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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자성대 서문의 '남요인후'
비석. 남녘 변방 땅의 목구멍이란 뜻이다. |
부산의 인문학이 꽃피고 있다. 인류가 처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유네스코 주최 세계인문학포럼이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동아시아의 한국, 그것도 지방인 부산에서 2011년과 지난해 2년 연속 개최됐다. 이유는 뭘까.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를 반성하고, 변방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상아탑을 벗어나 삶의 문제를 성찰하는 백년어서원, 부산희망대학, 인디고서원 같은 부산발 시민주도형 인문학운동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신문은 경제적 양극화의 위기 속에서 찾아온 인문학 부흥의 기회를 잡기 위해 부산 인문학의 뿌리와 현장을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부산은 일찌감치 지리적 특성으로 인문학이 융성했다. 경부선의 종점인 '막다른 끝'이면서도 동시에 바다와 맞닿아 새로운 문화를 접촉하는 창구였다. 부산 동구 자성대 서문에는 '남요인후(南徼咽喉)'라고 새겨 진 비석이 있다. 남녘 변방 땅의 목구멍이란 뜻이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는 "부산이 사람으로 치면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고 숨을 쉬는 목숨 줄과 같다"고 설명했다.
1876년 개항을 거쳐 일제 강점기 서양 근대문명은 부산을 통해 들어왔다. 한국의 지식인이 1905년 취항한 관부연락선을 타고 대한해협을 오가며 일역판 카뮈, 릴케를 통해 서양철학과 문학을 받아들이면서 인문학이 싹텄다. 부산은 6·25전쟁 임시수도를 거치면서 근대 미학의 두 축인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했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이 리얼리즘 문학의 대부로 자리 잡았다. 조향을 필두로 부산에서 모더니즘 시 운동이 활발했다. 임시수도 부산은 도시적 삶과 일그러진 문명을 비판하는 모더니즘 시가 창작되기 좋은 환경이었다. 여기에 고석규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실존주의 비평을 개척했다. 전국의 문화예술인이 부산으로 피란 와서 중구 밀다원다방을 비롯한 여러 '문화 아지트'에서 전쟁의 공포와 불안,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후 수도권 집중화로 부산의 인문학적 기반이 흔들렸으나 최근 민간을 중심으로 부활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지훈 철학박사는 6일 "부산은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인문학의 최전선'이었다. 부산시에서 민간 인문학 공간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면 인문학이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