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흑천지 속 기관사 지시로
- 앞칸으로 옮겨가던 승객들
- 추돌후 선로로 필사의 탈출

- 부상당한 승객들 처치 뒷전
- 교통공사 미흡한 대처 분통

22일 오전 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 인근 사고 현장에서 고장 전동차를 추돌한 구원 전동차가 탈선해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승객들이 몰리는 출근시간대에 초유의 전동차 추돌사고가 발생했지만 부산교통공사의 초동대처가 적절하지 못해 사고 전동차 승객들이 공포와 혼란의 30분을 보냈다. 22일 오전 8시15분께 부산도시철도 3호선 배산역에서 출발해 물만골역으로 진입하던 3038호 전동차가 고장으로 어두운 터널 안에 멈춰 섰다. 전동차 실내 전등은 몇 번 깜빡거리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기관사는 전동차 내 방송을 통해 "잠시 정차하겠다"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한 채 발을 동동 구르던 승객 중 일부는 "전동차 문을 열고 탈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러운 듯 말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침착하게 부산교통공사의 후속조치를 기다렸다.

하지만 부산교통공사의 대응은 실망스러웠다. 강모(여·65) 씨는 "안내방송이 한 번 나온 뒤 더는 없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실내 전등이 꺼졌으면 터널에 부착된 전등이라도 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급기야 4량 중 맨 뒤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직장인 손모(여·28) 씨는 "갑자기 객차 윗부분에서 연기가 나더니 이내 불꽃이 튀었다"며 "순간 꼼짝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이 불은 소화기를 집어 든 기관사의 긴급 진화로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기관사는 직접 전동차 안을 걸어 다니며 "다른 전동차가 고장 난 이 전동차를 뒤에서 밀어 물만골역까지 견인할 것"이라며 맨 뒤칸에 탄 승객들을 앞칸으로 옮겨가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승객들이 채 앞칸으로 옮겨가기도 전에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고장이 난 전동차를 '구출'하러 오던 3040호 전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후미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22일 발생한 도시철도 추돌 사고로 구원 전동차의 유리창이 깨져 있다. 김동하 기자

추돌 충격은 남성 승객의 몸이 붕 뜰 정도로 강했다. 서 있던 승객들이 많았고 기관사의 지시에 따라 앞칸으로 옮겨가던 와중이라 피해가 더욱 심했다. 이날 사고로 가슴뼈 골절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인 정모(여·44) 씨는 "접근해오는 구원 전동차의 불빛을 봤는데 우리 전동차를 보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 같았다"고 공포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정 씨에 따르면 전동차 안에는 장애인과 임신부도 있었다.

추돌 사고 후에도 승객들은 공포에 질린 채 스스로 사고 현장을 탈출했다. 승객들은 전동차 문을 강제로 열거나 기관실 문을 통해 캄캄한 선로로 빠져나왔다. 200여 m를 걸어 물만골역으로 가는 사이 승객끼리 심하게 부딪히면서 넘어지기도 했다.

한 승객은 "물만골역에 도착했는데 응급조치는커녕 역무원들이 승객을 한 줄로 세워 인적 사항을 적고 있어 기가 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60대 여성 승객은 옆구리를 심하게 다쳐 울부짖었지만, 역무원은 "가까운 동의의료원으로 가면 될 것 같다"는 말만 했다. 이 여성은 지상으로 빠져나와 경찰에게 상태를 호소한 뒤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