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국제신문 1951년 11월 13일 자에 혹한을 앞두고 방 없는 6·25전쟁 피란민을 위해 부산 시민이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비워주는 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
- 시 "부산 포용심 국내외 홍보"
'부산 시민의 의리는 위기가 닥쳤을 때 더 빛을 발한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1월, 혹한이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고향을 등지고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 상당수는 추위를 피할 곳이 마땅찮아 고통을 받았다. 엄동설한으로 동사 위기에 빠졌다.
때마침 부산시가 피란민과 당시 잦은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에게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비워주는 운동에 나섰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껴안은 부산 시민의 포용성이 잘 드러난 사례다.
시는 오는 11월 1~3일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치유의 인문학'을 주제로 열리는 유네스코·교육과학기술부 주최의 '2회 세계인문학포럼'에서 이 같은 부산 시민의 휴머니즘을 국내외에 알리고, 부산시가 주도하는 토론거리로 활용한다고 29일 밝혔다.
국제신문 1951년 11월 13일 자 2면에는 '방(房) 없는 전재피난민(戰災避難民)에 낭보(郎報)'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정부가 겨울을 앞두고 요정, 여관, 음식점 같은 방 많은 집을 개방해 무주택 피란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방이 모자라 원하는 피란민 모두에게 제공할 수 없었다. 이에 시 사회과는 방을 구하지 못한 피란민, 이재민과 이들에게 방을 비워줄 시민 가정을 알선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시는 피란민에게 방세를 비싸게 받으면 100만 원 이하의 벌금 및 과태료를 부과하고 구류 처벌까지 한다고 밝혔다.
당시 피란민 가족에게 방을 비워준 허말자(여·70·부산 중구 남포동) 씨는 "서울에서 온 피란민 가족 일곱 식구가 우리 집에서 2년 정도 같이 살면서 밥도 함께 먹고 지내다가 전쟁이 끝난 뒤 서울로 올라갔다"며 "당시 우리 집뿐 아니라 남포동, 대신동, 토성동 일대 조금 큰 집들은 방 비워주기 운동에 동참했다"고 회상했다.
시민단체 활빈단 홍정식(62) 대표는 지난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6·25전쟁 때 부산 피란 시절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보살펴준 부산 시민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1인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갑준 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6·25전쟁 당시 부산 시민의 방 비워주기 운동은 부산이 최후의 보루로서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원동력이 됐고 넉넉한 부산 정신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부산의 문화콘텐츠로 적극 홍보하고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