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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5> 철학 공동체

공동체의 '참된 행복'을 찾는 공동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5-07 19:10:30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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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부산가톨릭대학에서 열린 부산시민을 위한 제13기 인문고전대학 개강식 장면. 국제신문DB
- 이부현 교수가 주축이 된
-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와
- 이 연구소가 만든 부산희망대학은
- 참된 행복과 사람 본연의 가치,
- 바로 '철학'을 연구하는 자발적 공동체다

이른바 '멘토'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기준에 맞춰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렇게 남이 정해놓은 행복의 기준에 맞춰 살려는 탓에 우리는 점점 더 불행해지는 게 아닌지. 이 점에서 철학이란 학문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철학은 '참된 행복'을 추구한다. 그리고 참된 행복은 인생의 주인공이 자신이란 자각에서 출발한다. 유행에 따라, 남의 눈에 따라 행복을 찾지 않으며, 사람 본연의 기준과 가치를 찾는다는 말이다. 이런 철학을 묵묵히 연구하며,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있다.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부산희망대학 1기 수료식 장면.
이부현 교수가 철학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소를 세운 것은 2002년 가을.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을 가져보자는 소박한 취지로 시작했다. 차츰 연구자들이 모여들었고, 한 해에 연구모임을 무려 200회 가까이 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임이 자발적 '공동체'란 것.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몇 번 받기도 했지만, 다른 대학연구소처럼 물질적, 제도적 기반에 바탕을 둔 조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신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부현 교수는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요즘 인문학연구의 모습을 비판한다. 돈 많이 버는 연구, 크고 화려한 연구가 좋은 거라면, 인문학이 세상과 다른 게 뭐냐는 거다. 이부현 교수는 연구원들을 '친구'로 여긴다. 사실 뜻을 함께하는 우정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연구소를 지속하며, 어떻게 세상과 다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2004년부터 무료 논술학교를 열었고, 이것을 계기로 2005년부터 '인문고전대학'을 열었다. 인문고전대학은 문학과 철학 중심의 시민강좌. 일반시민 대상이지만 고전을 음미하며 사람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수준 높은 강좌이다. 그런데도 고정 수강생이 많다. 강사와 수강생 전체가 하나의 배움 공동체를 이루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산희망대학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는 2009년부터 '부산희망대학'을 열었다. 희망대학은 차상위 빈곤층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 부산 전역의 지역자활센터와 함께 진행해왔다. 일반대학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두 학기로 진행한다. 지난해까지 수강생은 472명, 졸업생은 253명. 부산에서 빈곤 소외층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 체계적 인문학 강좌는 부산희망대학이 유일하다.

희망대학은 일반대학 교양과정 수준의 내용을 쉽게 풀어내 소통하지만, 지식이나 교양 습득이 목표는 아니다. 자활센터의 심리치료나 기술교육과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게 진행한다.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수강생의 자존감 고취. 강의를 3주 정도 진행하면, 수강생이 활력을 찾고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단다. 종강 때는 강사와 수강생이 함께 현장 답사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올해 희망대학은 이달 23일부터 강서·기장 자활센터에서 열리며, 여성자활지원센터 '숲'과 함께 성매매 피해여성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3년간 받은 뒤로 2011년엔 (주)세정 후원도 받았지만, 지난해부터는 강사들의 순수한 '강의 기부'로 진행하고 있다. 자활센터에 인문학 관련 예산이 없어 강사 교통비도 못 주는 형편이란다. 차상위 빈곤층은 4인 가족 생활비가 월 150만 원 미만의 가정. 희망대학 강사 대부분이 차상위 빈곤층이다. 말하자면 차상위 빈곤층이 차상위 빈곤층에게 강의 기부를 하는 셈이다. 참으로 인문학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정신, 세상과 다른 공동체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의 근간인 공동체 정신이 무너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의 보호를 받기에 앞서 사회를 보호해야 하는 시대를 맞은 듯하다. 이 점에서 공동체 정신을 묵묵히 살려나가는 철학 공동체의 가치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 다니엘 바렌보임: 음악 공동체의 실천가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끈 평화콘서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42~)은 '평화의 지휘자'. 아르헨티나 출신 유대인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모두 지녔다.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 인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서동시집'(West Eastern Divan)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아랍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양 국민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믿음에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랍 출신 단원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2011년 한국 'DMZ 평화콘서트'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 전 악장을 연주하기도 했다. 바렌보임은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을 바꿀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음악으로 공동체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 인문공동체 금어 : 마을 밀착형 철학 공동체

금어(金魚)는 2011년 10월, 부산 금정구 부곡시장에 자리 잡은 인문공동체. 현재 '인문고전대학'과 '부산희망대학'에서도 활동하는 김준호(동양철학) 박사, 김창준(서양철학·미학) 박사, 김재경(영문학) 박사와 이동문(서양철학) 영산대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다. 철학 비중이 높은 인문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김재경 박사는 소설 '율리시즈'를 함께 읽고 한솥밥을 나눠 먹는 '밥상공동체'형 공부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매달 고전 한 권을 선정해 함께 논의하는 '기획발표회', 공동대표별로 주관하는 '공부모임', 주로 청소년 대상인 '영화로 읽는 인문학' '가정과 사회가 함께하는 토요일'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청소년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철학연구 공동체가 마을 공동체로 확장하고 있다. 공동체 규모와 비교하면 공동대표가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심(私心) 버리기, 눈앞의 이익 덜 챙기기, 가치관 공유하기"를 원칙으로 삼아 운영한다. 철학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 정두환의 화요음악강좌: '음악철학' 공동체 

음악가 정두환은 여러 차례 개인발표회를 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며,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해 박사과정까지 밟은 종합적 인문학자이다. 자신을 '문화 유목민'으로 부르기도 한다. 2000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30분마다 음악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부산문화회관에서 시작했고, 2011년부터 보수동 책방골목문화관에서 다시 둥지를 틀었다. 

국내에 하나뿐인 헌책방골목. 여기서 펼쳐지는 음악 강좌는 단순한 음악 감상회가 아니다. 지난주 주제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마침 한미군사훈련을 마친 이날 바렌보임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하다. 남북갈등이 깊어지는 시점에 음악의 의미를 인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 평양에서 음악회를 열자는 제안도 나왔다. 시벨리우스의 선율이 절규하듯 다가왔다. 이처럼 음악과 철학이 어우러지는 강좌는 드물고도 아름답다. 

그리고 이 무료 강좌는 자발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음악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공동체. 자신이 지닌 것을 공유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문화 유목민의 소망을 실천하는 장이다.

이지훈 철학자 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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