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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4-5> 부산 중구 스토리텔링- 팩션 - 용두산 엘레지

사랑의 열병도, 이별의 아픔도…그곳에선 박꽃처럼 어여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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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용두산공원 내 '사랑의 자물쇠 존'에 나붙어 있는 사랑의 쪽지들.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글들은 머잖아 추억의 땔감이 된다.
둘은 용두산으로 올라갔다
"오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 다음은 우째되노"
"보고프면 또 만나겠지…그기 사랑 아이가"
성재의 술기운과 순이의 살내음이 맞부딪혔다

그날 이후 순이는 떠났다
항구엔 늘 만남과 이별이 준비돼 있었다
성재는 '엘레지'가 순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가고 나만 혼자 쓸쓸히도~"


1. 부산항구 제2부두

   
사진은 가수 고봉산이 1964년 발표한 '용두산 엘레지' 앨범. 국제신문 DB
1957년 꽃잎이 난분분하던 늦은 봄날. 고봉산(본명 김민우)은 부산 중구 우남공원(현 용두산 공원)을 숨가쁘게 오르고 있었다. 한발 두발 일백구십사계단-.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공원에 오르자 눈앞에 부산 앞바다가 펼쳐졌다. 뿌웅~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뱃고동이 길게 울려 퍼졌다.

"어떻게 그런 배신을 할 수 있어. 그 동안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 이 노래를 연습했는데, 다른 가수에게 음반 취입을 시키다니…."

고봉산이 연습한 곡은 이재호 작사·작곡의 '울어라 기타줄'이었다. 그런데 지방공연에 매달려 있는 사이 그 곡이 인기 가수 손인호에게 넘어갔다. 고봉산은 울분을 재우며 다짐했다. "작곡을 못해 생긴 일인데 누가 누구를 탓일 것인가. 작곡을 해야 해. 내곡을 만드는거야!"(작사가 정두수의 글 '가요 따라 삼천리'에서 일부 인용)

그날 이후, 고봉산은 피아노와 씨름을 하며 작곡에 몰두한다. 그러면서 부산을 왔다 갔다 하며 항구의 정서를 익히고 노래를 만든다. 당시 부산은 6·25 전란을 겪고 팔도민이 모여들어 삶을 재건하던 도시였다. 가요계에선 부산에서 뜨면 전국에서 뜬다는 말이 돌았다. 1961년 고봉산은 마침내 출세의 길을 여는 히트곡 하나를 발표한다.

'무역선 오고 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 죄 많은 마도로스 항구가 무정더라/ 닻줄을 감으면은 기적이 울고/ 뱃머리 돌리면은 사랑이 운다/ 아아아- 항구의 아가씨/울리고 떠나가는 버리고 떠나가는/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김진경 작사, 고봉산 작곡·노래 '아메리칸 마도로스' 1절)

뉘라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것인가. 항구의 사랑과 이별을 절묘하게 녹인 이 노래 덕분에 '부산항구 제2부두'는 두고두고 '추억의 처소'가 되었다. 노래 가사 중 '닻줄을 감으려니 기적이 울고, 뱃머리 돌리려니 사랑이 운다'는 대목은 절창이다. 항구의 아가씨를 울리고 떠나는 마도로스가 차마 무정하지만, 그마저 항구의 일임에랴.


2. 추억의 용두산

1927년 황해도 연백 출신으로 6·25때 남하한 고봉산은 악극단 등을 따라다니며 가수의 꿈을 키워 끝내 꿈을 이룬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한 여자를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졌고 쓰라린 이별을 맛 봤다. 그리고 다시 찾은 용두산-. 항구를 굽어보며 7년 전의 쓰라린 경험을 반추하던 그는 옛 사랑을 찾듯 용두산을 호명한다.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말자~'. 그때 악상 한줄이 뇌리에 꽂혔다.

1964년 아세아 레코드사 최치수 사장이 용두산을 다룬 가사를 건네자 고봉산은 가슴에 갈무리해둔 곡을 끄집어낸다. 이것이 '용두산 엘레지'(일명 '추억의 용두산')다. 곡이 완성되자 고봉산은 죽어라 연습했다. 용두산에 올라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노래를 불렀고, 뱃고동에 맞춰 소리를 내질렀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발 올려 맹세하고 두발 디뎌 언약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 가고/ 나만 혼자 쓸쓸히도 그 시절 못 잊어/ 아- 못 잊어 운다'.(1절)

노래는 히트했다. 이후 '용두산 엘레지'는 나훈아, 최정자, 하춘화, 주현미 등 내로라는 가수들이 한번쯤 부르는 명곡이 되었다. 용두산에 추억 한올 사랑 한줌이라도 묻은 사람은 이 노래를 더욱 잊지 못한다. 사랑 하다 실연한 청춘들은 아픔을 달래기 위해 부르고, 고향 떠나 삶이 힘겨운 사람들은 추억을 헤집으며 이 노래를 부른다. '용두산 엘레지'는 이처럼 5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끝없이 레코딩 되고 있다.


3. 사랑의 꽃시계

"순아, 손 좀 줘 봐라!"

"뭔 소리고, 미칫나? 저기 사람들 보는데…."

"와? 저 사람들이 밥 미기준다카더나."

"오빠야, 와 이라노. 자꾸 거카마 내 간대이."

"간다꼬? 어데로? 가기 전에 영도다리에 빠잣뿐다 마."

순이는 고분고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웃자란 잡초처럼 거칠기는 해도 속내는 다정다감 했다. 반반하고 수더분한 얼굴에서 촌티가 묻어났지만, 그게 풋풋한 매력이기도 했다. 순이는 박꽃처럼 이뻤다.

둘의 데이트는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 만났을 때 둘은 광복동 옛 미화당 뒤쪽의 '사랑의 구름다리'를 통해 용두산으로 올라갔다. 성재가 앞장 서고 순이가 뒤따라 걸었다. 구름다리를 지나며 성재가 로프를 흔들었다. 순이는 안절부절 못하고 성재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다가온 순이에게서 봄풀 같은 향기가 풍겼다.

사학과 출신인 성재는 연전 친구의 소개로 순이를 만났다. 두 번 만나면서 살짝 정이 들었고 자연스레 말을 놓았다. 그리고 세 번째 데이트. 둘은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광복로에서 일백구십사계단을 이용해 용두산을 올랐다. 그리고 약속한 듯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이긴 사람이 한 계단씩 오르기로 했다. 한 계단 두 계단 멀어졌다가 가까워졌고, 살이 맞닿을 듯 다가왔다가는 어느 순간 멀찌감치 떨어졌다. 사랑의 줄다리기는 순이가 열 계단 쯤 먼저 올라가면서 싱겁게 끝났다. 계단 마루에서 순이가 이를 드러내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공원에 오르자마자 성재는 작심한 듯 순이의 손목을 잡았다. 순이는 못이긴 척 손목을 내주었다. 짜릿한 전율이 손끝을 타고 전신을 휘감았다. 가슴이 저며왔다. 성재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고봉산의 '용두산 엘레지'였다.

"오빠, 와 그런 슬픈 노래를 부르노?"

"애이불비(哀而不悲)라 안 카더나. 슬퍼도 슬픈 노래가 아닌기라. 용두산 불후의 히트곡이니까!"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 다음은 우째되노…."

"헤어졌다 보고프면 또 만나겠지. 그기 사랑 아이가."

둘은 부산타워 주변을 한바퀴 돌아나와 꽃시계 앞에 멈췄다. 1972년 설치된 용두산 꽃시계는 직경 5m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초침이 달린 시계였다. 피고 지는 계절의 꽃처럼 꽃시계도 쉼없이 돌아갔다.

"오빠, 저 시계가 멈췄으면 좋것제."

"멈추면 안 되지, 사랑의 꽃시곈데. 저 시간 속에 니가 있고 내가 있다."

밤이 이슥해지자, 성재는 순이의 손을 잡고 광복동 고갈비 골목으로 갔다. 지글지글 고갈비가 굽혔고 막걸리 잔이 오갔다. 그날 밤 성재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순이를 부축해 여인숙으로 데려갔다. 성재의 술 기운과 순이의 살 내음이 맞부딪혔다. 세상의 모든 시간을 해방시키는 처녀의 향기가 후룩 끼쳐왔다. 성재는 내년 봄쯤 순이를 신부로 맞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순이를 여인숙에 고이 뉘인 성재는 혼자 자갈치 쪽으로 빠져나와 밤바다를 보며 야릇한 심사를 달랬다. 휘영청 밝은 달이 밤바다에 은파를 드리웠다.


4. 부산 갈매기

그날 이후 순이는 성재 곁을 떠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풍문으로 떠돈 소문은 순이가 다른 직장을 찾아 부산은 떠났다는 것 정도였다. 성재는 호되게 한방을 얻어맞은 듯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졌다. '엘레지'가 순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레지는 슬프고 비감한 사랑 노래다. 항구도시는 늘 새로운 만남을 잉태하지만, 만남과 함께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청춘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사랑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워서 닥쳐오는 불행한 예감들을 가리고 지워버린다. 1980년 초반의 용두산은 성재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하고 솜사탕이 녹듯 사라져버렸다. 성재는 가끔씩 친구들과 사직 야구장을 찾아가 맹렬하게 '부산 갈매기'를 합창했다.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벌써 나를 잊었나'(김중순 작사 작곡, 문성재 노래 '부산 갈매기' 1절)

노래를 부를 때면 가끔씩 순이가 어른거렸다. 노래 속에 등장하는 순이는 부산으로 날아들어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 버린 철새를 닮은 것 같았다. 부산은 그렇게 사람을 받아들이고, 정을 나누어 주고, 못다 베푼 사랑을 아쉬워한다.

성재는 대학을 졸업해 역사교사가 되었고, 어느새 오십 초반의 고개를 넘고 있었다. 주말이면 용두산에서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며 소시민의 행복을 찾았다. 그날도 성재는 여느 때처럼 외지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앗, 쟤가 누구지?'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아니 낯선 그 얼굴. 여자는 공원 울타리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 존(zone)'과 그곳에 전시된 연서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랑의 자물쇠 존'은 부산시설공단에서 청춘 프러포즈 행사를 진행하며 설치한 이벤트 공간이었다. 울타리에는 '용두산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프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성재의 눈에 들어온 여자의 옆 모습은 분명 순이였다.

"혹시, 저를…. 모르시…."

"누구시죠?"

"아, 미안…."

성재는 가늘게 신음하며 뒤로 물러섰다. 울근불근, 고요한 심장이 갑자기 세차게 박동쳤다. 오랫동안 갈망한 이루지못한 로망이, 골난 사랑의 그림자가 문득 성재 앞에 나타났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아찔한 상념을 끌어안고 성재는 '사랑의 자물쇠 존' 위에 설치된 대형 하트를 바라보았다. 하트 속에 순이가 박꽃처럼 맑게 웃고 있었다.


# 용두산 유래와 변천사

- 근현대사 압축, 추억·영욕의 공간
- 고유명칭 둘러싸고 日침략풍수설 논란도

   
용두산공원 부산타워와 꽃시계 전경. 사진 제공=박희진 사진가
부산 중구 용두산(龍頭山)은 근·현대사가 압축된 공간이자 추억의 관광 명소다. 그런 만큼 갖은 영욕을 겪었다.

용두산은 조선시대에 초량소산(草梁小山), 송현산(松峴山)으로 일컬어졌고, 1876년 부산항 개항 후에는 '소산(小山 )' '중산(中山)' 등으로 불렸다. 용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78년 일본 자료인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서다. 그후 1899년 산정에 신사를 크게 지어 '용두산신사'라 칭하면서 용두산이란 이름이 통용됐다.

개항 후 일제는 초량왜관 일대를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꾸고,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는다. 그리고 1916년 용두산 일대 1만2000여 평을 공원 용지로 책정하고 시설을 늘린다. 그후 용두산은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공원으로 불렸고, 1960년 4·19혁명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됐다.

용두산 이름을 둘러싼 쟁점 중 하나는 일제의 대륙침략 풍수설 여부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일제가 한반도를 집어삼킬 요량으로 지세를 본따 용두산과 용미산(옛 시청 자리)이라 칭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적잖은 향토사학자들이 지지하는 설이라고 주장했다.

원로작가 최해군 씨는 "용두산은 왼쪽에 좌청룡의 용당·용호동이 동쪽을 지키고, 서쪽은 천마산, 장군반도가 웅크렸으며(우백호), 북쪽은 구봉산이 거북 형상으로 엎드렸고(북현무), 남으로는 영도 봉래산이 바다로 뻗친(남주작) 명당"이라며 그만큼 탐을 낼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

반면, 부산민학회 주경업 회장은 "일본에는 용 문화가 없고 이를 대륙침략 풍수로 연결시킬만한 문헌적 근거도 빈약하다"면서 무리한 해석을 경계했다.

용두산 변천사를 연구해 온 한국해양대 김승(국제해양문제연구소) 교수는 "용두목, 용머리, 용소 등이 말하듯 용 문화는 원래 한국에 있던 것"이라며 "개항 후 일본인들이 용두산이란 이름을 처음 쓴 것은 맞지만, 단선적으로 대륙침략 풍수로 규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용두산은 이름 자체가 이미 역사가 된 만큼 이런저런 다양한 해석을 허용해 자체 콘텐츠를 풍성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중구,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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