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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4> 비평의 토대

고석규가 뿌린 '실존경험'의 씨앗, 김준오'담론이론'이 꽃피우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1-29 19:14:0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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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비평은 고석규를 태두로 김준오를 거쳐 두 사람의 터전 위에서 수많은 비평가가 파생했다.
◇폐허의 극복 고석규

- 부산대 입학 후 천재적 재능
- 1957년 '시인의 역설'로 등장
- 시인 실존-작품속 역설 대비
- 석사논문 발표 후 27세 급서

◇모더니스트 김준오

- 동일성 시론 화두로 새 지평
- 담론이론으로 문예학 확장
- 현대시 변화·다양성에 관심
- 끊임없는 시 읽기… 열린 비평

부산지역 비평의 뿌리는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현금의 부산지역 비평이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가지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실상에 있어 부산의 비평은 시대의 변화와 내외의 요인을 만나면서 파도처럼 요동쳐 왔다. 그럼에도 그 밑자리를 만든 이들을 뿌리라 비유한다면 단연 고석규와 김준오가 떠오른다. 고석규가 해방과 6·25전쟁으로 겪은 실존의 경험이 부산의 근대성과 맞닿게 되었다면 김준오는 이러한 근대성의 인식과 더불어 이를 넘어서려는 비평적 모험을 전개했다.


■고석규

부산으로 이주한 고석규는 전시 하의 대신동 소재 부산대에 입학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표출한다. 일찍 문재를 드러낸 그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인 이는 소설가 김정한이다. 그런데 그의 시쓰기는 지속되지 않는다. 고석규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독서 능력의 소유자이다. 대학생으로 P. 풀끼에의 '실존주의', 'T. S. 엘리어트의 인간적 경위' 등을 번역했다. 김재섭과 만든 '초극'을 통해 그는 '돌의 사상' '해바라기와 인간병' '여백의 존재성' '서정주 언어서설'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등 다섯 편을 발표한다. 학부 졸업논문은 '문체의 방향'이다.

이러한 고석규가 공식적인 문단에 혜성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것은 1957년. 그는 1950년대를 대표할 만한 평론 '시인의 역설'을 '문학예술'에 연재한다. 이 글을 통해 김소월, 이육사, 이상, 윤동주를 역설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는 개별 시인의 실존과 그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역설을 대비시키고 이를 통해 정신의 높이를 가늠한다. 고석규에게 1957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였다. '시인의 역설'을 연재하면서 4월 결혼을 하게 된다. 같은 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이듬해 3월 수료하자 은사인 김정한 교수의 도움으로 부산대에 출강하게 된다. 그가 쓴 석사학위 논문은 '시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밤'이라는 문학행사를 다녀온 그 이튿날인 4월 19일 지병인 심장병으로 급서하게 된다. 27세의 안타까운 청년 고석규는 자기 시대를 증언하고 사라졌다.


■김준오

   
1991년 창간된 '오늘의 문예비평'의 창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행사. 국제신문DB
고석규에서 발원한 부산의 비평이 다시 개화하는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당시 부산대에서 교편을 잡은 김광규, 김중하, 김천혜, 김치수의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김준오에 의해 고석규를 넘어서는 지평이 개진된다. 김준오 비평의 출발은 현상학이다. 한스 마이어홉의 'Time in Literature'를 '문학과 시간현상학'이라는 표제로 번역하였 듯이 현상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세계상실에 대응하는 의식의 확실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김준오는 마이어홉의 자아관을 통하여 세계의 혼란에 맞선 자아의 확실성을 찾았던 것이다.

자아와 동일성의 문제는 김준오 비평의 화두였다. 그의 비평이 구체적인 저술로 드러난 것이 '동일성의 시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론'이다. 여기서 동일성은 변화와 갈등 그리고 소외라는 근대적 삶의 위기 국면의 부정과 관련된다. 모더니즘의 미적 근대성이야말로 동일성을 지향하는 시적 부정의 한 형태이다. 김준오가 기존 동일성 체계를 해체하는 입장을 갖게 되는 계기는 장르론에 관한 관심에서 생긴다. 폴 헤르나디의 'Beyond Genre'를 번역한 것은 1983년이다. 헤르나디의 기술시학의 경험은 동일성 시론이 지닌 규범적 성격에 대한 자기비판이 되었다. 특히 담론 이론은 그가 이론틀을 수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시를 담론의 한 형식으로 보게 됨으로써 시에서 화자와 시점, 인간상이 주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자아의 문제 또한 사회적 자아의 문제로 확장된다. 장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서로 공들여 쓴 '한국현대장르비평론'은 그의 문예학적 관심이 얼마나 확장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론'이 4판의 수정을 거듭한 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그의 태도와 관련된다. 현대시의 변화와 다양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시론 체계를 수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시읽기의 과정으로도 나타난다. '도시시와 해체시'와 '현대시의 환유성과 메타성'은 현장비평에서 보인 비평적 성과를 잘 드러내 보인다. 변화와 다양성을 기술하고 있는 두 권의 평론집에서 동일성의 원리는 거의 차이성의 원리로 대체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왜 담론의 관점을 '시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시를 새롭게 조명하는 한도'에서 적용하려는 것일까. 시가 담론적 실천이라면 '시적인 것'에 대한 모든 정의는 역사적으로 가변적인 담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결국 해석의 문제이다. 그가 지속적으로 시의 새로운 유형의 목록을 부가하는 것은 새로운 분류학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담론 지형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시적 담론의 유형들을 기술하겠다는 것이다. 서술시, 표층시, 환유시, 패러디시, 메타시 등은 김준오가 새롭게 파악한 시적 담론의 유형이다. 김준오의 비평은 이처럼 열린 체계를 지녔다. 이 점에서 그의 비평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구모룡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 '끓는 가마솥' 부산은 비평도시

- 6·25전후 실존분석·근대성 토대
- 후속세대 활동, 서울에 안 뒤져

고석규의 비평이 전후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일이다. 6·25전쟁 때 부산은 특수한 지방이기보다 비록 한시적이나마 보편의 가치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적 상황에서 고석규 문학은 정위된다. 그는 폐허에서 새로운 생성의 영토를 만들고자 하였다. 윤동주 등으로부터 세계에 대한 부정을 통해 역설적 자기 인식에 이르는 방법을 터득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실존의 기투에 주력한다.

고석규의 실존적 정신분석을 넘어서 시론과 문예학을 정립한 이가 김준오다. 그는 변화하는 문학의 관습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근대성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려 했다. 변화는 근대성의 핵심이다. 변화를 중시하는 그는 확실히 모더니스트이다. 근대의 경험은 "단단한 것은 모두 녹아 날아간다"는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확실히 근대는 안정을 모르는 젊은이의 속성을 지녔다. 이러한 청춘으로서의 근대 경험은 루카치의 문제적 개인을 상기하게 한다. 언제나 찾아가야 하는 이로서의 문제적 개인. 김준오의 비평은 이러한 '근대성의 경험'에 충실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입장이 부산지역 비평의 전통이 되었다.

'끓는 가마솥'으로 비유될 수 있는 부산은 비평의 도시다. 문화자산이 집중된 서울에 비하더라도 부산의 비평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는 해양도시 부산의 특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91년에 창간된 '오늘의 문예비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도록 발간되고 있는 비평전문계간지이다. 올해로 23주년에 접어든 이 잡지는 부산지역 비평의 위상을 가늠하게 한다. 더군다나 후속세대들이 '해석과 판단'이라는 비평동인지를 내고 있으니 부산지역 비평의 활력은 여전하다. 남송우(부경대 교수·부산문화재단 대표), 황국명(인제대 교수), 민병욱(부산대 교수), 구모룡(한국해양대 교수), 김경복(경남대 교수), 하상일(동의대 교수), 허정(동아대 교수) 등은 고석규, 김준오가 만든 터전 위에서 다채로운 비평의 화원을 형성해 왔다. 여기다 최근 권명아를 위시해 전성욱, 윤인로 같은 참시한 비평정신들이 개입해 부산지역의 비평은 새로운 기운으로 도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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