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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6> 민들레 누비

결혼이주여성들의 소통공간…수공예로 통영누비 전통 맥이어

  •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17 19:27:48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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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통영 서호시장 내 2층에 마련된 '민들레 누비' 공동체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이 열정을 다해 만든 누비 가방을 선보이고 있다.
◇즐겁게 일하며 향수병 달래

- 시집와서 스트레스 받던 여성들
- 통영 YWCA서 기술 전수 받아
- 공동작업장서 말못할 고민 나눠
- 손재주도 좋아 전국 각지서 인정

◇배움의 의지 한국인 못지 않아

- 현재 기술 전수자 20여 명 불과
- 젊은이들 떠난 자리 이들이 대신
- 세심한 바느질·화려한 색상 자랑
- 향후 혼수품 등 시장확대 계획도

지난 16일 오전 8시30분.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통영 전통시장인 서호시장 내 자리한 건물 2층에 결혼 이주여성들이 속속 모여 들었다. 국적도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 다양했다.

이들은 서로 안부 인사를 잠시 나눈 뒤 의자에 앉자마자 익숙한 솜씨로 재통틀 작업을 시작했다. '두르륵 두르륵' 바느질 소리가 쉼없이 이어진 가운데 진지하면서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곳 '민들레 누비'는 이들 결혼 이주여성들의 작업 공간이자 소통 공간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의 안식처

   
결혼이주여성들이 바쁜 손놀림으로 바느질 작업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2007년 한국으로 시집 온 쿡티탐(27) 씨는 지난해 민들레 누비와 인연을 맺은 후 하루 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집온 뒤 3명의 자녀를 낳고 키우느라 여태 바깥 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면서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요즘은 향수병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3명의 자녀를 어린이 집에 보낸 뒤에는 곧바로 이곳을 찾는다. 쿡티탐 씨는 "통영 누비 기술도 배우고 또 다국적의 결혼이주여성들과 가족처럼 지낼 수 있어 너무나 좋다"고 말했다.

2010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베트남 출신의 강한나(29) 씨는 평상시 말수가 적었지만 민들레 누비를 찾은 이후 성격도 활발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모두들 언니 동생처럼 지내고 있다. 일하는 것도 즐겁고 돈도 벌어 생계에 보탤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고 강조했다.

민들레 누비에는 10명의 결혼 이주여성과 누비 기술전수자 등 모두 14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재통틀을 통해 인연을 맺었지만 서로간의 고민도 허울없이 나눌 정도로 이제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다. 공간이 적어 더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작업장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한쪽에서는 원단을 자르고 또다른 쪽에서는 자른 원단을 바느질로 누비는 작업이 한창이다. 결혼 이주여성들이지만 손놀림이 여느 기술자와 다름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있다.

■이주여성들의 공동작업장

민들레 누비는 결혼 이주여성들의 공동체로 지난 2010년 문을 열었다. 통영 YWCA가 이주여성들을 상대로 한글교실을 운영하면서 이들 대다수가 취업을 희망하자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통영 누비기술을 가르친게 계기가 됐다.

당시 결혼 이주여성들이 주로 몸담은 직장은 굴까기 공장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새벽부터 굴까기 공장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같은 형편에서 통영의 전통 누비 기술 전수는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을 어린이 집으로 보낸 후에도 일이 가능해 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기초과정으로 일자 누빔 기술을 가르쳤고 20명이 수료한 후 한명씩 취업해 나갔다. 하지만 홀로 취업하다보니 적응이 힘들었다. 곧 그만두는 일이 잦아지자 생각 끝에 공동작업장을 운영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곳에서 누비제품을 만들어 외부에 선을 보이고 누비 판매처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그 결실로 통영 민들레 누비가 탄생하게 됐다. 공동체 이름은 척박한 도시 환경에서도 피어나 강인한 생명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민들레에서 따왔다. 민들레처럼 꽃씨를 퍼뜨려 주위로 확산시키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

초창기의 민들레 누비는 누비 일감을 받아와 작업했다. 그러다가 차츰 기술이 쌓이자 완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이들이 만드는 제품은 통영 누비 판매업소 3곳과 서울 인사동과 여의도 등 전국 각지로 팔려 나간다.

지난 2011년 민들레 누비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았다. 누비를 배워 자립하겠다는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통영 누비 전통잇는 공동체

통영 누비는 바느질이 촘촘하고 색상이 예쁘기로 이름나 있다. 전국에 유통되고 있는 누비 제품 대부분이 기계로 만든 것인 데 비해 통영 누비는 꼭 수공예를 고집한다. 손으로 누비는 것은 전국에서 유일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통영 누비이지만 젊은이들이 기술 전수를 꺼리면서 현재 남아 있는 통영 누비 전문가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들이 그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이들은 젊은 감각을 앞세워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고, 특유의 근성으로 바느질 또한 매우 촘촘해 오래 된 누비집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가방이나 소품 위주이지만 기술을 조금 더 쌓은 후 혼수품에도 도전하는 등 시장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민들레 누비 기술전수자 강금자(46) 씨는 "이들의 손재주가 한국 사람 못지 않은 데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하다"며 "대부분 귀화한 만큼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통영 누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들레 누비는 지역 내 중·고교생들을 상대로 다양한 누비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머지 않아 결혼 이주여성들이 누비의 본고장인 통영의 학생들을 상대로 누비 기술을 전수할 날도 멀지 않았다.

통영 YWCA 관계자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아직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만 앞으로 누비 기술자로서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잡아 나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 민들레 누비 강분애 대표

- "오랜 정성과 열정으로 세계 유명제품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

   
"결혼 이주여성들의 취업에 대한 어려움을 접하고 고민을 함께 한 끝에 통영 누비 교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민들레 누비' 강분애(49·사진) 대표는 이 곳에서 결혼 이주여성들의 맏언니이자, 인생 선배로 통한다. 그는 대학원 졸업 때도 이주여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평상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통영 YWCA 사무총장을 거쳐 민들레 누비 개장 때부터 이들과 늘 함께 하고 있다.

지금도 강 씨의 관심은 이주여성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경제력도 한결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데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결혼 이주여성들이 만든 제품이 어떻게 하면 누비 시장에서 우뚝 설수 있을까 하는 고심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강 씨는 "결혼 이주여성들이 만든 것이라 혹시 색안경을 낀 채 보지 않을까라는 기우도 있다. 하지만 제품을 대하고 나면 화려한 색상과 촘촘한 바느질에 놀라곤 한다"고 말했다.

민들레 누비에 대한 그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손공예를 고집하는 만큼 하나의 가방 제품을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과 혼을 불사르는 열정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 가방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강 씨는 통영 누비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섬세한 손 기술로 만들어지는 통영 누비는 색상이 아름답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정교하기로 유명하지만 아직 세계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민들레 누비가 한국을 뛰어 넘어 세계 시장에서 통영 누비를 알리는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며 "삼도수군통제영이 들어설 당시부터 성행해 400년이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통영 누비 제품을 세계 시장에 내놔 당당히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 바람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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