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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 재생 4.0 부산의 미래를 흐르게 하자 <4-5> 동천의 기억- 동천과 CJ제일제당

1953년 여름 동천변 허허벌판 '달콤한 공장' 하나 둥지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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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3-06-11 19:32:1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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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부산진구 전포동의 제일제당 공장과 그 앞을 흐르는 동천.
- 44세 기업가 이병철 진두지휘로
- 설탕제조공장 부산에서 첫 탄생
- 당시로서는 첨단 하이테크 산업
- 100% 수입의존 탈피 국산화 성공

- 초창기 직원 한달 급여 20만 환
- 20평 크기 집 한 채 사고도 남아
- 업계서도 '천하의 제일제당' 칭해

- 이후 공장 증설·사업 다각화 꾀해
- 삼성·CJ 등 굴지 대기업으로 성장
- 동천이 국내 산업화 모태지 역할

1953년 여름, 부산 한복판인 서면 아래쪽 동천 변에 규모가 제법 큰 희멀건 공장 하나가 들어선다. 부지는 부산 부산진구 전포동 743번지 일대 1055평. 당시 공사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나이 마흔넷의 기업가 이병철(李秉喆, 1910~1987) 회장이었다.

한국전쟁의 정전 논의가 가시화되면서 전쟁 복구와 산업 부흥의 분위기가 일던 때였다. 그해 11월 5일 마침내 국내 최초의 설탕공장인 제일제당이 준공되었다. 부산시민들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전쟁으로 실의에 빠진 시민들에게는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근대적 설탕공장이, 그것도 부산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허허벌판에 선 공장

   
초창기 제일제당에서 생산된 설탕을 보관한 창고에서 직원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공장이 들어섰던 전포동 일대는 허허벌판이나 다름 없었다. 공장 동쪽 언저리는 논밭이었고, 북쪽의 서면 일대는 미개발 상태로 전원에 가까웠다. 공장 서쪽으로는 전차가 덜컹거리며 동천을 가로질러 오가고 있었다. 포장이 안된 도로에는 우마차가 심심찮게 다녔고 먼지가 폴폴 일었다.

제일제당 공장 뒤쪽에는 부산고무공장과 정미소, 경찰 피복창고가 자리했고, 동천 하류 남쪽에는 동명목재가 목재를 쌓아두고 있었다. 동천변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전쟁 피란민들의 판자집이 즐비했다. 아이들은 동천에서 고기를 잡거나 멱을 감기도 했다.

제일제당의 초기 공장건설은 삽과 곡괭이, 가래로 땅을 파고 파낸 흙을 지게로 져 나르는 등 대부분 작업이 단순 노동력에 의해 이뤄졌다. 한여름의 불볕 더위와 장마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서두른 결과, 1953년 8월 핵심 설비들이 설치될 300평 규모의 공장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 원당창고, 제품창고, 기관실, 시험실 등이 10월 하순에 속속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11월5일에는 시제품으로 생산된 중백당 1만458근이 근당 48환에 판매 되었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이 국산화 되는 순간이었다.('CJ 50년사'에서 부분 발췌)

■호암의 기업가 정신

제일제당을 세운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1910년 2월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 정경과에 입학했다가 1934년 중퇴한 그는 마산에서 협동정미소를 세워 사업을 하다가, 1938년 대구 서문시장 한 편에 삼성그룹의 모체인 삼성상회를 세웠다. '삼성'은 크고, 강하고, 완전한 존재를 나타내는 숫자 삼(三)에 밝고, 높고, 영원히 빛난다는 의미인 성(星)을 합친 개념이라고 한다.

해방 후 호암은 본격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 1948년 11월 서울 종로에서 삼성물산공사를 세웠고, 한국전쟁과 함께 부산으로 사업 근거지를 옮겼다. 1953년 4월 부산 대교로 2가의 삼성물산주식회사 내에 '제일제당 창립사무소'가 만들어져 이병철 등 7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한다. 사명을 '제일'로 한 것은 알기쉽고 부르기 쉽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슨 일에나 제일(第一)을 지향하여 사업보국을 이룬다는 의지를 담았다.

호암은 동천 변의 제일제당 공장 내에 '백설관'이란 집무실을 두고 공장 및 판매업무를 총괄했다. 단층 한옥 형태의 '백설관'은 부지 매각과 함께 2006년 12월18일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설탕으로 연 사업보국(事業報國)

   
생산된 설탕을 트럭에 싣는 모습. CJ제일제당 제공
CJ제일제당의 창사 기념일은 11월5일이다. 1953년 바로 이날, 국내 처음으로 설탕이 생산됐기 때문인데, 회사로서나 경제사적으로나 그만큼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다. 오늘날 CJ의 과거 50년사를 논할 때, 2개의 핵심 키워드는 '식품사업'과 '이병철 선대회장'이다. CJ의 모태인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모태이며, 그 시발점에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이 있다.

제일제당은 이 회장이 처음 세운 제조업체였다. 제일제당이 삼성의 모태라면, 그 태반(胎盤)은 바로 동천이다. 당시 설탕 제조에 참여한 임직원들의 증언을 보면, 초기 생산 과정의 어려움이 감지된다. "1953년 10월28일 시운전에 들어갔는데 기대했던 설탕은 안나오고 콩깻묵 같은 것이 나왔다. 일본에서 제당 기술을 배워온 직원 역시 원인을 몰라 고개만 갸우뚱할 뿐 속수무책이었다. 몇 번씩 기계를 해체했다가 조립을 거듭하면서 갖은 궁리를 다해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당시 기계 설치작업에 참여했던 직원들도 원인을 찾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했다."

설탕 제조는 당시로선 최고 기술을 요하는 하이테크 산업이었다. 광복 직후 남한에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공장 외에는 이렇다할 생산시설이 없었다. 1950년대에 와서야 제당 제분 제빵 제면 청량음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근대적 면모를 갖춘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산업환경 속에서 일본 기술을 들여와 국산화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월급 20만 환

지금은 설탕이 흔하디 흔한 양념 또는 기호품이 돼 있지만, 1950년대만 해도 국민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자, 서민들에겐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제일제당의 설탕 생산 이후 톤당 300환이 넘던 설탕값이 48환에 공급되었고, 설탕의 인기는 독점적 지위로 이어져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줬다.

'CJ 50년사'에는 초창기 제일제당의 위상을 전해주는 한 직원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당시 우리의 월급이 20만 환이었어요. 그때 동천 주변의 10~20평 크기 집값이 15만 환, 김해평야의 논 한 마지기가 2만 환이었죠. 우리 직원들은 물론 업계에서도 우리 회사를 '천하의 제일제당'으로 부르고 다녔습니다."

제일제당은 1954년 부산 공장 증설에 이어, 1957년 제분공장을 설치하여 규모를 키운다. 창립 당시 1000만 환이던 자본금 규모는 2년 후 2억 환, 6년 후에는 20억 환으로 늘어났다.

제일제당 설립은 상업자본이 성장하여 산업으로 전환된 본보기로, 한국의 근대경제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원천을 더듬어보면 동천과 부산시민, 호암 이병철을 만난다.
# CJ제일제당의 오늘

- 식품업 국내 1위 기업 자리 고수
- 그룹은 최근 비자금문제로 위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집무실로 사용한 부산 제일제당 공장 내의 백설관. 2006년 말 철거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 부산진구 전포동 동천 변에 공장을 세워 기틀을 다졌다. 처음에는 국민 식생활에 필요한 설탕, 밀가루, 식용유 등의 기초 소재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출발해, 종합식품, 바이오, 생물자원, 제약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96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 2002년 제일제당이라는 이름을 벗고 새로운 이름 CJ주식회사로 거듭났다. 그러다 2007년 9월 CJ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도입으로 현재 사명인 CJ제일제당으로 바꿨다.

제일제당을 근간으로 하는 CJ그룹은 다소 복잡한 분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이재현 회장 체제로 자리 잡는다. 이재현 회장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남인 이맹희 씨의 맏아들. 범삼성가의 장손기업으로 삼성의 적통을 내세우고 있다. 서울 남대문로 그룹 사옥에 할아버지(이병철)의 흉상을 세우고, 회사 홈페이지에 제일제당 설립 당시 삽을 들고 서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올려 놓은 것도 이러한 적통과 무관하지 않다.

이후 이재현 회장은 발군의 경영수완을 발휘해 설탕과 조미료를 만들던 CJ를 종합문화그룹으로 키워 재계 10위 그룹으로 끌어올렸다. 잘 나가던 CJ그룹은 최근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문제로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삼성과는 다소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CJ제일제당은 2011년 매출 6조 5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식품업계 1위 기업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04년 경남 양산공장을 준공해 가동 중이며, 부산공장 부지 1000평은 2005년 포스코 측에 매각하고 철수했다.

CJ제일제당 전략사업부 김형준 부장은 "국제신문의 '동천 재생 프로젝트'를 유심히 보고 있으며, 동천 살리기에 어떤 형태든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전했다.

박창희 선임기자 김영록 기자 chpark@kookje.co.kr


후원: (주)협성종합건업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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