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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묻어나는 '매축지마을 할머니 이야기' 출간

70, 80대 어르신 7명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 그림책으로 출간

유년시절의 추억, 서러웠던 60여년 인생살이 실타래처럼 풀어내

  • 국제신문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3-01-24 09: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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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빈곤의 섬'이라고 불리는 부산 동구 범일5동 매축지마을에 오랜만에 할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어 멀리멀리 울려퍼졌다.

 1월 23일 오전 매축지마을 사랑방인 〈마실〉에는 20여 명의 동네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매축지마을 할머니들이 70, 80평생 살아온 고단한 삶을 서툰 그림솜씨와 투박한 글재주로 표현한 '매축지마을 할머니이야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것이다.

 매축지마을에 자리잡은 사랑방 〈마실〉이 주최하고, 부산문화재단과 문화독해운동/지식나눔공동체인 〈이마고〉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공동저자'로 참여한 칠순을 넘긴 할머니 7명을 비롯해 마을 주민, 이들 할머니의 창작활동을 도운 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황정미 〈이마고〉 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출판기념회의 하이라이트는 책의 '공동저자'이자 주인공인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작품 내용을 직접 소개하고 읽는 코너였다.

 '매축지마을 할머니이야기'의 공동저자들이 털어놓은 한결같은 이야기는 "매축지마을에 와 어느듯 40, 50년. 그 인생이 참 스럽지만 인정많은 매축지마을에서 남은 인생을 즐겁게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것이었다.

 복술이(77) 할머니는 매축지마을에서 멀리 안창마을까지 빨랫감을 머리에 이고 가서 빨래하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장순현(83) 할머니는 시집와서 학수고대하는 아들을 못낳고 딸만 다섯 낳았다 친정으로 쫓겨갔던 60여년전 이야기를 하다 감정에 북받친듯 연신 눈물을 훔쳤다.

 최고령 저자인 김태식(87) 할머니는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살다 해방과 함께 귀국해 온갖 죽을 고생을 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조귀(75) 할머니는 맞선도 한 번 안 보고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을 어제 일처럼 소개했다. 유인애(80) 할머니는 스무살때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고향 남해를 떠나 매축지마을에 정착해 지금까지 이어진 고단한 삶이 '징그럽지만 이젠 내 삶의 옷감이 되어 나를 감싸고 있다'고 말했다.

 김만금(74) 할머니는 처녀시절 동네 친구들과 십자수를 놓으며 수다를 떨고 쌀로 떡을 만들어 먹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50년 세월이 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

 이책의 저자 중 유일한 남성인 이수봉(76) 할아버지는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와 함께 새끼로 짚신을 삼던 일, 시골 뒷동산으로 소를 먹이러 다녔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드듬고 있었다.

 책은 A4용지 절반 크기에 35페이지 분량의 문고판 형태지만 크기와 분량을 뛰어넘는 의미가 이 책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사랑방 〈마실〉과 〈이마고〉가 할머니들의 그림책 출간을 시작한 계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매축지마을과 할머니들을 보듬겠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부산의 대표적 빈곤지역인 매축지마을 할머니들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기획된 것이다.

 황정미 〈이마고〉 회장은 "작년 5월 이마을에 들어오니 할머니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것 같아 이들 할머니들의 마음을 열고 싶어 단순하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할머니들과 살아오신 이야기를 나누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할머니들이 활동가들의 진솔한 경청 태도에 조금씩 조금씩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한 번 말문이 트이게 되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굴곡지고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실타래 풀듯 풀어냈다.

 한 두가지 이상은 마음의 응어리와 상처를 마음속 깊이깊이 간직한 채 누구에게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삶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할머니들은 이내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생활에도 활력이 넘쳤다.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는 할머니들.
 이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러보내기 아까워 삶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작년 5월 시작됐다. 할머니들의 노력과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여덟달 만에 마침내 책 출간이라는 꽃을 피운 것이다.

 매축지 마을 사랑방인 〈마실〉의 운영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있는 동구쪽방상담소장인 안하원 목사는 "어른신들이 작은 이야기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그림과 책으로 남겼다"면서 "할머니들이 지난 8개월 동안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은 할머니들은 물론 우리모두에게 소중한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들 매축지마을 할머니들은 이번 책 출간에 만족하지 않는다. 올해는 손자 손녀뻘인 매축지마을 어린이들과 공동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시집도 펴낼 당찬 계획을 갖고 있다.

 2013년 할머니들의 새로운 도전은 매축지마을을 가난하지만 인정많고 살기좋은 마을로 탈바꿈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란 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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