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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1> 창원 백월산 사자바위 설화

위로는 깨달음 아래는 중생 구원… 평등·민본정신 예술로 승화

  • 국제신문
  •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  |  입력 : 2012-12-31 18:43:20
  •  |  본지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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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옛 남사 터에 자리잡은 억불사에서 바라본 백월산 정상의 사자바위.
- 신라시대 암자서 불도에 정진하던 두 승려
- 어느날 관세음보살 현신인 여인이 찾아와
- 정성껏 대접한 노힐부득은 미륵존상 실현
- 뒤늦게 이타의 덕 완성한 달달박박도 성불

# 작가 김일태 씨 원석 다듬다

- 일연스님 삼국유사 내용 현대적 재해석
- 백월산 3봉우리 '통합 창원시 상징' 강조

# 스토리텔링화 문화콘텐츠로

- 경남 최대 가무악극 '백월이 중천하여' 탄생
- 창원시, 올해 보완 거쳐 내년 재공연 갖기로

서울보다 면적이 넓은 경남 창원에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설화 형태의 '이야기 원석'들이 계곡과 강, 들녘 곳곳에 널려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이들 '원석'을 현대에 맞게 가공, 보석으로 만드는 작업이 창원시와 지역 예술가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백월산과 '달달박박'에 얽힌 이야기다. 해발 400m의 백월산에 얽힌 설화가 최근 한국형 뮤지컬인 가무악극으로 탄생했다. 열악한 문화 여건을 가진 지방에서 개최된 대규모 창작 공연이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산기슭에 방치돼 있던 전설 하나가 '시공(時空)'을 뚫고 나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백월산에 얽힌 전설

강추위가 몰아친 지난 연말 창원시내에서 북면 백월산의 옛 남사 터를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승용차를 끌고 위태위태하게 '갈지(之) 자' 길을 따라 백월산을 향해 한참을 오르니 작은 사찰 하나가 나타났다. 백월산 3봉(사지바위)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억불사였다. 1300년 전 신라시대의 웅장한 사찰이었던 남사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남사는 백월산 정상인 사자바위에서 불도에 정진하던 달달박박, '노힐부득'이라는 두 젊은이에 얽힌 설화와 맥이 닿아 있다.

억불사 진광 스님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들 젊은이가 용맹정진을 하던 중 어느 날 한 여인으로부터 잠을 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노힐부득은 여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목욕까지 했는데, 이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다"고 전했다.

노힐부득은 이 여인과 목욕을 한 뒤 미륵존상이 됐고, 남은 물로 목욕을 한 달달박박은 무량수불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신라 경덕왕은 이들의 득도를 기려 서기 757년 백월산 아래에 남사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남사는 당시 수많은 가람을 거느린 대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작가, 원석을 다듬다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지난달 13, 14일 열린 가무악극 '백월이 중천하여'의 공연 장면.
일견 평범한 백월산과 달달박박 이야기에 주목한 것은 지역 중견작가이자 창원시예총 회장인 김일태(55) 씨였다. 그의 손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야기 원석은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김 씨는 "당시 정사인 삼국사기는 집필 과정에서 중국 당나라의 간섭을 받았지만, 삼국유사는 달랐다. 일연 스님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은유와 함축적 방식으로 그렸다고 본다. 본인이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직역보다 시대에 맞는 재해석이 필요한 것이다"며 운을 뗐다. 백월산 이야기를 직역하면 '남녀상열지사', 불교 수행방식 등만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복합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당시는 신분이 엄격했던 시절인데 동네 젊은이들이 부처가 됐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평등주의, 민본주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인 셈이다"고 말했다. 이 설화는 새로운 관점에서 볼 때 내용이 풀리는 '압축파일'이라는 얘기다.

그의 해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설화는 옛 마산·창원·진해시가 합쳐진 통합 창원시와 연결돼 있다고 김 씨는 진단한다. 예를 들어 백월산의 3개 봉우리는 하나로 합쳐진 이들 3개 시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현장 답사와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설화를 이야기 글로 옮기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문화콘텐츠, 악극으로 부활

김 씨에 의해 1차 세공과정을 거친 백월산 이야기는 마침내 화려한 변신을 시도한다. 한국형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1시간 35분짜리 가무악극(3막)으로 변형돼 공연무대에 오른 것이다. 가무악극은 노래와 춤, 연주, 연극 요소가 총체적으로 결합된 공연이다. 이에 필요한 2억여 원의 예산은 창원시가 댔다.

이렇게 탄생한 가무악극 '백월이 중천하여'는 김 씨가 대본을 썼고, 창원 진북 출신의 부산예대 황해순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뮤지컬 등의 작곡가로 유명한 강준일 씨가 곡을 붙였다. 230명의 창원시립교향악단, 합창단, 무용단, 소년소녀합창단 등 4개 예술단이 참여한 경남 최대 규모의 가무악극이었다. 수개월째 피나는 연습과 대본 교정 등 시행착오 끝에 지난달 13, 14일 이틀간 무대에 올려졌다. 상업극단이 아닌 시립예술단이 대규모 가무악극을 무대에 올린 최초의 사례다.

창원시 배경민 문화예술과장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관객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스텝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시는 창원 배경의 이 악극을 대표적 스토리텔링 상품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시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소개해 지역을 알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시는 올해 보완작업을 거쳐 내년 재공연을 갖기로 했다. 지역 작가와 연출가 등이 힘을 합쳐 이 가무악극을 세계적인 한국형 뮤지컬로 육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보유한 창원에서 '나비부인'등 세계적 뮤지컬과 어깨를 견줄 작품이 나올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신라 경덕왕 '삼국통일 정신' 계승 위해 창건

■ 창원 불교 성지 백월산 남사

- 25동으로 이뤄진 대사찰… 현재는 터만 남아
- 사찰 주변 '사리탑'·'남사' 새겨진 기왓장 등
- 존재 흔적 발굴 했지만 실존 여부 논란 여전

   
1300년 전 남사가 있었던 자리. 현재 억불사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달달박박' 이야기의 무대인 백월산 남사(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창건)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삼국유사와 여러 문헌들에 따르면 이 사찰은 모두 25개 동으로 이뤄진 대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사찰은 경덕왕에 의해 경주 불국사 창건 5년 뒤 지어진 사실이 밝혀졌다.

김일태 작가는 이와 관련, "신라가 불국사에 신라의 정신을 담았다면 남사에는 삼국통일의 정신을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사 유래를 기록한 삼국유사 기록들은 삼국사기에 비해 야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기재 내용의 실제 존재 여부는 논란이 있다.

   
남사 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 이곳에서 나온 일부 기와에는 한자로 '남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이곳이 남사터라는 사실을 짐작게 한다.
하지만 남사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이 1995~1996년 남사 터 주변에 대해 발굴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남사(南寺)'라는 글씨가 적힌 기왓장이 나왔다.

또 10㎝ 크기의 미륵반가사유상이 발굴돼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한 여자 신도가 발굴장소 인근 개울가에서 흙덩이를 건져 올려 물에 씻으니 미륵반가사유상이 나왔다는 것이다. 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문화재 책자에는 '연잎 여러 장을 붙인 연화보관을 쓰고 뺨에 오른손을 대어 사유하는 모습'으로 이 불상의 아름자운 자태를 묘사했다.

남사 터에 지어진 억불사 주지 진광 스님은 "이곳 사찰 주변에서 (신라시대)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기왓장이 많이 출토됐다. 현재 사찰 뒤에 있는 사리탑 가운데 몸통 또한 당시 것으로 추정된다. 기단과 상부 조형물은 최근 만들어진 것이다"고 밝혔다.

   
억불사 뒤편에 있는 사리탑. 남사 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탑 몸체. 기단과 상층부는 후대에 맞춰 넣은 것이다.
인위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둥근돌은 10여 년 전 사찰 터에서 출토됐다고 사찰 측은 설명했다. 10여 년 전에는 남사 터 주변에 돌부처와 암자가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종적을 감춘 상태라는 것이다.

이곳에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는 것과 관련해 이견도 있다. 한 향토사학자는 "남사 터 주변의 형세가 가파르고 계곡이 많아 대규모 사찰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소규모 사찰이 암자 형태로 산재한 것은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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