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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적에 붙잡혔다 풀려난 뒤 첫 설을 맞는 제미니호 일등항해사 이건일(왼쪽) 씨와 부인 김정숙 씨가 8일 손자들을 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진우 프리랜서 |
"자꾸 눈물이 납니다. 설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게 꿈만 같아요. 가족이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새삼 느껴집니다."
지난해 12월 소말리아 해적에 석방된 후 첫 설을 맞이하는 제미니호 일등항해사 이건일(64·부산 부산진구 연지동) 씨는 8일 외가를 찾은 손자들의 재롱에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는 "떨어져 있던 2년 동안 손자들이 몰라보게 자랐다. 다시는 이 아이들이 성장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제미니호에 승선했던 이 씨는 다른 한국인 선원 3명과 함께 2011년 4월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다가 1년 7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 씨 등이 억류됐던 기간은 582일, 한국인 피랍 사상 가장 긴 시간이었다.
더욱이 이 씨는 지난해 설을 소말리아 해적들 사이에서 보냈다. 모든 물건을 빼앗기고 날짜도, 시간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피랍된 선원들끼리 서로 날짜를 맞춰가며 설을 맞이했다. 당장 다음 날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도 해가 바뀐다는 설렘에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는 '용의 해'였다. 마침 딸이 용띠라서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주문을 걸었다"며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 보니 정말 석방이 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설 명절을 쇠러 대전에서 친정을 찾은 딸 지윤(37) 씨는 "어제(7일) 부산역으로 아버지가 마중나와 주셨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하면서 달려가서 안기는 모습을 보면서 손자를 맞이하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마침 이날은 부인 김정숙(60) 씨의 생일. 오후에는 아들 수현(34) 씨 내외가 점심을 준비해 온 가족이 함께했다. 김 씨는 "며느리가 아침도 먹지 말고 오라고 할 정도로 진수성찬이어서 황홀했다"며 "남편이 없을 때는 생일, 명절 챙기는 것도 늘 미안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행사를 보내게 돼 정말 좋다"고 말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고 있는 이 씨는 이제 배를 타지 않고 소중한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이 씨는 "그동안 배를 타면서 아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적도 많았다. 이제는 같이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 간에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