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원노조 "전문 병원 지정을"
해적에 납치돼 피랍생활을 한 선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선원 대부분이 선사 측으로부터 지속적인 치료 보장을 못 받고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5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한국 선원이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경우는 지난 2006년 동원 628호 이후 9건으로, 총 55명의 선원이 목숨을 건 피랍생활을 했다.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후 2011년 1월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조리장 정상현(58) 씨는 귀국 후에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잠을 잘 때면 검은 무언가가 온몸을 덮치는 듯한 공포에 휩싸였고, 일상에서도 피랍과 작전 상황이 불쑥 떠올라 고통스러웠다. 그런 탓에 집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은 일을 나가지 않고 정신과 상담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명상치료를 받는 등 치료에만 집중했다. 결국 모아놓은 돈도 바닥이 나고 정 씨는 생계를 위해 다시 3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배를 탔다.
5일 귀국한 제미니호의 이건일(63) 일등항해사는 "우리에 갇혀 짐승처럼 지냈다. 2명씩 나눠 가뒀는데 외부소식은 물론 선원 간에도 생사를 모르고,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피랍됐던 선원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지만 거의가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중단한 상태다. 전국선박관리선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다시 배를 타고 돈을 벌지만, 나머지는 기초수급이나 연금 등으로 겨우 생활하는 정도로 극심한 생계고를 겪고 있다. 초기 집중 치료와 꾸준한 상담이 중요하지만 치료비가 없어 계속되는 악몽과 공포 속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철권 교수는 "석방 후 안도감에 초기에는 괜찮은 것 같지만 이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낮에는 배와 항구 등의 단서를 보면 불안감을 느낄 수 있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고 말했다.
선원노조는 피랍 선원들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위해 정부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 병원을 지정하고, 선원들의 치료비를 일부라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