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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8> 양산 '호박넝쿨'

아파트 소모임에서 출발… 동화구연·자연학습 '행복이 넝쿨째'

  • 국제신문
  •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  |  입력 : 2013-05-01 19:59:5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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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넝쿨'이 마련한 텃밭체험에 참가한 아이들이 줄다리기를 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호박넝쿨 제공
◇ 주공4단지 주부들의 모임

- 단지 내 도서관 폐관되자 결성
- 회원 15명… 경로당 청소 등 진행
- 비회원 상관없이 함께 모여 행사

◇ 화단이 교실, 주민이 선생님

- 우리 마을 들꽃·나무 현장학습
- 조경업무 맡은 아저씨 등 강사로
- 동화 들려주기 전 월2회 공부도

경남 양산시 양주동은 지역 내 대표적인 아파트 밀집지역이다. 양산신도시 3단계 가운데 가장 먼저 완공된 1단계 지역인 양주동은 전체 1만2427가구 가운데 아파트만 11개 단지 1만1723가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다양한 아파트 문화가 형성돼 있다. 청어람아파트(1724가구)는 입주민들로 구성된 인터넷 카페모임으로 명성이 높다. 2005년 개설된 이 카페회원은 2689명에 달해 가구당 1.5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셈이다. 지난 2010년에는 11개 아파트입주자대표가 모여 양주동입주자대표회장협의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아파트 단지 간 관리기법 연구와 정보교환은 물론 행정기관에 대한 압력단의 역할을 위한 것이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단체는 주공4단지아파트 '호박넝쿨'이다. 이 아파트 주부들이 삭막한 아파트 문화를 정겨운 마을로 변화시키기 위해 결성한 마을공동체다. 시인 노천명의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내사 외롭지 않겠소…'라는 시 구절처럼 '호박넝쿨'은 소박하면서도 영글찬 삶을 추구하려는 엄마들의 열정이 모인 곳이다.

■'작지만 큰' 마을공동체

   
'호박넝쿨' 회원들이 1일 한 회원의 집에서 동화모임을 갖고 있다. 이민용 기자
호박넝쿨은 지난해 결성됐다. 아파트 내 유일한 아이들의 공간이었던 작은도서관이 폐관되면서 이를 아쉬워한 엄마들이 도서관을 대신할 모임을 만든 것이다. 부회장을 맡은 이미덕(여·38) 씨는 "도서관이 없어지면서 아쉬움도 컸지만 호박넝쿨이 결성되는 계기도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물론 아파트를 위해서도 다양한 일을 구상하고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 형태를 띠게 됐다"고 말했다.

회원은 모두 15명이다. 1248가구에 달하는 아파트단지 규모를 감안하면 초라한 구성원이다. 하지만 활동을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다양한 사업이, 정형화된 공동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앞으로 도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순기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이 공동체는 모든 행사와 사업을 회원에 국한하지 않는다. 아파트 공고를 통해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한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 읽기에서부터 들꽃·나무기행, 텃밭체험, 경로당 청소 등 다양한 일들이 회원 구성원과 상관없이 진행된다.

이 부회장은 "맞벌이 등 개인사정으로 회원참여가 어려운 이웃이 많아 아쉽지만 모든 행사를 회원 비회원 구분없이 진행하고 있어 참여율이 높다"며 "회원도 지난해 첫 결성 당시 3명이었는데 1년 만에 15명이 됐으니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전체가 공부방, 이웃이 선생님

작은 규모지만 호박넝쿨이 하는 일은 체계적이면서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독창적인 것은 아파트 단지 전체를 공부방과 학습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아파트 단지 화단이 교실이 되고, 전문가가 아닌 주민도 아이들에게 작은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다면 선생님과 강사로 모신다.

우선 동화모임 활동이 있다. 폐관된 도서관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회원들의 의지다. 이 모임은 한 달에 2번 모임을 가진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기에 앞서 엄마들이 작가와 동화의 배경, 줄거리 등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호박넝쿨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분기별로 이뤄지는 들꽃기행·나무기행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가르치기 위한 현장학습이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서 이뤄진다. 임덕희(35) 사무국장은 "규모가 큰 수목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선 우리 마을의 들꽃과 풀, 나무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추진했다"며 "강사는 아파트 단지에 공고를 통해 모집하고 있으며, 조경업무를 맡은 아저씨를 비롯해 많은 현직 선생님이 도움을 주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들꽃·나무기행은 단지 아이들이 주변의 꽃과 나무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이 강사로 나섬으로써 아이들은 이웃 어른들과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는 마을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는 점이다.


# 송명화 공동체 회장

- "주민의사에 반대 조직 보여지지 않을까 걱정…전용공간 없어 아쉬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을활동가라는 거창한 직함은 더더욱 어울리지 않습니다. 단지 아이들의 소중한 꿈을 키워줄 엄마의 역할과 마을의 역할에 작은 고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경남 양산시 주공4차아파트 마을공동체 '호박넝쿨' 송명화(여·41·사진) 회장은 여전히 회장이라는 직함이 낯설기만 하다. 지난해 호박넝쿨의 결성 자체가 힘겨운 과정이었기에 그의 말에는 조심성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주민투표로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이 폐관되면서 이를 반대했던 엄마들이 모여 호박넝쿨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민 다수가 원하는 시설도 만들어야 하지만 엄마들은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을 위한 고민도 해야 했다"는 그는 "지금도 호박넝쿨 회원들은 주민의사에 반대하는 조직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호박넝쿨은 마을 전체를 위한 활동에 팔을 걷어붙인다. 텃밭에서 일군 배추로 김장을 담가 이웃과 나누고, 정기적으로 경로당 청소도 하고, 회원 비회원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위한 행사에는 모두 참여하도록 독려도 한다.

이 같은 호박넝쿨의 활동이 해를 넘기면서 주민도 스스럼없이 현장체험학습에 아이를 맡기는 등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송 회장은 "자생적인 단체인 만큼 관청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고 바라지도 않지만 마을 주민의 울력이 큰 힘이 된다"며 "물품 기부는 물론 강사로 참여하는 등 재능기부도 많아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누리는 호박넝쿨이어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고민도 있다. "지금도 너무 행복하지만 그래도 작은 소망을 얘기하라면 호박넝쿨이 마을과 아이들을 위해 모여 놀고 의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호박넝쿨은 단지 내 전용공간이 없다. 회원들 개인 가정을 순번으로 돌며 각종 모임을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라는 한정된 공간 탓에 전용공간을 배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텃밭체험 인기

- 배추 등 정성들여 재배, 이웃 기부로 나눔 배워
- 올해 면적 60㎡로 넓혀

'호박넝쿨'은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많은 행사를 한다. 그 가운데 으뜸은 텃밭체험이다.

이 행사는 워낙 인기가 높아 회원이 아닌 부모와 자녀도 함께 참가할 정도다. 이 같은 호응 때문에 호박넝쿨 측은 지난해 양산시 상북면 홍룡폭포 인근에 임대료 10만 원을 주고 30㎡ 정도를 빌렸던 텃밭을 올해는 배인 60㎡로 넓혔다.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등 야채는 다시 이웃을 위한 기부로 이어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웃사랑을 배우게 된다. 이밖에 분기별로 진행되는 경로당 청소와 영화상영도 주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중심이라는 것도 호박넝쿨의 또 다른 특징이다. 흔한 인터넷 카페도 운영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서로 마주 보고 대화하는 모임을 강조한다. 회원 만을 위한 '수다방'이 대표적이다. 호박넝쿨은 한달에 한번 정도 반드시 얼굴을 맞대는 회원모임을 갖는다. 다과를 들며 일상 생활사 수다는 물론 가벼운 맘으로 사업계획을 구상하기도 한다.

임덕희 사무국장은 "호박넝쿨은 처음부터 틀에 갇힌 형식적인 모임보다는 자연스러운 마을 아낙네모임이었다"며 "호박넝쿨의 가장 큰 원동력은 엄마가 행복하고 아이가 행복하면 마을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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