고, 비 온다꼬 또 똥을 퍼내는갑다."

엄마가 비에 젖은 신발을 마루로 올려놓으며 푸념을 했다.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를 하다가 코끝을 잡고 벌렁 드러누웠다. 정말이지 비 오는 날 이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다면 오빠의 심부름을 열 번 정도는 군말 없이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 묵기는 틀릿다. 이노무 냄새에 밥이 어데 넘어 가겠나."

비 오는 밖을 내다보며 줄곧 담배를 피워대던 할머니가 재떨이에 곰방대를 땅땅, 소리가 나게 털며 고시랑거렸다.

"어무이도 참, 어데 하루 이틀 일입니꺼. 비만 오모 이런구로. 수제비 끓이낀가네 쪼깨만 잡수이소."

엄마가 젖은 치맛자락을 수건으로 털어내며 곰살스레 말했다.

"다른 하천들은 복개를 해서 냄새도 안 나고 사람 다니기도 좋다 카더마는, 여는 어째 소식이 없노."

할머니는 마치 엄마가 잘못하기라도 한 듯 짜증스레 내뱉고는 끙, 신음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몸을 눕혔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비만 오면 눅눅한 공기 속에 구린내가 감도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태어날 때부터 맡은 냄새여서 비 올 때는 으레 그런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비 오는 틈을 타서 집집마다 '똥천'에다 변소를 퍼내기 때문이라고, 오빠가 말해 주었다.

"똥만 버리는 줄 아나? 별별 쓰레기를 다 에삐린다. 니, 똥천의 다른 이름이 흑룡강인 줄은 아나? 흑룡강."

중학교에 다니는 오빠는 그날, 거울을 들여다보고 농익은 여드름을 눌러 짜며 말했다. 누런 고름이 툭 터지더니 거울에 들러붙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흑룡강은 또 뭐꼬? 나는 동천이라 할 끼다. 그 이름이 젤 예쁘다."

나는 동천이 '똥천'이나 '흑룡강'으로 불리는 게 싫었다. 내가 남희라는 이름을 두고 울보라고 불리는 게 싫은 것처럼.


비만 오면 구시렁대던 오빠가 오늘은 친구에게서 빌려 온 사진집만 들여다보고 있다. 거기엔 낯설고 아름다운, 다른 나라의 풍경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 중에도 나는 물가에 지어진 예쁜 집들이 부러웠다. 우리도 그런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오빠도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 오빠는 동천이 냄새를 풍기고 거무튀튀하게 흐르는 것에 대해 자주 투덜거렸다. 심지어 공부를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아버지에게 이사를 가자고 졸랐다. 그러면 아버지는 허허, 난처한 듯 웃으시다가 곧 엄격한 눈빛이 되어 말씀하셨다.

"남수야, 옛날엔 동천도 숭어가 올라올 만큼 물이 맑았다. 저 물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된 건 공장이 들어서면서다. 그러니까 우리 부산이 요만치 사는 거는, 다 동천 덕이라 할 수 있겠제. 사람 같으모, 지 몸을 저렇게나 못 살게 구는데 가만 안 있었을 끼다. 자연이니 말없이 인간의 욕심을 다 받아주는 기지. 장차, 남수 니는, 저 오염된 물을 어떻게 하모 맑게 흐르게 할 낀가 하는 꿈을 키아라. 아버지 생각엔, 복개를 하는 기 능사는 아이다. 그러니까 니는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꿈을 꾸란 말이다. 사나이 대장부는 현실을 불평만 하지 않고, 지 꿈을 갖고 실천하는 사람인 기다."

오빠는 잠시 꿈꾸는 소년처럼 눈빛이 초롱해졌다. 돌아서면 그뿐이었지만.

사진집 속에는 또, 하천을 따라 떠다니는 유람선도 있었다. 나는 배를 타고 가면서 물가에 예쁘게 늘어선 집과 거리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 집 앞에서 배를 타고 사람으로 득실댄다는 서면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시장도 구경하고 다시 그 배를 타고 돌아올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동천 가에 예쁜 집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계절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아버지가 쉬는 날, 가족이 함께 동천가를 거닐며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보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꿈을 꾸었다.


엄마는 수제비를 끓이겠다며 부엌으로 나가고, 할머니는 그새 잠이 들었는지 가늘게 코를 골았다. 나는 엎드려 턱을 괴고 잔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마당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발갛게 피었던 맨드라미와 붓꽃이 지난밤 세찬 비에 쓰러져 흙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형아! 누부야!"

빗발이 가늘어진 틈을 타 밖으로 나갔던 경수가 호들갑을 떨며 뛰어들었다. 와 그라는데? 오빠가 성가신 듯 툽상스레 대꾸했다.

"똥천에 개가 한 마리 떠내리 왔는데, 아직 살아 있다. 밖으로 나올라꼬 기를 쓰는데 자꾸 떠내리간다. 안 가볼래?"

오빠와 나는 동시에 후다닥 일어섰다. 물에 빠져 헤엄치는 개라니…. 우리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모른 척 우산도 쓰지 않고 경수를 따라 뛰었다.

동천 다리에는 벌써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큰비가 올 때면 으레 그랬다. 동네 사람들은 동천다리에 모여 서서 황톳물 속을 곤두박질치며 떠내려 오는 것들을 구경하는 걸 즐겼다. 떨어진 문짝, 썩은 타이어, 옷가지, 동물의 사체…, 그 외에도 동천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별의별 물건들이 다 떠내려 왔다. 오늘도 그랬다. 다른 게 있다면, 조무래기들이 모여 다리 아래 어딘가를 향해, 힘내라, 힘내라, 응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누런 황톳물이 몸부림치듯 뒤엉켜 흐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떠내려가면서도 온힘을 다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멀리서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게 보였다.

"진돗개다."

곁에 서 있던 오빠가 큰 발견이나 한 듯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개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왠지 소리를 지를 수가 없었다. 오빠도 다리 난간을 힘껏 움켜쥐고 안쓰러운 눈길로 개의 몸부림을 지켜만 보았다. 경수만이 팔을 마구 흔들어대며 독구야, 힘내라고 외쳤다. 개는 가까스로 머리를 내민 채 자꾸 떠내려갔다.

넘늘거리며 떠내려 오던 장롱이 개를 덮친 것은 순식간이었다. 잠깐 사이에 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거친 물소리는 아이들의 안타까운 비명과 눈길까지도 삼켜버렸다.

우리는 세 명의 패잔병처럼 힘없이 돌아왔다. 살려고 버둥질치던 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빠가 내 눈물을 보고도 울보라고 놀리지 않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빠가 나를 살짝 부른 것은 그로부터 한 달쯤 후였다. 놀랍게도 오빠는 동천의 물길을 따라 가볼 계획을 갖고 있었다. 드럼통이 물에 뜬다 해서 작은아버지 고물상에 가 점 찍어놨다고 했다. 두 개를 엮어 물에 띄울 생각인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오빠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이건 니한테만 말한 비밀이다. 새나가모 절대 안 된다. … 남희야, 난, 나중에 똥천 물을 맑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끼다. … 지금처럼 악취가 나고, 똥물을 버리고, 쓰레기가 떠다니는 똥천이 아이고, 숭어가 다시 몰려오는 그런 하천을 만들 끼다. 물이 맑았으모… 그 진돗개도 살았을지 모른다. … 외국에는 도시 한가운데로 배도 다니더라. 우리 부산도 하천마다 유람선이 떠다니고, 예쁜 집들이 늘어서고, 꽃나무에 꽃이 피모 억수로 아름다운 도시가 될 끼다. 난, 아버지 말씀처럼, 그런 꿈을 실천하는 훌륭한 싸나이가 될 끼다."

   
오빠의 여드름 투성이 얼굴이 희한하게도 빛나 보였다. 오빠의 꿈은 생각만 해도 달콤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오빠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오빠의 비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도와주기로 손가락을 걸었다. 하지만 드럼통을 타고 동천을 탐험하겠다는 오빠의 계획은 자꾸 미루어졌다. 작은아버지가 드럼통을 금세금세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빠는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언젠가 오빠의 꿈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었다.

정인 소설가

후원: (주)협성종합건업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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