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부산 동구 초량동 YWCA 2층 강당에서 박승준 일본 관서학원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가 '고리·영광 원전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동하기자 kimdh@kookje.co.kr

- 대도시 부산, 日후쿠시마보다
- 인구밀도 높으나 대피훈련 無
- "같은 규모라면 피해 훨씬 커"

21일 오후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YWCA 강당에서 '고리·영광 원전 사고피해 모의실험 결과'가 발표(본지 21일 자 1면 보도)됐다. 고리 1호기에서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부산지역에서만 90만 명이 숨지고, 628조 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날 발표는 박승준 일본 관서학원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가 진행했다.

■피난 안 하면 인명피해, 피난하면 경제적 피해

이번 모의실험 결과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 시와 비슷한 양의 방사능이 고리 1호기(출력 55.6만㎾)에서 유출됐을 때 부산 시민들이 피난하지 못했다고 가정할 경우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이 경우 약 4만7000명이 급사하고, 약 85만 명이 장기적으로 암에 걸려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다. 경제적 피해는 약 472조 원으로 추산됐다.

시민 전체가 사고 발생 15일 이내에 피난하면 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12만5700여 명까지 줄일 수 있다. 이 경우도 1만6000명에서 1만7000명가량은 급사를 면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방재 훈련 현실상 사고 발생 2일이 지난 뒤에야 피난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때 이미 주민들이 치사량에 달하는 피폭을 받기 때문이다.

부산시 전체가 피난하면 경제적 피해는 약 628조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피난지의 고정자산이 무용지물이 되고, 피난민들의 소득이 줄어들며 향후 수십 년간 농업·어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실험했나-일본 세오 코드(SEO code) 적용

이번 모의실험은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 사고 평가 프로그램인 SEO code(세오 코드)를 이용해 원전 사고 시 경제적 피해액을 추산한 박 교수의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피해액 계산'을 국내 원전에 적용한 것이다. 세오 코드는 원전 사고 시 인명피해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본 교토대 원자로실험실의 고 세오 타케시 씨가 1990년께 개발한 프로그램의 별칭이다.

모의실험은 후쿠시마(대사고)·체르노빌(거대사고) 원전 사고와 같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각각 유출됐을 때를 가정해 인명피해와 경제적 피해 규모를 도출했다. 고리원전의 경우에는 바람의 방향이 부산 쪽으로만 분다고 가정했고, 영광원전은 서울과 광주 쪽으로 각각 불었을 때를 따로 계산했다.

피폭량과 인명피해의 상관관계는 국제방호위원회(ICRP)가 1990년 권고한 리스크 계수인 1만 명 시버트(㏜)당 암발생 1735건, 유전장애 100건을 적용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반경 20㎞ 안 주민들이 하루 안에 대피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고리원전 인근에 인구밀도가 높은 부산시가 있는데도 비상계획구역은 8~10㎞에 불과하고, 주민 대피 훈련도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며 "고리원전에서 후쿠시마 원전과 비슷한 규모의 사고가 발생한다 해도 인명피해 규모는 상당히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