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고 최강서 씨의 부인 이선화 씨가 휴대전화를 통해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진우 프리랜서

- 일거리 줄고 차입금 늘면서
- 이자 못내 유동성 위험수위
- 작년 말 신용등급까지 하락
- 지역 협력업체들도 피 말려

- 올들어 20여척 수주 가시화
- 노사 분규로 성사 장담 못해
- "이번 기회 놓치면 모두 끝장"

지역 경제계가 한진중공업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신규 수주가 2008년 9월 이후 무려 4년 가까이 한 건도 없는 가운데 노조의 '시신 시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1937년 문을 연 후 부산 기업들의 맏형 역할을 하며 부산경제 발전을 이끌어왔다. 영도조선소의 위축은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협력업체에 영향을 미쳐 부산경제 전체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수주 악화로 유동성 확충 시급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 있는 한진중공업은 지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향토기업이다.

조선업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규 수주실적이 부진해졌다. 특히 한진중공업은 2008년 이후 대규모 노사 분규라는 악재를 만나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일감은 줄고 차입금은 늘면서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2008년 3조8480억 원에서 2011년 2조3160억 원으로 3년 만에 40%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 1~3분기에는 1조3539억 원을 기록, 매출액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연결기준 한진중공업의 순차입금(할인포함)은 3조518억 원을 기록했다. 또 지난해 12월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는 한진중공업의 등급을 종전 'A'에서 'A-'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경영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한진중공업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1800억 원 규모의 유산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모처럼 수주 훈풍에 또다시 악재

이처럼 한진중공업의 재무구조가 악화한 근본적인 원인은 조선부문의 수주 가뭄이다. 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의 수주 물량 부족에 대해 노사 화합의 장을 마련하지 못해 선주사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5월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인 수빅조선소의 수주 실패를 봐도 알 수 있다. 수빅조선소는 당시 유럽 소재 선주사로부터 5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10척(옵션 5척 포함)을 수주하기로 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진중공업은 척당 45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었고 업계에서는 수익이 남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회사 측은 노조의 장기 파업 후유증으로 일감 확보 차원에서 저가 수주를 감행했다. 하지만 노사 분규가 심각해지면서 유럽 선주는 '납기일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본계약을 끝내 하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노사 문제가 잠시 타결되면서 올 들어 한진중공업 선박수주에 훈풍이 불고 있었다. 회사 측이 전 세계 해운사와 선주사를 대상으로 수주전에 적극 나서면서 영도조선소 건조분을 포함해 20피트 컨테이너 7000개를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선과 중형급 가스선, 해양지원선 등 최대 20여 척을 수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한진중공업 대표노조가 적극적으로 수주지원에 나서면서 선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한진중공업지회와 극한 마찰을 빚자 4년여 만의 수주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김상욱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모처럼 영도조선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신규 수주에 악영향을 줄까 두렵다"며 "다시 일하고 싶다는 노조원들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勞 '해고' 使 '파업' 트라우마가 극한대립 불러

- 勞 "툭하면 노동자 구조조정…이번엔 생존 위해 결사 투쟁"
- 使 "한번 양보하면 계속 요구…더는 물러나지 않겠다" 강경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리를 버릴 수 있는 회사다. 생존이 걸린 일인데 투쟁을 안 할 수 있겠나." "파업이라면 치가 떨린다. 같이 살자는 건지 죽자는 건지, 회사 꼴이 말이 아니다."

한진중 노사는 오랜 시간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일해 왔다는 한 노동자는 그동안 투쟁과 파업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일반 시민들은 이해하기 힘든, 시신을 두고 벌이는 노사 간의 줄다리기도 한진중 종사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이번 '시신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금속노조 한진중지회 간부 최강서 씨는 2010년 정리해고 대상자였다. 사측과의 투쟁 끝에 지난해 11월 복직이 됐지만 출근 첫날 유급휴업 대상자가 됐다. 금속노조 측은 사측이 지회를 상대로 낸 158억 원의 손해배상소송과 노조사무실 퇴거 요청이 또다시 그를 회사 밖으로 쫓아내려는 듯한 압박감을 줬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노조원은 "어떻게 회사를 믿고 일할 수 있겠나. 다시는 사측이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해고시킬 수 없도록 투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측은 2011년 복직투쟁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 희망버스 등으로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장기화되고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돼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고 결국 사측이 정리해고자 복귀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 번 양보하면 노조 측이 끝없는 요구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김진숙 지도위원 때도 보지 않았나. 한 번 물러서면 영락없이 끌려다니게 된다. 장기화되지 않도록 회사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노사 양측이 이 같은 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철상 상무 인터뷰

- "영도조선소 폐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 "선주 신뢰 잃어가 안타까워, 노조와 언제든 대화할 용의"

	노조와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정철상 상무.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장기 파업 이후 다시 파이팅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사태로 다시 암울해졌습니다."

한진중공업 정철상 상무는 회사가 경영상 절박한 상황에 처한 만큼 이번 사태가 장기화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진중공업은 장기간의 노조 파업으로 해외 선주들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그동안 영도조선소 대신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수주 물량을 할당한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 상무는 "현대중공업(250만 평)과 삼성중공업(100만 평)이 대규모 부지가 있는데 반해 영도조선소(8만 평)는 협소해 대형선박 수주가 불가능하다"며 "대신 고부가가치를 거둘 수 있는 쇄빙선과 DSV(다목적 심해특수작업선) 등 특수목적선을 수주하는 곳으로 전략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 측이 주장하고 있는 영도조선소 폐쇄는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박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선기자재 업체가 필수적인데 수빅에는 그런 곳이 없다"며 "상식적으로 부산을 떠나 조선사업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정 상무는 '시신'과 함께 시위를 하는 농성자들의 행동은 인간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용납받지 못한다며 언제든 대화할 의지가 있으니 협상장으로 나와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