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은인' 아름다운 선행
- 자료 발굴해 정리·적극 홍보
- 뮤지컬·오페라 등 제작 추진
- 다큐는 부산대 작업 진행 중

- 시민성금 모아 공덕비 복원
- 기념공원 조성도 적극 검토

리차드 위트컴(Richard S. Whitcomb·1894~1982) 부산 미군군수기지사령관(준장)의 아름다운 휴머니즘을 제대로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회가 발족하면서 잊혀 가던 위트컴 장군의 정신이 부산 시민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쉴 길이 열렸다. 전쟁 폐허 속에 부산 시민에게 한 줄기 희망을 던진 그의 인류애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른 고 이태석 신부·이수현 의인의 삶과 맥을 같이한다. 포용성과 개방성으로 세계도시를 지향하는 부산이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잘 가다듬으면 추억의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부산의 대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란 속에서 핀 희망과 인류애

고아원을 방문해 아이를 안고 있는 위트컴 장군. 국제신문 DB

이날 위트컴 장군 추모사업회 발족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한결같이 부산의 은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너무 늦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다는 자기반성부터 했다.

주경업 부산민학회장은 초등학생으로 직접 목격한 1953년 부산역전 대화재의 상황을 회상하며 위트컴 장군과 부인 한묘숙 여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주 회장은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를 포함해 잇단 화재로 흔적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산이 잿더미로 변했을 때 모두가 한숨만 쉬었고 행정 당국도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때 한국인이 아닌 파란 눈의 미국인 위트컴 장군이 나타나 부산 시민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다"고 강조했다. 예비역 장성 출신의 정병두 위트컴 희망재단 사무총장은 "최근에야 뒤늦게 위트컴 장군의 선행을 알게 됐다"며 "위트컴 장군은 군인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라고 거들었다.

강석환 추모사업회 부회장(부산타워 두모C&C 대표)은 "지난해와 올해 두 해를 빼면 장군이 타계하고 28년간 부인 한묘숙 여사가 기일을 맞아 혼자 쓸쓸하게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하고 갔다는 말을 듣고 부산 시민으로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다"며 "추모사업회 발족을 계기로 부산 시민 모두 그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의 간판 문화 콘텐츠로

추모사업회는 위트컴 장군에 관한 자료를 발굴해 홍보하고, 나아가 다큐멘터리 뮤지컬 오페라 같은 부산의 문화 콘텐츠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추모사업회 김재호(부산대 문화콘텐츠진흥원장) 사무총장은 "부산대 장전캠퍼스 부지 165만 ㎡(50만 평)를 무상으로 제공한 위트컴 장군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부산대에서 제작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위트컴 장군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는 부산시와 함께 전쟁 속에서 핀 위트컴 장군의 아름다운 선행을 뮤지컬이나 오페라로 제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위트컴에 관한 이야기는 부산을 찾는 외국인에게 감동을 선사할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추모사업회는 부산역전 대화재 때 위트컴 장군의 선행에 도움을 받은 부산 시민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가 사라진 공덕비를 시민 성금을 모아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추모사업회는 또 부산 시내에 위트컴 장군을 기념하는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사업 계획에 넣었다. 위트컴 장군의 도움을 받은 부산대 장전캠퍼스 안이나 메리놀병원 앞을 지나는 중구로(옛 유엔로) 등지가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박창희(국제신문 편집부국장)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는 "휴머니즘과 사랑을 뼈대로 하는 위트컴 장군 이야기는 부산의 관광자원이나 문화 콘텐츠가 될 충분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며 "과거를 추모하는 차원을 넘어 시민 공감대를 바탕으로 21세기형 살아있는 콘텐츠를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