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오른쪽)과 주민들이 고리원전 정전사고 은폐 문제와 관련해 간담회를 갖고 있다. 간담회에서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홍 장관이 곤혹스러운 듯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명확한 답 못 내놔 주민 답답

23일 오후 6시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기장·울주지역 주민과의 간담회'가 열려 고리원전 1호기 사고 후 처음으로 중앙정부 관계자가 지역 주민을 만났다. 홍 장관은 고리원전 사고와 관련한 지역 민심 수습 및 여론 수렴차 부산을 방문했다. 기장군과 울주군은 고리원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홍 장관에게 ▷고리 1호기 폐쇄 ▷한국수력원자력 운영에 주민 참여 ▷관리·감독 철저 ▷주민 이주 대책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한 주민은 "사고 이후 횟집은 손님이 끊겼고, 어업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고 고리 1호기를 폐쇄하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1호기를 폐쇄하지 않으면 신고리 5·6호기도 지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홍 장관을 몰아세웠다.

또 고리원전 민간감시기구의 역할을 강화해 달라는 요청도 나왔다. 박홍복 기장군의원은 "감시기구가 일부 주민들에게 '어용'이란 소리를 듣는 것은 이런 사고가 났을 때 현장 확인 등 적극적인 참여를 차단 당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요 부품을 들일 때 등 주요 과정에 감시기구 위원들이 참관할 수 있도록 하고, 사용후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홍 장관은 고리 1호기 폐쇄에 대해 주민들 앞에서는 "저의 권한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논의해보겠다. 국제적인 기구의 자문을 받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며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홍 장관은 부산시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고리원전 1호기 폐쇄 문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제 기준에 따라 판단할 사항이다. 초기 15년간은 사고가 많이 났지만 최근 20년간은 사고가 적었다"며 폐쇄 불가 방침을 시사했다.

홍 장관은 이어 한수원 고위층의 경질 문제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한수원 김종신 사장과 당시 정영익 고리원자력 본부장은 사전에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들이 조직 수장으로서 총체적 기강 해이 등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습 문제 등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경질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리 1호기 사고로 인해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이번 사태는 조직 내부의 정신적 해이로 인한 인재(人災)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홍 장관의 고리 1호기 폐쇄 불가 방침을 전해 들은 최수영 부산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정부는 고리 1호기를 가동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와 홍 장관의 부산 방문을 시도했다. 폐쇄를 강력하게 원하는 민심을 읽지 못하는 장관의 부산 방문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