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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2> 실천하는 인문학- (상)백산 안희제와 먼구름 한형석

공동체 교육과 문화예술의 힘으로 '국제도시' 위상 이끌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1-15 19:53:18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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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안희제 선생이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은 부산 동광동 '백산상회'.
# 안희제 "자력을 중심으로… "

- 1907년 부산 구명학교 시작
- 장학재단 설립… 인재 유학
- 교육·산업정책 개선 주도
- "교육민주화, 사회발전 동력"

# 한형석 "우리 힘으로 세우자"

- 한국 최초 어린이 전용극장
- 1953년 설립… 야학교 겸용
- 영화 등으로 전쟁상처 치유
- 부산서 자발적인 문화운동


◇백산 안희제

   
한형석 선생이 생전에 부산 서구 부민동에서 자유아동극장을 세우는 모습. 한 선생은 이 사진에 친필로 "우리 힘으로 세우자!"란 글귀를 썼다.
부산은 '변방'이 아니라 '첨단'이었다. 초량왜관과 개항의 도시인 부산은 세계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였다. 이런 흐름 속에 백산 안희제가 있었다. 금테안경에 콧수염을 기른 신사. 그러나 변장술에 뛰어나 행동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총독부조차 정체불명 인물로 봤다는 독립운동가. 그의 활동 범위는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상하이, 일본, 만주를 아우른다.

■교육 민주화

백산은 열성적인 교육자였다. 3·1운동 뒤로 국내 독립운동은 기업 설립과 대중교육을 연결한 '문화운동'을 펼쳤는데, 백산은 부산이 전국에서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백산은 나라 안팎에 학교를 세웠고, 부산에는 1907년 기업인 윤상은과 함께 구명학교(현 구포초등학교)를 세웠다. 또 '기미육영회'(1919)란 장학재단을 부산에 세운다. 해마다 인재 10명을 해외유학 보내는 것이 기본 목표였다.

설립 취지문은 "사회와 문화의 발전을 촉진하려면 청년 교육,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고, 이것은 빈부 갈등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 교육 기회를 넓히는 '교육 민주화'가 경제 양극화를 줄이고 사회·문화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거쳐 동아대 대학원장(1959)을 지낸 안호상, 내무부와 국방부 장관을 거쳐 한국해양대 학장을 지낸 신성모 등이 기미육영회 지원으로 유학을 갔다.

■시민 인문학의 기반 마련

같은 해 백산은 지역 자본가들과 함께 '부산예월회'를 만든다. 오늘날 '경제인연합회'와 '문화재단'의 성격을 겸하며, 교육과 산업 분야의 정책 개선을 이끌었다. 곧이어 백산은 '부산청년회' 결성을 돕는다. 부산청년회는 지역 발전과 문화운동을 결합한 시민단체로 영어교육을 비롯한 대중강좌와 운동회 형식의 문화축제를 열었다. 이처럼 백산은 민간 차원에서 부산 인문학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1943년,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과 옥살이 끝에 죽음을 맞이한 백산은 단정히 일어나 앉아 세계정세를 물어본다. 그리고 아들을 바라보며 "동포의 고난을 네 고난으로" 여길 것, 또 집안일이든 나랏일이든 "자력(自力)을 중심으로" 할 것을 당부한다. 이렇게 국제적인 시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 또 지역 공동체의 삶을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과 협동으로 꾸려가는 정신. 백산은 정녕 부산 인문학의 사표(師表)이다.


◇먼구름 한형석

1953년 6월 20일. 부산 서구 부민동 산비탈에 예닐곱 장정들이 땀을 흘리며, 목재로 된 벽을 세우고 있다. 먼구름 한형석과 뜻을 같이한 이들이 한국 최초의 어린이 전용극장이자 야학교를 세우는 모습이다. 이 날 사진 위에 먼구름은 "우리 힘으로 세우자!"란 글귀를 힘 있게 적었다. 백산 안희제가 말한 자력 정신이 또 한 번 꽃피는 순간이다.

■치유 인문학의 효시

백산이 개항도시 부산, 그것도 중구 원도심의 상징이라면, 먼구름은 집안 대대로 동래구 복천동에서 살아온 동래 토박이. 백산이 민족경제와 교육의 힘으로 공동체를 구하려 했다면, 먼구름은 문화예술의 힘으로 공동체를 살리고, 치유하려 했다. 먼구름은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오페라 '아리랑'으로, 또 한국전쟁의 상처를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으로 이겨내려 했다. 치유 인문학의 선례이자 모범이다.

자유아동극장과 색동야학원은 사실 같은 것. 하나의 공간이 낮에는 극장이고, 밤에는 학교였다. 또한 내용도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이때 '영화'란 매체의 역할이 컸다. 먼구름은 영화에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찾았다. 영화 한 편이 "백 권의 독서보다 빠른 효과"를 거두며, "아동의 지식 계몽과 정서 육성에 발휘할 기능의 범위는 광대"하다고 봤다.

■영화 인문학의 효시

   
이지훈
참으로 '영화 인문학'의 효시가 아닐까. 먼구름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영화 '낙동강'(1952)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향토문화연구회'란 인문 단체와 '경남도청'의 민관 협치가 빚어낸 결실이다. '향토문화연구회'는 먼구름을 비롯해 화가 우신출, 사진작가 김재문, 문학가 이은상, 음악가 윤이상, 금수현 등이 만든 단체. 당시 경남도 문화계장인 우신출이 협업의 다리를 놓았다.

먼구름의 치유 인문학에는 중국 대륙에서 겪은 다양한 사상과 국제적 경험이 배어있다. "우리 힘으로 세우자!"란 글귀는 시민의 자발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공동체 회복의 이상을 표현한다. 이것은 현재 부산 인문학의 이상이기도 하다. 또 먼구름이 생각한 영화 인문학. 그리고 영화 '낙동강'이 담은 지역 콘텐츠와 민관 협치는 부산 인문학의 길을 보여준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변방'이라고? … '첨단'이었던 부산

1888년 겨울,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조선을 종단한 프랑스인이 있었다. 그 이름은 샤를 바라(Charles Varat). 부산 관아에서 두 명의 관리가 찾아와 차라도 마시자며 그를 초대했다. 다음 날 차 대접을 받으러 간 바라는 깜짝 놀란다. 아예 유럽식으로 그를 맞이할 뿐 아니라, 샴페인까지 내놓은 것이었다.

전국 최초(1876년)의 개항도시인 부산은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문화가 교차하는 국제도시였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한국인 최초로 해외 개인전을 연 화가는? 바로 초량 지역의 화가인 기산(箕山) 김준근이다. 1894년 파리, 1895년 함부르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해외 유명 박물관 18곳에 있는 작품 수가 1500점이 넘는다. 이런 도시가 '변방'이라니. 오히려 '첨단'도시가 아니었을까.


*안희제(1885~1943)

   
의령 출신 기업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호는 백산(白山). 서울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간도, 러시아, 중국을 방문해 안창호, 신채호 등과 민족의 미래를 구상한다. 부산 동광동에 '백산상회'(1913)를 세워, 국내외 독립운동 자금 조달과 연락을 맡는다. 또 협동조합운동을 벌이고, 월간지 '자력'(自力)을 펴내는데, 자력 정신은 그의 일관된 구국사상이다. 1939년부터 만주에서 대종교 서적을 발간한다. 인문학 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안호상(1902~1999)

   
의령 출신 철학자, 역사학자, 독립운동가. 기미육영회 지원으로 독일로 유학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대 문교부 장관으로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세웠다.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일민출판사'를 만들어 저서 세 권을 펴냈다. '한겨레' 의식을 바탕으로 평등, 민주, 통일을 추구하는 일민주의(一民主義) 토대를 만들었다.


*한형석(1910~1996)

   
동래 출신 예술가, 독립운동가. 호는 먼구름. '예술구국'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부산 최초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한흥교를 따라 중국에서 자라며, 상하이 '신화예술대'를 졸업한다.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압록강행진곡' 등 수많은 독립군가와 서정가곡을 짓고, 한국 최초 오페라 '아리랑'(1940)을 발표한다. 부산 최초 국립극장인 '문화극장'(1950) 등을 세우고, 문화예술 교육에 이바지한다. 부산대 중문과 교수를 지냈다. 모택동의 부인 강청(江靑), 장개석을 비롯한 대만정부 수립 인사들과 교류한 국제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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