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몰락 노숙…. 돈이 주인인 세상(자본주의),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논리가 극단화한 세상(신자유주의)이 낳은 서글픈 초상들이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나지만, 뼈 빠지게 일해도 '남에게 가는 꽃'을 보듯 구경만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양극화의 파고는 그들을 삼킨 지 오래다. 한 점 '무인도'가 되어 자본의 정글을 떠돌 따름이다. 휑한 무인도 같지만 그래도 사연 많고 할 말 많은 민초들을 찾아 항해한다. 외침이든 속삭임이든, 듣고 싶다. (051)500-5120.


- 가난에 9살때 타향 식모살이, 소위 '색시'하며 전국 전전
- 초·재혼 생활고·폭력 '시름'…평생 일해도 기초수급 신세

사진=김성효 기자

"항상 어둠 속에서 살았어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죽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단 한 번이라도 빛을 볼 수 있을까요…."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자택에서 만난 김순자(여·65·사진) 씨는 65년 통한의 세월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생만 한 그는 평생을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쳤지만,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다.

그는 1947년 전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경남 함양으로 이주했다. 위로 언니가 한 명 있고 아래로 동생이 4명 있다. 동생들과는 9살, 12살, 15살, 19살이나 차이가 나다 보니 경제능력 없는 부모 대신 동생을 보살피는 건 김 씨 몫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기도 전 아버지 손에 이끌려 부산에 식모살이를 갔어요. 집이 그리워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님 계신 곳은 달나라냐 별나라냐'는 노래를 듣고 얼마나 울었던지요. 고향 주소를 안 잊으려고 주인 아들이 버린 '몽당연필'을 주워 쓰고 또 썼어요.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흠씬 매를 맞았어요."

15살 때 아버지가 고향에 가자고 데리러 왔지만 스스로 아버지 손을 뿌리쳤다. 고향집 사정은 뻔했다. '내 한 입이라도 덜어야지' 싶었다. 그때 놓은 아버지 손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호강 한 번 못해보고 어느 날 저 세상으로 갔다.

그로부터 얼마 뒤 국제시장 선술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8살에는 대구 술집으로 보내져 본격적으로 '색시생활'을 시작했다. 술집에서 준 화장품과 옷은 모조리 빚으로 남았다. 빚을 갚느라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24살에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집 떠나고 처음 고향집을 찾았다. 피죽 한 그릇 못 먹는 동생들이 불쌍해 영양실조로 쓰러지면서까지 돈을 모아 고향에 부쳤다.

서른 즈음 정신지체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아기를 갖지 못한다고 구박을 받다 곧 이혼했다. 몇 년 뒤 아이 5명 있는 남자와 재혼했지만 내내 생활고와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남편이 암에 걸려 몇 년간 투병한 끝에 16년 전 세상을 떠나자 아이들은 점차 연락이 뜸해졌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무시받지 않으려고 이웃들에게 '자식이 둘 있다, 미국에 있다'고 거짓말도 했습니다. 평생 고생했는데 가족도 재산도 없는 내 처지가 너무 서러워요. 이 얘기를 누가 들어줄까요. 하늘과 땅 말고는 들어주는 이도 없습니다."