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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1> 대연우암공동체

30년 전부터 모인 빈민들, 주택 강제철거 아픔 딛고 주거문제 해결 똘똘 뭉쳐

  •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
  •  |   입력 : 2013-03-13 20:07:07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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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우암공동체 주민들이 환한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적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해 공동체의 안정적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무허가 건물 짓고 살기 시작

- 국유지에 마을 일궈… 현재 130명 거주
- 부지 사들인 부산외대와 오랜 갈등
- 캠퍼스 이전 후 토지 공동매입 추진

◇官 지원 없는 주민주도형 공동체

- 주말마다 청소 등 자발적 공동작업
- 수련회·마을잔치 등 열어 情 쌓아
- 마을회관은 식당·노래방 등 변신

"쉬는 날에도 일하면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마을이 발전한다는 생각에 나와서 일손을 돕는 거지예." 지난 3일 오전 부산 남구 대연우암공동체를 찾았다. 이날 주민 20여 명은 산 비탈면에 흘러내리는 토사를 방지하기 위해 축대를 쌓고 있었다. 봄바람이 다소 쌀쌀하게 불었지만 주민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피었다. 이처럼 주말마다 주민이 모여 마을 공동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민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 평일에는 땀 흘려 일하고 휴일에는 자발적으로 나와 마을 작업을 돕는다. 이 때문에 무리해서 작업하지 않는다. 일요일 오전에 모여 2, 3시간 정도 일한 뒤 함께 점심을 먹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한다. 원래 이곳은 쓰레기 천지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주민의 노력으로 길을 넓히고 나무를 심었다. 이제는 다른 지역 사람이 공동체를 구경하러 올 정도로 탈바꿈했다. 채소를 기르는 작은 텃밭과 멋들어진 흰색 울타리도 주민의 땀이 깃든 작품이다.

■철거의 아픔을 이겨낸 마을공동체 

   
대연우암공동체 주민들이 일요일인 지난 3일 마을 환경미화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김동하 기자
대연우암공동체의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은 일명 철탑마을로 불린다. 송전탑이 마을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다. 철탑은 현재 사라졌다. 이곳은 남구 대연4동과 우암1동 일대를 걸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130여 명(총 53세대)의 주민이 살고 있다. 평균 나이는 65세. 손이헌 대연우암공동체 집행위원장은 철탑마을 주민의 공통점을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것 없고 못 배우고 빽이 없다." 손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가난한 사람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야산 자락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도는 물론 전기,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었다. 토지는 1988년까지 국유지였다. 1988년 이후 부산외국어대학으로 소유권이 이전됐고, 일부 토지는 국유지로 남아 있다. 

그러던 와중 주민에게 시련이 닥쳤다. 1990년 10월 26일 13세대가 강제 철거를 당했다. 주민은 똘똘 뭉쳐 일주일 동안 부산외대에서 밤샘농성을 벌였다. 같은 해 11월 3일 철거된 곳에 다시 집을 짓기로 하고 현재까지 흘러오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을부지를 소유한 부산외대가 내년 남산동 캠퍼스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김광남 대연우암공동체 공동대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외대 토지를 공동매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철거 위협 없이 살 수 있도록 관계 전문가가 모여 대화할 창구가 마련되도록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공동체의 주인은 주민

"공동체는 사람 아닙니까." 손 집행위원장은 마을공동체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그는 "당장 주거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지만 주민이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자신의 집을 지키자'는 생존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공동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견이 다른 주민끼리 부딪히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발언권을 주고 툭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문제를 극복했다. 대연우암공동체는 매월 15, 30일 주민총회를 가진다. 매월 넷째 주에는 대청소를 한다. 매일 회관과 마을 주변 방범활동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총 6개 반을 만들어 반 모임을 통해 주민은 반장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각 반장은 주민총회에서 의견을 나눈다. 수련회, 워크숍, 마을잔치 등 주민끼리 끈끈한 정을 쌓는다. 주민은 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이고 제삿날은 언제인지까지 알고 있다. 손 집행위원장은 "우리 주민은 모르면 배운다"며 "주민운동에 관한 이야기 많이 하는데 나이 많은 분은 이론보다 행동으로 직접 실천한다"고 말했다. 세대별로 월 1만 원의 회비도 걷는다.

대연우암공동체는 주민주도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활동가가 마을 속으로 들어가 형성되는 대부분의 공동체와는 다르다. 손 집행위원장은 "관변단체장을 교육하고 마을센터를 짓는다고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민이 주인이 돼야 한다"며 "만약 주체가 공무원이 된다면 마을센터는 일종의 관공서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대연우암공동체는 기초자치단체 등의 지원이 전혀 없지만 주민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주민의 행복지수는 74.8%에 달한다. 전국적으로 이러한 공동체는 보기 드물다. 이옥순(여·75) 씨는 "30년째 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 공동체니까 서로 힘이 된다"며 "자식이 아파트로 이사 오라고 해도 뿌리친다. 서로 형님 동생 하며 '밥 묵었소, 술 한잔 하이소' 말할 수 있는 공동체가 좋다"고 말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마을회관 

마을회관은 주민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식당, 노래방, 회의장 등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대연우암공동체를 견학하기 위해 서울, 부산 등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공동체의 원칙이 있다. 외부 손님으로부터 돈을 절대 받지 않는다. 대신 주민이 직접 지은 밥을 대접한다. 견학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일명 '작은 밥상 공동체'라고 부른다. 한국 사람들은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는 생각에서다. 또 마을회관 안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했다. TV 화면 옆 스피커에는 유리테이프가 붙어있다. 노래점수 100점을 받은 사람이 이곳에 만 원씩 붙인다. 밥값 대신 기분 좋게 돈을 내고 가는 셈이다. 공용 냉장고에 있는 술은 돈을 주고 산다. 벽면에는 화이트보드 여러 개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빌딩청소를 하는 주민이 보험회사 등 사무실에서 버린 물건을 주워온 것이다. 화이트보드에는 '2600원, 외상 먹습니다' 등 주민의 외상값이나 일정이 적혀 있다. 마을회관에 새 물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주민이 주워오거나 뚝딱뚝딱 만들어낸 물건들이다. 마을회관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화목난로도 건설현장 폐자재로 만들었다. 

마을회관 뒤편에는 작은 고물상을 옮겨놓은 듯했다. 술병, 플라스틱, 장판 등을 모아놨다. 또 주택 옥상에서나 봄 직한 파란색 물탱크가 놓여있다. 물탱크 안에는 헌 옷이 가득 찼다. 또 폐지를 모아놓는 마을창고도 있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종이상자가 가득 차면 고물상에 판다. 모든 돈은 차곡차곡 모아 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


# 손이헌 집행위원장 제안

- "토지·주택 공동소유 조합, 빈민 주거정책 대안 될 것"

   
손이헌 씨
"집 없는 설움은 당해본 사람만 알지예. 주민 스스로 주거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합니다."

지난달 '대연우암 공동체의 꿈'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마을주민이 30여 년간 울고 웃은 흔적이자 기록물이다. 181쪽으로 구성된 책은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주민의 생생한 목소리가 녹아 있다. 이들은 철거 위협 없이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기 위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주민은 책을 통해 '대연우암공동체 자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계획을 제안했다. 사업의 큰 틀은 '대연우암 사회적주택협동조합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들이 협동조합을 꾸리기로 한 것은 공동체의 안정적인 주거공간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 사회적주택협동조합을 구성해 토지, 주택 소유를 공동체가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주민이 3000여㎡의 토지를 공시지가에 사들여 협동조합형으로 주거공동시설과 공동생산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사회적주택협동조합이 실현되면 도시빈민을 위한 대안적 주거정책의 모범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려면 토지주인인 부산외국어대학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를 놓고 '바위에 달걀 부딪치기'라며 콧방귀를 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주민은 분명 의미 있는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망의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 올해 마을점포를 개업할 예정이다. 음식 솜씨가 좋은 주민을 주축으로 국숫집을 운영해 수익금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단 500원이라도 이윤이 생기면 더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주민을 돕는다는 것이 주민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일주일에 한 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초청해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한다는 야무진 계획도 세웠다. 손이헌 집행위원장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며 "최종적으로 주민과 부대끼며 사람 냄새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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