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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1> 프롤로그-키워드로 읽는 부산 인문학사

관부연락선에서 백년어서원까지…한국 근·현대 인문학 산파역

  •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  |   입력 : 2013-01-06 20:57:39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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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지식과 문화의 교류 통로 역할을 했던 관부연락선.
# 관부연락선

- 韓日 지식·문화 이동 통로로

# 다방 '밀다원'

- 6·25 때 피란 예술인 아지트

# 전시연합대학

- 철학·역사학회 등 창립 모태

# 양서협동조합

-시민 밀착 인문학운동 모델

부산 인문학의 전통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삶의 문제에 천착해 대안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실존적이고, 실천적이다. 개항, 식민지, 전쟁, 군사독재, 수도권 집중, 신자유주의 같은 현대사의 질곡을 변방에서 치열하게 경험한 부산의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이런 부산의 인문학적 뿌리가 세계인문학포럼을 2년 연속 개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근대 100여 년의 부산 인문학사를 키워드로 짚어봤다.

■관부연락선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시모노세키(하관)와 부산항을 잇는 관부연락선을 1905년 취항했다. 이 배는 한일 자본과 노동력은 물론 지식과 문화가 이동하는 통로였다. 이에 따라 항공편이 전혀 없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부산은 국토의 끝이 아니라 서양 문화를 수입하는 창구로 위상이 격상됐다. 지금도 중구 보수동 책방 골목과 남포동에는 일본 사상서를 파는 서점이 남아 있다. 가수 남인수가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끌려가는 강제징용자를 소재로 '울며 헤어진 부산항'을 부르며 아픈 역사를 달래기도 했다.

모더니스트 정지용과 김기림은 관부연락선에서 현해탄을 바라보며 시를 남긴다. 관부연락선은 '현해탄 콤플렉스'와 '짚베개 콤플렉스'를 낳는다.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양의 모더니즘을 비판 없이 이식하는 현해탄 콤플렉스와 우리의 전통적인 정신사를 지켜야 한다는 짚베개 콤플렉스가 대칭점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밀다원 다방

"마음은 드디어/견딜/수 없는가."

소설가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 시대'(1955년)에 나오는 작중인물 박운삼이 자살 직전에 쓴 유서 내용이다. 이 소설은 1950년대 초 6·25전쟁 시절 부산에 피란 온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중구 광복동 밀다원 다방을 소재로 피란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당시 중구 광복동, 남포동 일대에 성업 중인 다방 20여 곳 중 유독 밀다원을 예술가가 많이 찾은 까닭은 밀다원 바로 아래층에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문총)가 있어서다. 이 다방에서 작곡가 윤용하는 시인 박화목을 만나 가곡 '보리밭'을 만들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은 이 다방 구석에 앉아 유명한 은박지 그림을 그렸다. 밀다원은 절망에 빠진 피란 예술인에게는 안식처였다. 전란기에 '부산 문화, 문단=한국 문화, 문단'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다.

■전시연합대학

   
6·25전쟁 당시 서울대를 포함한 서울 지역 10개 대학이 모여 전시연합대학 형태로 교양과목 수업을 하던 부산의 극장 '부민관' 전경. 국제신문DB·김동철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 제공
전쟁으로 정상적인 대학 수업이 곤란해지자 문교부는 부산에 전시연합대학을 설립했다. 1·4후퇴 이후 1951년 2월 19일 지금의 롯데백화점 광복점 맞은편 극장 '부민관'에서 전시연합대학 개교식이 열렸다. 차철욱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전시연합대학에 서울대, 고려대, 국학대, 한국대, 국민대, 신흥대, 단국대, 세브란스의과대, 숙명여대, 서울여자의과대 등 10개 대학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수강생은 4268명. 교양과목은 부민관에서 합동으로 진행하고, 전공과목은 대학별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시연합대학에 참여하는 대학이 교사를 독자적으로 마련해 운영하면서 1952년 3월 30일 폐지됐다.

대한철학회 전신인 한국칸트학회를 비롯한 주요 학회도 부산에서 태동했다. 이현주 임시수도기념관장은 "전란 중 전국의 대학교수와 학자가 부산에 모이면서 한국경제학회, 한국역사학회, 한국교육학회, 한국물리학회 등이 자연스럽게 부산에서 창립했다"고 말했다.

■통섭·시민 밀착형 인문학운동

   
일본 사상서를 파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의 서점. 박수현 기자
부산양서협동조합은 1978년 4월 김형기 목사가 중심이 되어 시민끼리 좋은 책을 나눠 읽으며 세상을 바꿔보자는 취지로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결성됐다. 1979년 부마항쟁 직후 신군부에 의해 해산될 당시 조합원이 600여 명에 이르렀다.

부산양서조합은 전국 양서협동조합운동의 모델이 되는 등 군사독재 시절 시민 밀착형 인문학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협동조합법에 따라 문화예술 분야 협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선구적인 모델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김영민 철학박사, 구모룡 문학박사, 강선학 미술평론가, 이지훈 철학박사가 1996년 문학·사학·철학과 미술을 아우르는 한국인문학회를 결성해 기존 학회나 대학의 틀을 뛰어넘어 인문학 담론을 시민과 나눴다. 부산대 곽차섭 사학과 교수, 강명관 한문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1995년 부산대 인문학담론 모임이 꾸려져 전공의 벽을 허물고 통섭을 시도해 주목받았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백년어서원, 인디고서원, 빈빈, 공간 초록, 나락한알 같은 시민 친화형 인문학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 부산의 인문학자

- 김정한 이주홍 한형석 등이 선구자 역할

부산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인문학자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 묘비 비문은 두 사람의 문학적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요산 비석에는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은 아니다'(단편 '산거족' 중에서)라고 적혀 있다. 향파는 비문에서 '작품은 곧 발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일 뿐이다.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몸부림인 것이거나,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이거나, 필경에 발언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해변' 후기에서)고 했다. 요산은 1970·80년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5·7문학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결성을 주도하며 현실에 적극 참여했다.

인문학사 속 중요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북에서 태어나 전쟁의 쓰라림을 체험하며 낯선 땅 부산에서 실존주의 비평을 개척하다가 27세에 요절한 천재 문학평론가 고석규,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초현실주의 시를 쓰며 부산의 모더니즘 계열 시의 토대를 닦은 조향이 그렇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을 작곡한 먼구름 한형석은 1953년 한국 최초의 청소년문화예술교육 전문극장 자유아동극장과 부산 최초의 야학인 색동야학원을 서구 토성동에 설립했다. 영화 감상과 인문학 교육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영화 인문학의 효시다.

금당 최규용은 한평생 차의 선인과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금당 다화'라는 책으로 우리 다문화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차 인문학'을 정립했다. 강이문은 독학으로 독보적인 무용평론가에 오른 인물. 1957년 부산무용가협회를 결성하고, 1963년 한성여대(현 경성대) 체육과에 무용이론 교수로 부임했으며, 1979년 부산 최초로 개설된 부산여대(현 신라대) 무용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자문위원

▷구모룡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일래 (부산대 사회학 강사·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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