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고리원전 1호기 폐쇄 여부를 결정하는 '고리 1호기 가동중지 가처분' 항고심 2차 재판이 9일 오후 부산고법 민사8부(이재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1심에선 고리 1호기의 위험성을 인정할 만한 소명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지만, 최근 정전 사고를 계기로 재판부의 달라진 분위기가 엿보였다. 

신청인인 부산지방변호사회는 이날 재판에서 현장검증과 안전성 평가보고서 공개를 요청했다. 부산변호사회 환경특별위원회 강동규 위원장은 "고리 1호기 사고와 관련된 의혹을 풀려면 수명 연장의 근거가 됐던 안전성 평가보고서 3건과 현장검증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외국인 전문가가 참가해 고리 1호기의 주요기기 교체 여부, 비상 디젤발전기의 적정 가동 여부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이어 "원전의 수명 관리상 가장 핵심은 원자로 압력용기의 건전성 여부인데, 향후 재판에선 외국전문가를 법정에 세워 안전성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안전성 평가보고서는 국가 기밀이며 1심에선 방사성 환경영향평가서가 비공개로 이미 검토됐기 때문에 신청인의 문서 제출 요구는 기각돼야 한다"며 "현장검증의 경우에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현재 사고 은폐에 대해 조사 중이며, 사고 이후 지금까지 고리 1호기는 가동 중단 상태이기 때문에 현장검증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보고서 제출과 현장검증 요구에 대해 "1심에서 검토되지 않은 보고서 2건을 다음 재판에서 재판부와 신청인이 비공개로 열람한 후 문서 제출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 심리하겠다. 현장검증의 경우 신청인 측이 현장 어떤 부분을 확인할지 구체적으로 특정해 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고리 1호기 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다음 재판에서 파워포인트 등을 이용한 설명을 준비하라고 한수원 측에 주문했다. 이번 정전 사고 원인 규명과 고리 1호기 안전성 검증에 대한 재판부의 의지가 드러난 대목이다.  

한수원 측은 이날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감사원, 검찰에서 고리원전 사고에 대해 조사 중이므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항고심 재판을 늦춰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검증이 가능한 부분은 진행하면서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한수원의 요청을 기각했다. 3차 재판은 다음 달 22일 열린다.

한편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재판에 앞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전 관리와 사고 은폐 과정에서 각종 불법성이 드러난 만큼 사법부가 고리 1호기 가동 중단 결정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