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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7> 동천의 기억- 민주화의 성지, 서면

뜨거웠던 그해 여름, 민주화의 함성이 현대사 물줄기를 바꿨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6-25 19:46:2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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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교수 노동자 넥타이부대 등

- 부산시민 모두 들불처럼 일어서

- 서면은 시위 진앙지로 집결지로
- 6.29 항복선언 이끌어 낼 때까지
- 하루도 빠짐없이 대규모 시위

- 땅밑에 흐르는 동천 물줄기 위로
- 최루탄 날아들던 기억 생생한데
- 기념 빗돌 하나 없어 안타까워

지금 내 앞에 두툼한 책이 놓여 있다. 제목은 '유월의 노래.' 부산 거주 작가와 시민공모 시와 소설, 수필이 실린 작품집이다. 부산을 들끓게 했던 6월항쟁 10주년을 기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1997년 펴낸 책이다. 군부독재타도 머리띠에 손 태극기를 꽂은 청년의 해맑은 얼굴이 표지다. 책이 나오기 10년 전 그러니까 1987년 6월 부산에선 무슨 일이 있었기에 10주년을 기리는 책까지 펴냈던 걸까.

1987년 그 해는 정초부터 불화였다. 순조롭지 못해서 어긋났고 뒤틀렸다. 불화의 시작은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책상을 탁 치니 가슴을 움켜쥐고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 발표는 민심을 부글거리게 했다. 안 그래도 전두환 군부독재로 돌아선 민심이었다. 박종철은 보수동 혜광고를 졸업한 부산사람. '철아,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데이.' 아들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며 아버지 박정기씨 가 했던 고별사는 부산사람을 울먹이게 했다.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게 했다.

불화는 이어졌다. 4월 13일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호헌조치 발표. 4월 24일 일명 용팔이사건으로 불린 조직폭력배의 YS 주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박종철 사망사건 조작 은폐로 정권의 도덕성을 의심하며 동요하던 민심은 호헌조치와 용팔이사건에 자극받으면서 더욱 부글거렸다. 대학생 시위는 물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종교인, 대학교수, 예술인 시국성명과 단식농성이 이어졌다. 5월 27일 호헌조치 철폐 및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었다.

부글거리던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일이 기어코 일어났다. 박종철 고문치사처럼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교문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한 것이다. 얼굴에 피 흘리며 실신한 이한열을 학우가 뒤에서 부축한 사진은 4·19 때의 김주열 사진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분수령이었다. 이한열이 사고를 당한 날은 6월 9일. 그 다음날 6월 10일 마침내 민심의 횃불이 방방곡곡에 타올랐다. 횃불은 29일까지 20일간이나 타올랐다. 6월항쟁 횃불이었다.

6월항쟁은 범국민적 항쟁이었다. 한국 전역이 들고일어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었다. 6월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는 6·29선언을 전격 발표해 민심에 무릎을 꿇었다. 선언 전후 셈법에 몰두한 여야 위정자와는 달리 민주화와 개헌을 요구한 민심은 숭고했으며 순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부산 시민이 있었고 부산 서면이 있었다. 6월항쟁이 이런저런 이유로 누그러질 때도 부산의 횃불은 오히려 활활 타올랐으며 서면을 비롯한 남포동과 대학가는 횃불의 열기로 뜨겁디 뜨거웠다.


군가의 한 소절처럼

담배 한 개비도 나눠 피던

그 해 유월

빵과 우유는 만나가 되어

허기진 목청들을 채웠네

계시인 양

남과 여는 수줍음 버리고

시답잖은 구별도 버리고

태초의 한 뜻이었네

서면과 남포동을 잇는 간선도로

길은 막히고

노래마저 단절되었지만

행렬의 앞이나 뒤

어느 자리에선들 몰랐으리

밤꽃 진저리치는 꽃내가

살 섞기의 은유임을

그리하여

새 생명 새 세상이 열림을

(동길산 시 '밤꽃')


부산 6월항쟁 집결지는 크게 두 군데. 서면로터리와 광복동이었다. 시국 불안정으로 조기방학에 들어간 대학의 학생들은 부산진시장, 보림극장, 연산동, 가톨릭센터, 대각사 등 부산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2차 집결지인 서면과 광복동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동의공고와 부산상고 등 고교에 '매일 오후 6시 서면과 광복동에서 열리는 시위에 고교생도 동참하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다. 여고 졸업반 어느 학생은 시위대에 김밥과 랩을 전달했으며 격려 편지와 함께 3000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한 전경도 있었다.

"시내버스가 경찰 저지선을 뚫어줬다 아이가." 6월항쟁 특징은 넥타이 부대 가세였다. 퇴근한 직장인이 음으로 양으로 힘을 보탰다. 시장상인, 영세민, 노동자 역시 직접 시위에 나서든지 시위 현장에 빵과 우유, 김밥, 담배를 조달했다. 그러면서 항쟁의 불길은 쉬 번졌고 쉬 사그라지지 않았다. 부산MBC 이희길 기자도 그런 경우다. 이희길은 필자와 대학 학보사 동기. 기자가 되기 전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1987년 6월 타고 가던 시내버스가 돌진하면서 시위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넥타이 부대 일원이 되었다. 시위대를 따라다니다 우연히 만나 중앙시장 허름한 식당에서 곱창 안주로 통음했던 기억이 난다.

6월항쟁 내내 서면은 요즘말로 해방구였다. 부산지역 유월항쟁 자료발간위원회에서 펴낸 '6월항쟁 자료모음집'과 '6월항쟁 항쟁일지'를 보면 시위 첫날부터 2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서면은 어떤 날은 집결지였고 어떤 날은 진원지였다. 몇 날을 추려 본다. 6월 10일 중앙동과 광복동 시위대가 합류해서 KBS방송국 투척 후 서면 진출(당시 KBS는 남포동과 서면 중간에 있었다). 15일 서면 시위대 4000여 명이 범내골 로터리를 거쳐 부산역 광장과 도로에서 시위. 18일 오후 3시 시위대 1만 명 서면 로터리 집결. 19일 서면 시위대, 한때 전경 무장해제. 20일 서면 시위대 4000명 사상 방면 진출, 1만5000명은 서면 로터리 연좌시위. 21일 서면에서 최루탄 추방대회 개최. 24일 18일의 서면 시위 참가자 이태춘 사망. 26일 민주헌법 쟁취 부산시민대행진 오후 7시 서면 개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부산 6월항쟁 중심지 서면에서 '오월의 노래'와 함께 가장 자주 '제창'되었던 노래다. 여기 서면이 민주화의 성지라는 빗돌 하나 세워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노래를 웅얼거려 본다. 입으로 또는 속으로 제창하며 항쟁에 동참했던 부산시민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하에서나마 행진곡에 맞추어 물소리를 내었을 서면의 하천 물줄기는 지금 어디로 흘러갔을까. 서면에서는 지상의 사람도 지하의 하천도 한 몸 한 마음. 함께 부르고 함께 흘러간 세월이 벌써 이십오륙 년이다. 빗돌 하나 세워주지 못한 세월이 벌써 사반세기다.

동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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