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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 당시 거리로 나온 학생 시위대.
선두 왼쪽에 서 있는 학생이 강수영 군이다. 당시 경남공고 3학년이었던 그는 30분 뒤 진압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국제신문 DB |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후배가 알려왔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동천이 흘러가는 범내골 광무교, 동천이 바다에 닿는 자성대 역시 민주화 현장이다. 광무교에서 벌어진 반독재 시위 부상자가 촉매가 돼 1960년 4·19혁명 부산 최초 사망자가 자성대 부근에서 나왔다. 사망자는 당시 경남공고 3학년 강수영. 1939년생 강 열사는 이승만 독재정권 항거 거리행진에 참가했다가 진압경찰 총탄을 맞고 순국했다. 당일 후배에게서 비보를 들었다는 경남공고 10기 동기 정영배 선생은 강 열사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모범생으로 기억한다.
강 열사가 순국한 날은 4월 19일. 그 날 경남공고를 비롯해 데레사여고, 금성고, 동성고, 항도고, 부산공고 학생시위가 있었다. 시위대는 전포동과 문현 로터리를 거쳐 자성대로 가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그 와중에 강 열사가 순국했다. 이 시위를 야기한 직접적 계기는 경남공고 1학년 배현열이 경찰 폭력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사건. 당일 오전 경남공고생 500여 명은 독재를 타도하자며 학교를 빠져나갔다. 학생들은 동천 옆 제일제당 방면을 거쳐 광무교에서 경찰과 대치한다. 대치하다가 충돌이 생겼고 소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두들겨 맞은 배현열이 광무교 아래로 떨어져 혼절한다. 배현열이 손수레에 실려 학교로 돌아오자 죽은 걸로 안 전교생이 분기탱천 일제히 거리행진에 나서게 되고, 인근 고교도 동조하면서 부산 고교생 시위로 번진다.
경남공고는 동천 물줄기가 적시던 학교. 교정 오래된 나무는 동천 물줄기가 어떻게 생겼고 동천 물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기억하고 있을 터. 나무 사이로 큼지막한 돌비석이 보인다. 빗돌 앞면에 새긴 글자도 큼지막하다. 글자는 '義勇(의용).' 강수영 열사를 기리는 추념비다. 세운 날자는 순국 두 달 후인 1960년 6월 19일. 뒷면 한 대목이다.
'분하다. 그가 신명을 걸고 열화처럼 절규하던 민주재건의 먼동이 트기 전에 숨지고 말았으니, 곳은 자성대 임란의 터요 독재가 물러가기 한 주일 전이었다.'
그 날 광무교에서 자성대로 흐르던 동천의 물줄기는 독재 타도의 물줄기. 민주화를 외치는 카랑카랑한 물줄기였다.
※후원: (주)협성종합건업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