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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3> 대학교 인문한국(HK) 연구단(중)-한국해양대학교 '해양도시 문화교섭학' 연구단

세상을 잇는 항만, 그 자유와 탈경계의 문화를 연구한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4-16 20:13:4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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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로테르담 둘렌 콘서트홀 광장에 있는 크레인 모양 조명탑. 태양 움직임에 따라 탑도 움직인다.
예로부터 부산은 국제무역도시였다. 조선통신사와 왜관을 비롯해 국제교류가 끊이지 않았고, 바다와 낙동강을 연결하는 조운의 집·출하 도시였다. 1894년, 부산을 방문한 오스트리아인 헤세 바르텍은 이곳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에게도 정직하며, 바다와 강이 선박으로 가득 덮여 있다고 기록했다. 이처럼 항구도시는 이질적인 문화가 뒤섞이는 곳. 내륙 도시와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를 찾아갔다.

■바다는 소통과 상생의 장

   
한국해양대 HK 연구단은 매년 부산항 축제 기간에 '시민 선상 아카데미' 강좌를 운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누리는 연구소가 또 있을까. 국제해양문제연구소는 '해항(海港)도시 문화교섭학'을 주제로 2008년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 사업 중형연구소로 선정됐다. 5대 연구소장인 정문수 유럽학과 교수와 함께 13명의 젊은 연구원이 참여한다. 이 연구소는 2000년, 기존의 '해운' '해양문화' '사회과학' 등 3개 연구소를 합친 것이다. 문학비평가인 구모룡 교수가 3대 소장(2004~2005)을 지내며 '해양문화문고'를 펴내기도 했다.

사람은 흔히 부산 해안에는 항만이 있을 뿐이지 문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과연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이란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문수 소장은 항만과 문화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해항은 물자와 함께 지식 정보 문화가 뒤섞이며 생성하는 곳이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옛 가야의 김수로왕과 허황옥도 바다를 통해 만나지 않았던가. 정문수 소장은 바다가 '경계와 단절'의 장이 아닌 '소통과 상생'의 장이라고 강조한다.

바다를 입체적으로 보자. 해항이 바다로 열린 개방의 지점이라면, 해항과 해항을 잇는 바닷길은 선이며, 이 바닷길을 연결한 해역은 면이다. 그리고 해역은 국가 단위를 넘어선다. 몇 년 전부터 진행하는 '부산-후쿠오카 초광역 경제권' 구상을 떠올리게 한다.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이란 이처럼 국가 단위를 넘어 해역 단위에서 일어나는 문화생성, 전파, 접촉,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연구를 말한다.

독일 철학을 전공한 박민수 HK교수는 이때 해항도시가 '헤테로토피아'의 성격을 지닌 것 같다고 덧붙인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곳'을 뜻한다. 국가 통제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통제를 흔드는 일탈의 공간. 문득 푸코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배는 전형적인 헤테로토피아. 배가 없는 문명은 꿈이 사라진 문명. 정탐이 모험을 대신하고, 경찰이 해적을 대신한다."

■가장 부산스러운 연구소

   
지난 11일부터 나흘 동안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윌리엄 포사이스 무용단의 '헤테로토피아' 공연 장면.
중국 사상가 이지(李贄)와 중국 문학을 전공한 최낙민 HK교수. 명(明)나라가 세계 최고의 항구인 천주(泉州)를 닫고 해상활동을 막자 이곳 주민이 어쩔 수 없이 해적으로 바뀌는 과정을 상기한다. 배가 사라진 문명 속에서도 해항도시는 끝내 바다로 열린 삶을 살아가려 한다는 것. 당시 천주가 낳은 사상가 '이지'도 해항의 헤테로토피아를 꿈꿨던 게 아닐까.

조선정부도 초량왜관에 일본인을 가둬놓고 부산사람과 분리하려 했지만, 차츰 왜관에선 자유로운 민간 교류가 일어났고, 일종의 문화원 역할도 했다. 헤테로토피아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의 해항도시는 문화의 용광로였고, 새로운 예술 사상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것은 혹시 비행기가 없던 시대에나 통하던 얘기가 아닐지.

해양대 HK 연구단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다가 살아있는 한 해항은 살아있다는 것. 사실상 지구촌 80%가 바다로 이어지고, 아직도 세계무역 70%가 해상무역이다. 또 해항도시가 오랜 세월 쌓아온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즉 개방과 혼종에 관한 한 해항도시만큼 경험을 축적한 도시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 역사학자인 김승 HK교수는 해항도시 연구로 인류 미래를 읽어낼 수 있다고 본다. 해상 교류가 빚어낸 문화적 혼성과 탈(脫)경계는 현재 사회뿐 아니라 미래사회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지훈
국제해양문제연구소는 가장 '부산'스러운 연구소란 생각이 든다. 기존의 육지세계 관점이나 국가 관점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역동적인 세계상을 그려내니까. 현재 연구소는 부산항축제에 참여한다. 그런데 올해부터 부산은 상하이, 고베, 요코하마와 같은 항구도시와 함께 초광역 문화교류를 넓힌다. 또 2027년엔 북항 남항 일대에서 부산세계박람회를 열 계획이다. 박람회는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듯하다.


# 항만문화- 항만시설을 문화 아이콘으로

부산 해안에는 항만이 있을 뿐이지 문화가 없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부산문화를 형성한 주축은 바로 항만이 빚어낸 교류 개방 혼종의 문화, 즉 항만문화였다. 그러므로 차라리 부산 해안에는 항만문화가 있을 뿐이지 다른 해양문화가 풍성하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등대, 방파제, 컨테이너, 크레인, 물류창고와 같은 것이 항만문화의 아이콘이다. 부산은 이들을 산업시설로만 여기고 문화적 아이콘으로 여기지 않는데, 다른 나라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되살린다. 또 로테르담 둘렌 콘서트홀 광장에는 크레인 모양의 움직이는 조명탑이 있다. 항구도시 조형물을 세울 때 항만시설과 무관한 것만 세우는 우리와 비교된다.


#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혼돈과 자유의 공간

'다름'을 뜻하는 '헤테로'와 '장소'를 뜻하는 '토피아'를 합친 말. 미셸 푸코는 '다른 공간들'(1967)이란 강연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헤테로토피아는 일종의 이상향. 그러나 고전적 유토피아와는 달리 공통의 척도가 없는 다문화, 불협화음, 분산, 역설 등을 함축한다. '도떼기시장'과 같은 혼돈과 자유의 공간이라고 할까. 지난주 세계적인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무용단이 작품 '헤테로토피아'(2006)로 첫 내한 공연을 했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며, 격찬을 받았다. 헤테로토피아의 해항도시 부산도 이런 예술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 이지(李贄·1527~1602)- 해항도시의 사상가

호는 탁오(卓吾). 중국 명(明)나라의 양명학파 사상가이다. '중국 사상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항구도시 천주의 무역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교를 위선적 학문으로 여기며, 중앙정부의 비현실적인 정책을 비판했다. 금욕주의와 신분차별을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이슬람과 가톨릭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천주 출신의 해적 임도건(林道乾)을 옹호했는데, 그것은 해적 행위를 지지한다기보다는 중앙정부의 해금(海禁) 정책과 상공업 억압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탁오는 끝내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자신의 문집에 '분서'(焚書)란 제목을 붙였다. '태워버려야 할 책.' 그만큼 '위험한 책'이었다는 말이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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