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각종 사고에 시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만연한 직원 비리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땜질식 처방 등 원전 내부의 실종된 안전시스템 탓에 시민 불만은 폭발 직전에 도달했다는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은폐와 납품비리, 직원 마약투약 파문에 이어 지난 2일에는 신고리 1호기와 영광 5호기 등 100만 ㎾급 원자력발전소 2기가 고장(본지 3일 자 1면 보도)을 일으키자 원전을 이고 사는 시민 불안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촉구 평화반핵군축시민연대는 4일 오전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고리 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는 등 잇단 원전 사고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만이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3일 본지가 입수한 한국수력원자력(주)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8시10분께 신고리 1호기는 1050MW로 정상운전을 하던 중 7번 제어봉에 공급되는 전력제어함 내 전자소자가 고장나고 퓨즈가 끊어지면서 7번 제어봉이 낙하했다. 이에 발전소 보호계통이 정지신호를 보내 원자로 정지용 차단기가 개방됐고 즉시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정지됐다.

신고리 1호기에는 핵연료의 핵분열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제어봉이 총 73개 설치돼 있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신고리 1호기 전체 제어봉의 구동회로를 점검하고 고장난 기기가 설치된 전력제어함을 새것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또 제어봉 하나가 낙하하더라도 원자로가 정지되지 않도록 설계를 변경하고, 제어봉 제어계통을 디지털 이중화 시스템으로 개선한다.

그러나 원전의 제어봉 제어계통에서 잇달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신고리 1호기는 시운전 중 고장사고가 8회 발생했는데 그 가운데 두 번이 제어봉과 관련한 문제였다. 최근 영광 5·6호기 등에서도 제어봉 제어계통에 문제가 생겨 가동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제어봉은 중요한 안전장치인데 한수원이 근본원인을 확인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한 부품만 교체해 다시 가동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이번에 고장을 일으킨 두 개 원전은 모두 한국형 원자로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형 원자로가 본격적으로 상업운전을 시작한 2000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전국 원전에서 총 105건의 사고·고장이 생겼으며, 이 가운데 39건이 한국형 원자로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뤄지는 고위 간부 경질 등과 같은 땜질식 처방으로는 원전에 대한 시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