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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4> 대학교 인문한국(HK) 연구단(하)-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지중해, 그 바다가 상실한 '균형'을 탐구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30 19:38:0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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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과 몰타대학교가 지난해 학술교류 협정식을 맺고 있다.
- 지중해 문화를 함께 만든
- 서유럽과 아랍은
- 전쟁과 친교, 적대와 환대를
- 이어가며 공존을 실현했다

- 국가간 '적대'가 팽배한 지금
- 그 옛날 지중해 문화의
- 균형감이 절실하다

지중해는 땅으로 둘러싸인 바다. 그리고 지중해를 둘러싼 땅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 4분의 3이 지중해에서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바다를 에워싸고 수많은 '이방인'이 모였으니 친교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지중해는 오래도록 문명 교류와 전쟁의 장이었다. 이 점에서 지중해 문명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이방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지중해 문명에서는 이방인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했다는 말이다.

■환대와 적대 사이

지중해지역원 연구원들이 워크숍을 하고 있는 모습.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무대도 아프리카 북단인 알제리.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마주한 곳이다. 이방인을 뜻하는 라틴어 호스티스(hostis)는 '손님'이면서도 '적' '원수'를 의미한다. 호스티스란 말에서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란 말이 갈라져 나왔다. 지중해문명은 이처럼 이방인이 손님이 될 수도, 적이 될 수도 있으며, 환대와 적대, 친교와 전쟁이 미묘한 경계에서 갈라진다고 본 것이다. 문득 작은 바다를 사이에 둔 한·중·일 관계가 떠오른다. 부산외국어대 지중해지역원을 찾았다.

지중해지역원은 국내 유일의 지중해지역 연구기관. '지중해지역의 문명 간 교류 유형 연구'를 주제로 2007년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 사업 중형연구소로 선정됐다. 윤용수 원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HK 연구 인력이 연구 책임자로 된 경우는 전국에서 금강대와 부산외국어대밖에 없다. 아랍어를 전공한 윤용수 원장. 외모가 아랍 스타일이란 말에 환하게 웃는다.

지중해지역원의 원장이 아랍 전문가란 점이 참신하다. 지중해라면 흔히 푸른 바다와 흰색 건물과 백인을 떠올리는 선입견이 있지만, 적어도 8세기부터 지중해 문명의 쌍두마차는 서유럽과 아랍 문명이었다. 그럼에도, 유럽 중심적 사고는 뿌리 깊다. 윤용수 원장은 몇 해 전에 겪은 일을 떠올린다. 유럽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과정에 아랍 문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논문을 발표하자 국내 연구자의 반발이 있었다는 것.

사실 16세기 이후 유럽은 대서양으로, 태평양으로 뻗어 가며 세계 곳곳의 이방인을 일방적으로 적대시하고 정복했다. 지중해 문명이 지니던 환대와 적대의 균형 감각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도 유럽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2차 세계대전 뒤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도 백색 유럽 중심적 사고를 반성하고, 다양성과 공존을 인정하는 사상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지중해 문명이 상실한 균형 감각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아닐지.

■스스로 이방인 되기

중세문헌학 전문가인 김정하 HK 교수는 프리드리히 2세를 상기한다. 13세기 초 시칠리아의 왕인 프리드리히 2세는 왕궁에서 아랍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 사람. 김 교수는 이렇게 다채로운 문화를 지닌 시칠리아가 16세기부터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균형 감각을 잃었다고 본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13세기 유럽 전역에는 아랍 학문과 문화가 대유행이었는데, 그것은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1096~1291) 과정에서 아랍 세계가 너무나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전쟁과 친교. 즉 환대와 적대의 공존을 통한 교류가 일어난 것이다.

고·중세 라틴어 전문가이자 고전학자인 장지연 HK 교수는 아랍의 '천일야화' 일부가 유럽에 들어와 재탄생하는 것도 이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 뒤로 '천일야화' 형식을 빌린 소설 '데카메론'이나 '캔터베리 이야기'는 유럽 문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전쟁 중에도 인간적, 문화적 환대의 마음을 닫지 않은 것이 결국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된 걸까. 고려가 요(遼)나라, 금(金)나라와 국교를 맺고 남송(南宋)과 단교하던 시절, 오히려 고려와 남송의 문화교류는 더욱 활발했고 동아시아 최고의 문명을 함께 발전시켰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이것은 흘러간 역사의 문제가 아닐 듯하다. 영화학 전문가인 박은지 HK 교수는 '지중해 영화' 강좌를 열었는데, 수강생이 이란 영화를 아주 좋아한단다. 한국의 우방인 미국이 이란을 적대시하는 가운데 한국과 이란의 문화적 환대는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문화는 이처럼 환대와 적대가 씨줄과 날줄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양탄자가 아닐지.

이지훈
어쩌면 지중해 연구의 메시지도 이런 것일 듯하다. 주변 나라가 충돌할수록 환대와 적대의 균형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한국이 이런 교량 역할을 해낸다면,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문화를 꽃피우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려면 자국 관점에서 주인 입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스스로 이방인이 되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면서도 아랍 의상을 입은 프리드리히 2세처럼. 법정에서 자신을 이방인으로 대해 달라고 요청한 소크라테스처럼. 지중해 여행을 통해 아랍 건축 요소를 도입한 르코르뷔지에처럼. 이제 동아시아 지중해는 좋은 주인 되기를 넘어 좋은 이방인 되기를 바라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 시칠리아- 지중해 문명의 교차로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까지 시칠리아를 영원히 소유한 나라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 이어 로마, 비잔틴제국, 아랍, 노르만족 등의 지배를 받았고, 19세기 전반까지는 스페인 지배를 받았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는 노르만의 프리드리히 2세 때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시칠리아 어느 곳을 가든 비잔틴, 이슬람, 노르만의 세 가지 양식이 결합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알카밀(오른쪽)과 악수하는 프리드리히 2세(왼쪽).
# 프리드리히 2세- 기독교의 이방인

프리드리히 2세(1194~1250)는 시칠리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인, 유대인과 어울리며, 유럽 고전과 이슬람 학문을 함께 연구했다. 십자군전쟁 시기 이슬람의 술탄 '알카밀'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 프리드리히는 이슬람을 이교도로 여기지 않았고, 알카밀과 아랍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됐다. 이 덕분에 프리드리히는 예루살렘의 왕으로 '무혈입성'했지만, 기독교 세계는 그를 이단으로 여겼다. 숨을 거둘 때 수의는 아랍 의상이었고, 소매에는 아랍어로 '친구여, 위대한 자여, 정직한 자여, 지혜로운 자여, 승리자여'라고 적었다. 영혼의 벗 '알카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 르코르뷔지에- 지중해 문화를 표현하는 건축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건축가이자 화가. 1911년 스스로 '동방 여행'으로 부른 지중해 여행을 떠난다. 프라하, 이스탄불, 그리스, 이탈리아 남부, 로마로 이어진 여행 끝에 새로운 건축을 시도한다. 특히 아랍 건축의 영향을 받아, 걸어 들어가는 가운데 건축 구조가 펼쳐지고 시선이 바뀌는 '건축적 산책로' 개념을 '사부아 주택'(the Villa Savoye, 1928~1931·사진)에서 처음 실현한다. 수직 아닌 수평의 공간 배치, 옆으로 긴 수평 창은 지중해 문명이 지닌 공존의 감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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