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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7> 차세대 인문학운동(下)-잡지·출판 운동

전세계와 지역의 인문학 선별하고 엮는 큐레이터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5-28 20:11:03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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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 잡지 '인디고' 편집장 겸
- 국제인문학 프로젝트 팀장

- 세계적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등
- 국적도 배경도 다른 작가들의 글을 편집해 출판한다

- "상아탑 속보다
- 세계와 소통하는 인문학자 되고 싶다"


◇김대성

- '지역'이란 말을
- 새롭게 이해하는 평론가

- 젊은 인문학자, 소규모 출판사, 인디음악가 등
- 이질적 집단 간 네트워킹 만들 작정

- "숨어있는 공간, 주목받지 못한 작가
- 발굴해 연결하는 게 지역 인문학자 과제"


■박용준: 큐레이션 인문학

   
국제 인문학 잡지 '인디고'의 박용준 편집장.
단조롭게 보이던 골목 주변에 아기자기한 공간이 늘어난 듯하다. 인디고서원 덕분일까. 잡지 '인디고' 편집장과 국제인문학 프로젝트팀장을 맡은 박용준. 만나자마자 분주히 4층 건물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이곳저곳을 안내해준다. 불쑥 "오늘 주제는 인문학자 박용준입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조금은 당황한 눈치다.

몸이 단단해 보인다. 어릴 때 전국체전 출전후보로 촉망받을 만큼 운동을 잘했단다.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이곳을 찾은 뒤로 '책벌레'가 됐다고. 하지만 그가 인디고서원보다 먼저 만난 '책 세상'은 어머니의 책꽂이. 영문학자인 어머니가 소장한 책을 그냥 들춰보기만 해도 즐거웠단다. 책 얘기만 나와도 얼굴빛이 밝아지는 박용준 편집장. 이제 전국적으로 촉망받는 인문학 운동가로 성장했다.

박 편집장에게 국제학술교류는 1년에 한 번 여는 연례행사가 아니다. 그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해외석학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한다. "오늘 아침엔 영국에서 바우만이 메일을 보내왔어요"라는 식이다. 올해 이탈리아 출판사 한 곳에서 펴낸 책을 보여주는데, 겉표지에 '박용준 편집'이란 문구가 또렷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잡지 '인디고'에 기고한 글을 따로 묶어낸 책이란다.

▷편집, 소통, 치유

이탈리아어로 '편집'을 뜻하는 쿠라레(curare)는 원래 '보살핌' '돌봄' '치유'를 뜻하는 말. 큐레이터(curator)란 단어도 여기서 갈라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박 편집장이 하는 작업을 보면 예술 큐레이터가 떠오른다. 미술관에서 세계 곳곳의 예술 작품 정보를 찾아 모으고, 여기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해 기획전을 여는 큐레이션 작업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새로운 맥락 생성, 의미 부여, 소통. 이런 일은 일반적인 인문학과는 또 다른 작업을 요구한다. 쏟아져 나오는 지식의 바다에서 하나의 주제와 패턴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며, 연결하는 작업. 국적도, 배경도 다른 작가들의 생각을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공동선'(共同善)과 같은 '인디고' 철학의 형식으로 제시하는 작업.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전 세계 석학들의 붓을 빌려 인디고 철학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는 상아탑 속의 인문학자가 되기보다는 이처럼 자신의 인문학적 통찰에 바탕을 둔 편집과 출판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인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공동선의 실현을 꿈꾸는 박용준 편집장. 그는 책이란 것이 세계와 소통하는 매체이자 세계를 치유하는 매체라는 믿음을 실천하며, 편집과 소통과 치유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인문학 운동가이다.


■김대성: 네트워크 인문학

   
다양성의 인문학 운동에 주목하는 김대성 문학평론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간'이 지역에 무수히 많아요." "숨어 있는 공간, 주목받지 못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매개해 새로운 가능성을 생산해내는 것이 지역 인문학자의 과제가 아닐까요." 문학평론가 김대성은 지역이란 말을 독특하게 이해한다. 지역은 '중앙'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발명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란 것. 그리고 지역은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가둘 수 없는 공간이며, 여러 가지 이질적 요소로 이뤄진 공간이란 것. 달리 말해 지역 속을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깜짝 놀랄 만치 다채로운 빛깔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하는 영역은 다양하다. 부산의 젊은 인문학자, 문학 작가, 미술 작가를 비롯해 소규모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사람. 영화를 만들고, 영화비평을 해온 사람. 인디음악을 하거나 인디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사람. 정말 부산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을 예로 든다.

지역이 이렇듯 다양성의 공간이라면 지역에서 실천하는 인문학 운동도 다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대성 평론가는 현재 부산 인문학이 이런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한다. 그는 인문학 공간이 자리 잡은 지역마다 정작 지역주민 참여가 낮은 이유. 또 인문학 공간을 찾는 사람이 특정 연령층에 쏠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양성의 네트워크

그는 여러 가지 대중문화 장르와 인문학을 연결하며, 시민인문학 강좌에 현장 예술가를 연계하는 것이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집단을 연결하는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앞으로 인문학 운동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새로운 맥락 생성, 의미 부여, 소통을 제안한다는 면에서 김대성 평론가도 일종의 큐레이션 작업을 고민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학 시절 인디밴드와 독립영화제작에 참여했고, 계간 문예잡지 '작가세계'에 'DJ, 랩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2007)이란 평론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활동 궤적도 다양한 네트워크를 이룬다. 문학비평공동체인 '해석과 판단'의 멤버로 비평집 '지역이라는 아포리아'(2009)를 함께 펴냈고, 현재 시 전문계간지 '신생' 편집위원이자 '신생인문학연구소' 연구위원이다. 또 2008년부터 동아대 석당연구소 연구원으로 지내며 '연구모임 A'를 만들고, 일본 요코하마 인문학자, 예술가들과 국제교류를 시작했으며, 올해 초까지 연구모임 '아프콤'(Aff-com) 프로그래머로 활약했다.

이제 그는 송진희(사진, 영상, 설치) 작가와 함께 이질적인 집단 간의 네트워킹을 본격적으로 실천할 계획이다. 이른바 '로컬의 곳간' 프로젝트. 그리고 이런 작업을 담아내는 인문학 잡지를 따로 창간할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잡지'를 뜻하는 '매거진'은 아라비아어로 '곳간'을 의미하는 '마카진'(makhazin)에서 나온 말. 그동안 부산에는 여러 종류의 대안문화 공간과 인문학 공간이 활동해왔지만, 이들이 하나의 공통적 기반 위에서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여는 네트워킹을 형성하지는 않았다. 김대성 평론가의 시도에 기대를 걸어본다.


# 잡지 '인디고' : 부산발 '한류 인문학'

   
박용준 편집장과 인디고 청년들이 미국 보스턴대 역사학자 하워드 진 교수와 인터뷰하는 모습.
2010년부터 펴내는 국제인문학잡지 '인디고'는 말 그대로 국제적인 잡지. 영미권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수출한다. 이 잡지는 놀랍고도 선명하다. 놀랍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국내외 사상가의 대담을 싣거나, 기고를 받아 잡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선명하다는 것은 삶의 가치, 희망, 정의와 같은 '인디고' 철학을 한결같이 적용하기 때문이다.

'인디고'는 이런 기획을 '공동선 총서'라는 독립적인 출판물 시리즈로 확장했다. 총서 1호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인터뷰를 엮은 책을 펴냈다. 국내 최초의 지젝 인터뷰집이란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인문학연구소(Ink)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한 결실이란 것. 기성 연구자의 문제의식보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자신의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말이다. 캐임브리지 대학출판부에서 영어판으로도 나온다. 부산발 '한류 인문학'의 신호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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