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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인체조직은행 조직보관실에서 담당자가 인체조직을 극초저온으로 보관하고 있는 'LN2(액화질소) 컨네이너'를 점검하고 있다. 이민용 기자 |
# 인체조직은행이란
- 피부 뼈 등 사후에 기증 받아 보관
- 고통받는 이들에게 장기처럼 이식
# 지방에서는 첫 설립
- 기증체계 수도권 중심서 벗어나
- 지역 의료산업·서비스 지평 넓혀
# 공급 턱없이 부족
- 낮은 인지도·유교주의 관습 여파
- 국내 기증 24% 그쳐 수입에 의존
지난 5월 경남 하동에서 32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난 주 모 씨. 한창인 나이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었다. 유가족들은 의료진과 기증코디네이터의 권유에 따라 피부와 뼈, 연골 등의 인체조직을 기증키로 결정했다.
자칫 허망한 마감이 될 수 있었던 한 젊은이의 죽음은 인체조직기증이라는 생명잇기의 끈을 달고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세상에 다시 꽃을 피웠다.
그가 기증한 피부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에게 먹일 라면을 끓이다 화상을 입은 초등학생의 치료를 위해 쓰여졌다. 뼈는 희귀 뼈암의 일종인 골육종으로 고통 받는 여중생에게 이식되었다. 인대와 건은 연습 도중 부상을 당해 선수생명이 위기에 처한 한 고등학교 축구선수의 재활치료에 쓰여졌다. 고인의 몸은, 그렇게 수많은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
■새 생명을 살게 하는 아름다운 죽음
주 씨의 경우처럼 사후 인체의 조직 일부를 기증받아 환자에게 공급하는 기관인 '인체조직은행'이 지방에서는 최초로 지난 3월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 문을 열었다. 이 은행은 230㎡의 면적에 수술실과 조직보관실, 조직가공실. 기증자 추모실을 갖추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이름이 다소 낯선 이 은행은 간 신장과 같은 장기에 속하지 않는 혈관 피부 등 인체조직을 기증받아 환자에게 공급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기관 한 곳이 들어선 것에 불과하지만 인체조직은행 설립은 지역 의료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인체조직을 지역 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가 지원하는 인체조직은행으로 허가받은 의료기관은 3곳이었다. 수도권역 조직은행, 서울성모 조직은행, 분당차 조직은행 등 3곳은 모두 수도권 지역에 있다. 이번 양산부산대병원 인체조직은행이 개원함으로써 이젠 지역에서도 인체 기증과 채취, 보관, 환자에게 공급이 가능해졌다. 그만큼 지역 의료서비스의 폭도 넓어지게 된 것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인체조직은행 복춘희 사업국장은 "양산 부대병원 조직은행 설립은 수도권 중심의 조직기증 구득 체계를 부산, 경남 지역으로 확장시킨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법률 개정 등의 제도 정비를 통해 인체조직기증 활성화와 공적관리 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줌의 흙보다는 100송이의 꽃으로
2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장기기증과는 달리 사후에 피부나 뼈 등을 기증하는 인체조직 기증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인체조직은 간이나 심장과 같은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장기처럼 '극적인 요소'가 적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결코 덜하지 않다. 장기기증은 뇌사상태에서 1대 1로 기증과 이식이 이뤄져 최대 9명까지만 수혜가 가능하다. 반면 인체조직은 한 명의 기증으로 100명 이상의 환자가 혜택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전신화상환자는 2차 감염에 의한 패혈증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증된 피부이식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부분 청소년층에서 발병하는 희귀 암의 일종인 골육종(뼈암)의 경우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해당 부위를 절단해야 했지만, 지금은 누군가 기증한 뼈를 이식받아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이처럼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찾게 해 줄 이식재 확보가 관건이지만 어려움이 많다. 지난 한 해 동안 부산 울산 경남지역에서 인체기증을 하겠다는 사람은 3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조직은행이 수도권에 집중돼 기증을 하고 싶어도 시신을 수도권으로 운구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대부분 포기, 실제 기증은 15건에 그쳤다.
한 의료인은 "수도권에 편중된 이식재 공급이 영남권역에서도 가능해져 경제적으로도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며 "이번 조직은행 개원으로 기증자도 올 연말까지 3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요 많지만 공급은 적은 인체조직 기증
인체조직 기증은 그 필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낮은 인지도와 유교적 관습으로 인해 국내 사정은 열악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이식재 수요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식품의약안전처가 발표한 2011년도 이식재 수입 생산 현황에 따르면 유통된 27만1707개의 이식재 가운데 국내 기증은 6만4401개로 24%에 그쳤다. 피부이식재의 경우 국가별 수입현황에서도 국내 기증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지난 2011년 기준 미국과 스페인은 피부이식재를 단 한 건도 수입하지 않았지만 영국은 2174건, 한국은 무려 1만4166건에 달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입되는 이식재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인체조직은 기본적으로 국가별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주요 수입국에서 자연재해 등으로 단기간에 많은 이식재를 소진할 경우 국내 수급 안정성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같은 심각성에 따라 국회에서도 인체조직 영역을 혈액이나 장기처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오제세 보건복지위원장(민주당)과 유재중 의원(새누리당)을 통해 공동발의 된 개정안의 내용은 인체조직 기증·이식 체계를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유재중 의원은 "인체조직은 혈액이나 장기처럼 국민 보건에 중요한 공공재로 소중히 다뤄져야 하는데 현행법이 미비해 상업화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국민보건 향상을 위해 관련법을 개정, 법률적 기구로 관리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인체조직 기증 진행 어떻게
기증이 가능한 연령인 만 14~85세의 환자가 사망한 뒤 15시간 내에 가족들이 기증 의사를 밝혔을 때 인체조직기증 코디네이터가 파견된다.
사망자의 의무 기록을 열람해 적합성 검사를 거치고, 선순위권 유가족 1인의 서면 동의를 받아 조직은행으로 이송된다.
조직은행에 이송된 시신에서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부위별 인체조직을 구득한 후에는 한국인체조직기증재단 소속 장례지도사가 시신 복원 절차를 거쳐 유가족에게 인도한다. 이 모든 절차가 대부분 12시간 내에 끝나게 된다.
다만 사망 원인 및 사망시간 미상, 감염성 질환(성병, 에이즈, 간염 등), 약물 중독증, 퇴행성 신경질환(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 암세포 전이 우려 환자 등의 경우에는 안전한 인체조직 관리를 위해 기증자 대상에서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