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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4> 로사에서의 역사 나누기

"우리 역사 바로 알자" 초등생 엄마들 2년6개월 넘게 `열공`

  • 국제신문
  •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
  •  |  입력 : 2013-04-03 19:24:1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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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탐구하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주부들의 공동체인 '로사에서의 역사 나누기' 회원들이 3일 오전 모임공간인 로사 카페에서 학습한 내용을 토론하고 있다. 방종근 기자
◇울주군 범서읍 한 카페의 모임

- 매주 수요일 오전 주부 9명 모여
- 2시간동안 발표·토론 수업 진행
- "자녀 성적향상 아닌 역사관 인식"

◇초등학교 학부모 특강이 계기

- 사학 전공한 카페 주인이 강사로
- 수강생들 호평, 동아리 결성 제안
- 교재 끝나면 세계사 등 공부 의견

3일 오전 8시30분, 울산의 신 주거지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한 아파트(현대2차) 옆 모퉁이에 있는 작은 한 커피 전문점 카페 '로사'에는 아침부터 중년의 나이에 막 접어들었음직한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커피 전문점을 주부들이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좀 이른 시간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손에 무슨 책들을 들고 있다. 어떤 주부는 제법 많은 양의 프린트물까지 들고 카페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슨 수다를 아침부터 떨려고 저렇게 모이시나'하고 생각했는데 전혀 의외의 모습이 펼쳐졌다. 모두 긴 사각 테이블에 앉더니 한 사람이 가져온 프린트물을 돌리고는 곧바로 토론형식의 수업을 시작했다. 이 곳 구영리에 사는 주부 9명으로 구성된 역사를 배우는 공동체 '로사에서의 역사 나누기(이하 로사)' 정기 모임이 시작된 것이다. 7~8평에 불과한 카페 내부가 갑자기 공부열기로 뜨거워 졌다.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오전 8시30분만 되면 어김없이 이 곳에 모인다. 공동체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역사를 공부하는 주부들만의 모임이다. 남편과 자녀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내고 난 뒤 아침 드라마를 보거나 집안일을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이 곳에서 2시간여 동안 한국사를 공부한다.

   
로사 회원들의 학습장으로 사용되는 '로사 카페' 입구 모습.
평범한 가정주부들인 이들이 이른 시간에 한 데 모여서 공부를 하는 이유는 뭘까. 그 것도 주요 과목으로 치는 국·영·수도 아닌 역사를.

"자녀의 역사시험 성적을 잘 올리자는 게 아닙니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어야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고, 그러자면 먼저 엄마인 우리가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게 된 게 모임의 출발 입니다."(류미경·42)

수업 방식은 발표와 토론 위주로 전개된다. 회원들이 공통으로 채택한 서적(아!그렇구나 우리역사)을 매주 한 사람씩 소단원별로 나눠서 집중탐구한 뒤 모임 때 발표를 하고 나머지 회원들은 이를 듣고 토론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학습 방법은 회원들이 귀가해 자녀들을 가르칠 때도 적용된다.

"이곳에서 배운 역사 지식을 집에 가 단순한 암기식, 주입식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으로 전해주다 보니 아이가 자연스럽게 빠져들면서 공부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조민승·42) "엄마가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이런 것이 바로 '엄마표 수업' 아닐까요."(김성화·43)

회원들은 모두 구영리 명지초등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다. 로사 모임은 어느새 2년6개월 정도가 됐다. 탄생은 회원들의 자녀들이 4학년이던 지난 2010년 10월 어느 날 명지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모 특강이 계기가 됐다. 사학을 전공한 로사카페 주인이자 역시 학부모의 한 사람이었던 김형언(44) 주부가 강사로 나온 것이다. 당시 강의를 들어 본 학부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무 괜찮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나아가 "나도 우리 아이에게 직접 역사를 가르쳐 보고 싶다"며 동아리 결성을 서로 제안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다.

"처음엔 남편들이 '그저 그런 모임이려니' 하는 반응이더라구요. 그런데 갈수록 진지하게 공부를 하고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더니 이젠 '당신 공부하는 날이네' 하면서 적극 도와주고, 심지어 같이 공부를 하기도 해요."(김연이·41)

이날 수업의 발표자는 김영필(44) 주부. 발표할 내용은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였다.

"'을사보호조약'은 잘못된 표현 입니다. '을사늑약'이라고 해야지요. 왜일까요. 한·일간에 동등한 입장에서가 아닌 억지로 체결되었기 때문이지요." 라고 김영필 주부는 힘주어 강변했다. "맞습니다. '한·일 합방'이 아니라 '경술국치' '일본 강점기' 등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라고 김형언 주부가 거든다.

세월이 흘러 총 13권이나 되는 교재 가운데 어느새 마지막 권을 탐구하고 있다. 그래서 회원들은 이 교재가 끝나면 무엇을 배울까로 고민하고 있다. 세계사로 영역을 넓히자는 의견과 생활음악이나 미술을 배워보자는 안도 있다. 전공자도 있으니 아예 수학이나 영어도 가르쳐 볼까 하는 욕심 아닌 욕심도 내본다. 또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책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도 제기됐다.

하지만 어떤 것을 택하든 분명한 것은 이 뜻깊은 공동체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데는 회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구요. 모임을 통해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한은숙·43)


# 공동체 리더 김형언 씨

- "처음엔 걱정 많았지만 역사탐구 매력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 확인

   
우리역사를 공부하는 울산시 울주군 구영리 주부들의 공동체 '로사에서의 역사 나누기'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형언(사진) 씨는 회원들의 공부방 역할을 하고 있는 로사 카페의 주인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사학을 전공한 김 씨는 전공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한 때 울산시 시티투어 해설사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울주 구영리에 살면서 전공과 무관하게 커피 전문점을 하게 됐지만 동네 주부들과 로사 모임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갈수록 역사를 탐구하는 매력에 빠져드는 저 자신과 회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카페와 모임 명칭 '로사(Rosa)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스페인어로 장미를 뜻하면서 페루의 성녀 '로사'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독실한 카톨릭 신도인 자신의 세례명이 로사이기도 하다. '카페(Cafe)' 또한 만남의 공간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다소 손님이 들기에 이른 시간 조그만 이 카페는 회원들의 학습장으로 딱이다.

김 씨는 회원들이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고 부족하거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으면 전공했던 지식을 풀어 보충설명을 해 준다.

회원 최현애(42) 씨는 "우리같은 주부들이 자칫 소홀하기 쉬운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며 "덕분에 이젠 가계부 하나도 쉽게 버리지 못할 정도로 기록과 역사를 대한 인식과 태도가 달라지더라"고 동기 부여를 해준 김 씨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 씨는 "역사의 세세하고 어려운 점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이를 아이들에게 손쉽게 전달해 주는 데 학습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항상 열린 마음으로 교재를 읽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더욱 더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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