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하춘석 씨가 불 탄 자신의 집 앞에서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방종근 기자

- 구획정리지구사업 지정따라
- 능곡마을 이재민 보상 막막
- 울주군 재산피해 40억 집계

"1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수리한 지 1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집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는데, 당장 신축은커녕 철거조차 할 수 없으니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지난 9일 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과 상북면 일원에서 발생한 산불로 100여 ㎡ 규모의 단독주택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은 하춘석(60·언양읍 송대리) 씨의 하소연이다. 하 씨는 이날 갑작스럽게 닥친 화마로 아무것도 챙겨나오지 못한 채 급하게 가족과 함께 몸만 빠져 나왔다. 피해는 입었지만 그래도 피해보상 대책이 마련되면 새로 집을 지어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해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다. 산불피해 주민들을 위해 금융권에서 저리로 융자도 해주고, 지자체가 세금을 면제해 주는가 하면 건축협회에서 집 신축 설계도 무료로 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화마가 덮쳤던 울산 울주군 언양읍 신화리 야산에 20일 원추리 싹이 검은 지표를 뚫고 올라와 있다. 새 생명의 힘찬 몸짓이 시련을 딛고 일어서려는 이재민들의 의지를 나타내는 듯하다. 이진우 프리랜서

그런데 막상 피해보상과 이주대책 등을 알아본 하 씨는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송대리 능곡마을이 구획정리사업지구에 포함돼 있어 도시개발법상 건물 신축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공무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하 씨는 불에 타 흉물스럽게 변한 주택 앞에 군이 제공한 임시주택에서 살아야 할 판이다. 그나마 임시주택도 1년 시한부로 제공되기 때문에 이후에는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처지다. 또 구획정리조합 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불 탄 집을 당장 철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 씨와 같은 입장에 처한 이재민이 이 마을에만 3가구나 된다. 또 일부 피해가구는 집이 건축물 관리대장에 등재돼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현재 대부분 친척이나 지인의 집을 전전하고 있다. 건물 신축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마저 받을 길이 없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울주군이 집계한 이번 산불 피해액은 총 40억5400만 원이다. 280㏊의 산림 소실에 20가구 전소(5가구 반소), 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축사와 창고 등 23동의 농축산시설이 불타고 개, 닭 등 1500여 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산불이 난 지 열흘째나 됐지만 본격적인 복구작업은 시작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피해 산출을 위해 화재현장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더딜 수밖에 없다.

울주군은 최근 산불 피해보상을 위해 예비비를 포함, 7억 원의 예산을 마련하고 특별조례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군은 전소 가구는 900만 원, 반소 가구는 450만 원씩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군의회는 20일 산불피해 주민의 납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산불 피해자 울산광역시 울주군 군세 감면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산불로 주택 및 축사 피해를 당한 이의 2013년도분 주택 및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의 재산세, 이재민 주민세(개인 균등분), 자동차세를 100% 감면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한 복구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언양읍 평리 이하우(53) 씨는 이번 산불로 150여 ㎡의 견사와 사육 중이던 개 300마리 가운데 150여 마리를 잃었다. 풍산개와 코리아 마스티프 등 값비싼 혈통견이 대부분이여서 피해액을 산출하기 조차 어렵다. 게다가 살아남은 개들도 연기를 마셔 향후를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개 사육은 보험조차 안돼 고수란히 피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

이 씨는 "워낙 갑작스럽게 화마가 닥쳐 수 년동안 종자를 개량하며 애지중지 키워온 개들을 그대로 두고 아내와 몸만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당장 쓸 생활비도 없고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만 최소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